빗길 달려 보경사 앞 산채식당에 들르다

by 캘빈쿠 posted Sep 19, 202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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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길 달려 보경사 앞 산채식당에 들르다

                                                                                                                                                                       구 자 문 
  몇일 전부터 몇몇 동네 분들과 점심식사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이날 따라 장대비가 아침부터 쏟아지고 있다. 늦은 장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예년보다 좀 늦은 시기에 맑다 흐리다를 반복하며 몇 주째 강우가 계속되고 있다. 아직은 괜찮지만 좀 더 계속된다면 농작물들이 익어가기에도 수확하기에도 문제가 많아질 것 같아 걱정이다. 오전 11시 30분쯤 동네 단골 카페 ‘문’에 들러 잠시 담소하다가 동향 후배가 새로 샀다는 SUV에 몸을 싣고 북으로 향했다. 비가 심히 오므로 운전자는 조심해야 하지만 옆자리에 앉아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드라이브하는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7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가다보면 보경사 입구도로가 나오는데, 포항 부도심인 양덕동에서 교외에 위치한 보경사 입구까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해안과 가까운 7번 국도에서 입구로 들어서 몇 분만 내륙으로 운전해 들어가면 갑자기 산촌풍경으로 바뀐다. 주변의 산들이 강원도 태백산맥줄기에서나 볼듯한 모습으로 높이 솟아 있고 주변은 폭우 속에서 짙푸름을 보이고 있다. 논, 밭, 야산, 주택 등으로 이어지는 시골길을 5분여 운전해가니 보경사 앞 넓다란 주차광장이 나타난다. 코로나사태가 아니고 폭우가 아니라면 많은 차들로 붐빌 이곳이다. 지난 주만 해도 마스크들을 하고 많은 이들이 찾았다고 들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1) 보경사로 이어지는 길목에 늘어선 꽤 많은 유명 음식점에 들르기 위해서, 2) 보경사로 이어지는 길을 산책하거나 좀 더 산길을 타고 내연산폭포까지 트래킹하기 위해서, 3) 보경사에 가기 위해서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지난 몇년간 몇 차례 들른 것 같다. 한번은 지인들과 인근 커피숍에 들리기 위해서, 또 한번은 이곳 산채식당에서 식사하기 위해서... 이곳을 가장 처음 방문한 것은 1996년 봄 같은데, 학생들과 1박 팀미팅차 들렀던 것 같다. 그 후에는 한두 차례 지인들과 닭백숙을 먹기 위해 찾았었고, 지금은 고인되신 친하던 지역 원로 건축사분과 바람쐬고 커피한잔하기 위해 들렀었고, 최근에도 한두번은 후배부부와 내연산폭포까지 트래킹차 들렀던 것 같다.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인 603년에 승려 지명(智明)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가 중국에 유학할 때 진나라의 한 도인으로부터 동해안 명당에 묻으면 왜구를 막고 삼국을 통일하리라는 예언과 함께 ‘팔면보경(八面寶鏡)’을 전수받아 이를 왕에게 진언하여 세우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보경을 묻은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이 보경사로 붙여졌다. 고려 고종때에 원진국사 신승형이 보경사 주지를 맡아 크게 중창하는 등 여러 차례 중건되었고, 주변 암자들도 중수되어 조선시대에는 대규모 사찰이 되었다. 이 지역은 경북 3경의 하나로 일컫는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는데, 사찰 주위는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고 맑은 물이 흐르며, 좀 더 계곡을 올라가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내연산 12폭포가 있다. 
 
  이날은 한 산채식당에 미리 ‘정식’을 먹겠다 전화하고 갔었다. 일행중 한분이 이 식당을 잘 알고 음식들을 잘 알고 있어서 미리 주문을 한 것이었다. 비슷한 규모의 큰 식당들이 많은데 비가 와서인지 모두들 한가해 보였다. 길옆에 차를 세우고 식당으로 가니 건물 앞쪽에 늙은 호박들을 죽 쌓아 놓았다. 텅빈 식당에 널찍하게 자리잡고 좀 기다리니 반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가운데 넓은 접시에 더덕구이가 담기고, 고사리 등 몇가지 산나물, 몇가지 김치, 가지무침, 가재미조림, 된장국, 그리고 찐 호박잎이 나왔다. 같이 간 분들이 호박잎쌈을 권하는데, 아주 어릴적 먹어본후 처음 먹는다니 다들 의아한 표정인데, 어릴적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았고, 그후 미국생활을 오래했으니, 그리고 귀국해서도 특별히 식도락을 즐긴적 없으니 호박은 사다 먹어도 호박잎 먹은 적은 없었음이 내 기억인데 사실이라고 본다. 또한 커다란 접시에 호박전을 부쳐 오는데 문 앞에 쌓아 놓은 호박을 하나둘 갈아 전을 부쳐주는 모양이다. 공기밥이 조금씩 담기기는 했지만 남들과 다르게 3공기나 먹고서야 수저를 놓았으니, 이날 식사가 매우 맛있었던 것 같다.
     
  다음번에는 이곳에서 오리백숙을 먹자고 약속하고 식당을 나서는데 그때서야 몇몇 손님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차를 돌려 식당가 밖으로 나가는데 같이간 지인들이 여기저기 맛좋은 식당들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때는 비가 그쳐서 좌우의 근원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원경으로 보이는 짙푸른 높은 산줄기 중간쯤에 흰 구름들이 걸려 있었다. 장사를 하지 않으면서도 이곳 식당가 동네에 거주하는 분들이 꽤 있는데, 공기 맑고, 경치 좋고, 식당 많고, 직장있는 도심과 아주 멀다고 할 수 없으니 살만한 동네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필자 제자 중 한명이 몇 년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이번에 한 연구소에 취직했는데, 그 제자가 이곳이 고향이고 부모님이 이곳에 거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제자가 대학원에서 전공을 조금 바꿔 농업경제학을 전공하고 농촌 관련 연구소에 취직한 것도 이러한 고향이 배경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보경사 지역은 필자가 가본 꽤 되는 사찰들 중에서도 주변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들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이곳에서 출발한 트래킹코스가 계곡물 아름다운 내연산 골짜기를 거쳐 12폭포에 이르고, 그리고 꽤 높은 산봉우리들을 거쳐 상옥 고원지대까지 연결된다. 더구나 이곳은 산채정식과 토종닭 및 오리찜으로 유명한 대규모 식당들이 늘어선 곳으로도, 전국 누구에게라도 한번 와보기를 권하고 싶다.     

 

2021년 9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