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김진혁, 27회)

by 김진혁 posted Dec 06, 202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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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뭔가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나이 한 살 더 먹으면 좀 더 현명해질 수 있을까? 라는 연초의 기대감이 영락없이 무너지는 연말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마스크 쓰는 일상생활이 무뎌졌다. 말하는 것과 사람 만나는 횟수는

줄었다지만,  기억력은 더욱 가물가물해지고 마음속 걱정과 불안감은 거침없이 피어오른다.

노인이 되는 자격에는 별다른 성과나 연륜이 필요하지 않는다.

 

나이 들면 저절로 불러진다. 하지만 어른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품격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입은 닦고 지갑은 여는 넉넉함과 성찰의 고요함이 뒤따라야 한다.

골동품은 고물과 달리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지니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 귀해지는 이치가 아닐까?

 

주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늙음은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성숙한 자아를 찾고 지혜와 상상력으로 나가게 하는 시기이다.

시간의 무게와 죽음의 징조로 어깨를 짓누르는 전조등으로 여겨진다.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진실과 더 가깝게 지내야 하는 신호등이다.

여물지 못한 엉성한 모습의 낯선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늙음을 자각하고 홀로 서야 하는 부담 없는 여정인 것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일본 작가 소노 아야꼬(曾野綾子)의‘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계고록)’에서 독신으로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함에서 벗어나 노년에 대한 준비 방법을 제시한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며,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고 한다.

웃음이 평생 먹어야 할 상비약이라면 사랑은 사전에 준비해야 할 상비약이다. 건강할 때는

사랑과 행복이 보이지만 허약할 때는 걱정과 슬픔만 보이기 때문이다.

 

52세에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창업을 해야만 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더 나를 받아줄 곳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여러 봄날과 겨울을 지내면서 자식과 가정을 위해 뛰어다녔지만 빈 둥지가 된 모습에 세월의 야속함이 저리다.

살아온 시간이 소화되지 못한 채 목에 걸린 가시처럼 헛구역질이 나왔다. 집 떠나서 치열한 전쟁터에서 귀환했지만, 상이군인이 된 모습에 한없이 처량했다.

 

문뜩 두보의 등악양루 [登岳陽樓] 시가 생각났다.

두보는 삶은 구질구질했고 인지도도 낮았다. 난리 속에서 호구지책조차 마련하지 못해 아들이 굶어 죽는 걸 수수방관해야만 했다고 한다.

늙고 병들어 가는 두보의 모습이 실루엣 되는 게 아닌가?

 

昔聞洞庭湖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예부터 동정호는 들어 왔었지만, 이제 그 악양루에 오르니,

오와 초 땅은 동남으로 탁 트이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물에 떠 있구나.

친척과 벗은 편지 한 장 없고, 늙어 병 든 몸 외로운 배로 떠돌다니.

고향 산 북녘은 아직 난리판이라,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

 

60세 이전의 삶은 허구와 재미조차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순(耳順:60세)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고 솔직해지고 젊은 사람의 보호막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소박한 소망은 사상가도 명상가도 아닌 인문학적 사고를 베껴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다듬어가는 글을 쓰고 싶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아파도 사랑하리라.

 

단아하고 정결한 언어가 아니어도 깊고 푸른 우물에서 발견한 사랑의

조각을 흘러버리지 않으리라. 수박 겉핥기식의 삶을 그만두고 싶다.

지구 위의 어떤 생명도 의미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인으로 살겠다는 말뿐인 안일함을 배격하리라.

사람들의 관심과 명성을 탐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다짐도 한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성경 고린도전서 13:4)

 

글쓴이: 김진혁(27회): 시인, 브런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