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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4 00:00

토끼 이야기

조회 수 523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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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야생 토끼들이 무척 흔하다.
그들은 집에서 기르는 것처럼 흰색이 아니고
누런 색에 꼬리만 하얀 것들이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면 잔디밭에 있던 토끼가
나무 밑으로 도망가는 것이 보이곤 했다.
토끼는 오직 도망가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무기란다.

귀여워서 처음엔 장난삼아 쫓아가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재미로 하지만 약자인 그네들은 생명을 건
달음질이려니 생각하고 나선 토끼가 있으면
조용히 보기만 한다.

그 날도 차에서 내려 정문으로 걸어가려는데
길 옆 풀밭 위에 큰 토끼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되면 도망가려니 했는데
내 얼굴만 쳐다보며 움직이지를 않는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시 쳐다 보았다.

토끼는 문자 그대로 그 둥그렇고 커다란 토끼눈으로
나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보았다.
본능적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두려움과 함께
무슨 간절함 같은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절실히 와 닿음을 느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숨 죽이며, 땅만 바라보고 집안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한참 후에 집안에서 밖을 내다보니 토끼는 그 자리에 없었다.

토끼가 어디 아펐었나, 웬일인가 궁금해서
그 토끼가 앉았던 자리로 나가 보았다.
처음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 눈도 뜨지 못 한 아기 토끼들이
땅 속 굴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한뼘 정도 깊이의 웅덩이 같은 굴은 풀과 토끼털로 덮여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였다.

불쌍한 것.. 산고를 겪고 있었나,
아니면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나...
도망가지도 않고 나만 쳐다보더니..
어미 토끼에게는 다가오는 내가 저승사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살짝 들여다 보고는 예전과 똑 같이 덮어 놓았다.

이튿날 이른 아침, 우리 토끼들이 어떤가 궁금해서 나가보니
놀랍게도 굴은 비어 있었다.
인간냄새 나는 굴을 버리고 밤새 어미가 이사를 한 것이다.

도둑질을 하다 들킨 것 같았고 살림 들어온 자식을
쫓아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두려움에 찼던 그 커다란 눈은
우리 모든 생명의 연약함을, 그리고
동시에 모든 생명의 귀함도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필라델피아)
  • 윤준근 2005.07.24 00:00
    역시 필라의 jane 은 문학 소녀에 틀림이 없네...

    장거리 여행에 피곤 할텐데도
    이런 글을 쓸수 있다는 정서가 부럽기만 하네

    다음에 귀국 할 때는 산행에 동참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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