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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 교장 선생님이던 부친은 일본인들과의 싸움 끝에 학교를 그만두고 온 가족이 신의주로 이주했다. 김씨는 2살 때 어머니를 역병으로 잃었다.
가족들이 이불 한 채와 숟가락 7개 그리고 팥밥 한 통을 메고 남쪽을 향해 걸어 서울에 도착한 게 1948년이다. 수용소에 갔다가 제주도까지 옮겨 피난 생활을 했다.
서울사대부고-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김씨의 취미는 바둑과 정원가꾸기. 특히 특허 출원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항상 물건을 만들어보고 테스트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는 게 그의 일상이다. 최근 생애 두번째 발명 특허(LOCKING SYSTEM FOR VEHICLES)를 받아 집안에 경사가 났다. 끊임 없는 도전 정신의 산물이다.
김씨는 손주들을 보살피고 눈이 오면 옆집 눈까지 치워주는 성격이다. 부인(박순자)이 외출할 시에는 항상 차고에서 금방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자동차 머리를 길거리로 돌려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또 부인이 영어 클래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주스와 비타민을 챙겨 두는, 꼼꼼하고 자상한 남편이다. 부인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렇고 말고” 하는 타입의 남편이라는 게 지인들의 말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탓인지 어머니를 항상 그리며 살아왔어요. 저와 동고동락하며 이민생활을 해온 와이프를 철저하게 외조하는 게 뭔 큰 대수이겠습니까?”
김씨의 말에 부인도 “엄마를 잃고 북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월남한 남편을 제가 어찌 지극히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맞장구 친다.
평생 한번도 힘들다는 미국 발명 특허를 두 번씩이나 받은 ‘발명가’ 김씨의 집으로 걸려오는 축하 전화들로 그의 나일스 집에는 웃음꽃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