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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정열로 세계에 우뚝 선 ‘뇌 과학자 조장희’
한국의 뇌과학자, 세계의 정상에 서다
박방주 지음, 궁리, 256쪽, 1만2000원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조차 생소했던 1962년 9월. 스웨덴 웁살라대의 한 기숙사에는 한국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이 있었다. 유학생의 눈에는 기숙사의 엘리베이터며 마음껏 쓸 수 있는 온수 샤워기 등 모든 것이 신기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가난했던 유학생은 세계 최고의 뇌과학자로 성장했다. 책은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가천의과학대 뇌연구소장 조장희(72)박사의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조 박사는 1973년 CT(컴퓨터 단층촬영장치)의 수학적 원리 분석을 시작으로,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장치)와 MRI(자기 공명장치) 등 인체영상기기의 삼총사를 모두 개발한 세계 유일의 과학자다. 이 분야를 개척한 점을 인정받아 과학자로서는 최고 영예인 미국 학술원 회원이 된 것은 물론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자리를 동시에 수행하는 등 화려한 길을 걸어왔다.
언뜻 화려한 인생을 살았을 것 같지만 사실 그의 인생은 지난한 한국 근·현대사의 궤적과 닮았다. 황해도 출생인 그는 전쟁 때문에 모든 재산을 잃고 가족과 피난민촌을 전전했다.
서울사대부중 1학년 때는 먹고 살기위해 학교를 그만뒀다. 대신 암시장 등에서 양담배와 초콜릿 등을 팔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학교로 돌아간 것은 3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으나 기초가 부족한 탓에 성적은 한동안 하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떨어질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에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지원해 당당히 합격했다. 이어 스웨덴 유학길에 오르게 됐고 고해상도 PET개발도 성공하기에 이른다. 우연에 가까운 행운 덕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행운의 바탕에는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유학길에 오른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매달렸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악바리 근성과 ‘틀림없이 잘될 것’이라는 낙관주의가 연구성과의 밑바탕이 됐다.
지금도 조 박사는 청소년들에게 “‘실패를 두려워 않는 모험심’·‘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남보다 앞서겠다는 영웅심’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로 꼽히는 그이지만, 책은 조 박사가 완벽한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서울공대 시절 등산과 스키에 빠져 살았고, 기초가 부족했던 탓에 대학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았다. 일밖에 모르는 성품은 수많은 적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그가 세계 최고의 과학자로 우뚝 선 것은 역시 실적과 연구에 대한 정열 덕분이다.
이수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