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회 창녕 성씨고택 투어
(2011.10.8~9)
부고를 졸업한 서울 상대생들의 모임인 선우회는 성기학 서울상대 총동창회장의 초청으로
부부동반으로 1박2일간의 고적답사를 했다. 첫날은 화왕산 청국장을 점심을 한 후
진흥왕 척경비와 고분을 답사하고, 우포늪을 산책하였다. 둘째 날은 고택설명과
우포늪의 다른 편을 걷고, 김제 바루에서 사찰식 보양식 식사를 한 후
직지사의 스님 안내로 사찰 건축양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울로 출발하였다.
성기학 회장의 선친 성재경씨는 1909년 조부 성찬영씨가 최초로 양파재배에 성공하여
한국전 이후 농촌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집안에서 재배해 오던 양파재배법을 농민들에게 전수했다.
일제 하에서는 사비로 '지양강습소'라는 학교를 세워 강제 폐쇄될 때까지 인재양성에 전념하셨다.
1963년에 농민자조단체 "경화회"를 조직하여 농민 계몽과 농업기술 보급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출판사를 경영하기전에 소작인들에게 전답을 나누어주는 등 나눔의 삶을 실천하셨다.
1.4 후퇴 시 다시 창녕으로 오셔서 논민들을 위한 양파망을 고안해내고, 일본 원예책을 보고
온실농법을 시작하는 등 농민들과 동거동락하셨다. 1981년 작고 하시기 전에 자신이 운영하던
협성농산 주식을 경화회 조합원 수백명에게 분배한 귀한 분이시다.
성씨 고택은 한국전쟁시 유엔군 24사단의 본기지였기도 해서 절반이 소실되었으나
성회장이 점진적으로 복구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성회장의 동기동창들은 서울서 시골로 전근한 성기학회장에게 반아이들은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놀렸다는데 그에게 다마네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며 웃겼다.
고택 앞에 이르니 대문과 중문이 있어 성씨 가문의 가풍을 한 눈에 느낄수 있었다.
중문의 사각형 지붕은 눈을 내리 깔고 "어서 오십시오"라며 공손히 인사를 한다.
성기학 회장이 산악전문지 "산"의 취재진과 사진을 촬영중이다.
우리나라 지도 형태의 연못가에 소나무들이 운치있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정자에 앉으니 오랫만에 보는 한지 문과 긴 책상의 어울림이 눈을 끌었다.
문고리가 잠겨져있는 장식들도 창틀도 모두 어릴 때 살던 그 때를 생각케 한다.
양반 책상다리의 조각에서 선조들의 섬세한 생활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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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나무가 잘 어우러져있는 넓은정원.
대추, 사과, 감을 먹으면서 정원구경을 한 후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 앉았다.
김상구 선배와 성회장과 방글라데시 공장설립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회장이 포도주로 오신 선후배님을 반기며 인사를 한다.
건배는 서울대학 식으로 "위해 서"라고 했다.
6회 김상구 선배는 건강한 모습이며 올해 79세의 노익장.
6회 김상구선배와 17회 성회장의 미소
선우회 윤제철회장이 성회장의 초청에 감사의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10회 이선호 부부와 7회 노경진 부부.
17회 성기학 회장의 동기들...
15회 이용이 부부와 12회 음용기 부부는 부산에서 올라 왔다.
15회의 윤계섭 교수와 신현철고문.
산악전문지인 월간 "산"의 취재진과 식사를 하며 환담하는 성회장
성회장의 애창곡 "만남"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100점" 만점이 었다.
18회 박찬일 동문의 부인 열창 ...
10회 이선호의 "호랑나비"는 애교만점이었다. 여흥은 흥겨웠다.
숙소를 배정 받았다.
우리 방은 문이 닫혀 있는 곳인데, 침실, 마루, 화장실이 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성회장은 고택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성씨고택은 만평 담장안에 27채의 한옥이 있고, 안채와 사랑채는 창녕군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성회장이 네살부터 살다가 4학년때 서올로 전학을 왔단다.
어릴 때 그의 집안 일은 이 넓은 마루를 닦는 것이었다.
윗 집의 맞은 편 건물엔 선친의 서재로 보여지며, 상패가 있었다.
이방의 기둥 안쪽엔 서랍이 달린 바둑판과 자연석 바둑돌이 있었다.
한 곳을 들어가니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수장품이 많았다.
성회장은 이지붕이 소 머리 모습을 한 우진각 지붕이라고 설명한다.
버스에서 받은 고택에 관한 권태억 교수의 강의록에서 홑처마 팔작집과 구별이 확실히 되었다.
지붕과 지붕의 만남도 꽃문양을 넣는 등 섬세한 건축 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성회장은 한옥에 대한 책 여러권을 사서 수십번을 통독한 한옥에 달인지경에 이르렀다.
이 많은 집의 기와를 어떻게 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한옥을 헌다는 정보를 접하면
달려가서 구입한 후 기와를 정성껒 다루어 운반한다고 안주인은 답한다.
먼지를 막고, 겨울의 보온을 위해 분합 문을 달아 고택을 보완한 부분도 있다.
각 방에는 선조들이 사용했던 고가구들이 정리되어 있다.
여긴 할머님이 쓰셨던 방이라고 들었던것 같다.
주방에서의 살림살이는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다.
차분한 기와지붕과 뒷 산의 대나무가 어우러져서 고택의 은근미를 더 돋보이게 한다.
집과 집 사이는 옆대문을 이용해 서로 다 통하게 되어있다.
"머리 조심하이소"
여긴 손님을 뫼시고 음악회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택에서 피아노를 보니 반가웠다.
주중에는 관내 시민들을 위한 강좌가 오후 6시 이후에 시작한단다. 논어, 서예...
내 마음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