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이강선 - 본향

by 사무처 posted Sep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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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

                    이강선


함께가자는 몇번의 졸림 끝에
이번엔 남자를 따라나선다.
태어나서 초등학교까지 자랐던
남자의 본향으로.

 

마을에 다다르니
남자가 어설프게 지어놓은
은행나무 밑의 정자에 나와 앉아서
눈빠지게 아들을 기다리는
97세의 노모.

 

여자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몸빼와 밀집모자,
장화로 무장을하고
재작년 하늘나라로 간
시누 남편이 심어놓은
밤나무 밭으로 간다.

 

추석이 엊그제 지났는데
벌어진 밤송이보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송이가
훨씬 더 많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밤알.
그 곁에 납짝하게 붙어있는 쭉정이.
밤송이 속에 박힌 알밤을 꺼내며
여자는 생각한다.
나는 알밤일까? 쭉정이일까?

모든걸 자식에게 내주고
빠짝 쪼그라진 노모를 보며
노모는 알밤일까?

쭉정이일까?

 

쭉정이가 알밤을 키우려고
한방울의 진액 조차도
미련없이 내어 준,

 

여자는 서글퍼한다.
알밤도 쭉정이도 아니게
살아온 지난 세월을 ...

 

   2021년 9월 하순. 보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