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벌하던 농성, 내가 하고 있다니…"
大檢 공안부장 출신 초선 이범관 "이런 게 정치구나"
▲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이 11일 전직 검사의
눈으로 본 지난 1년 동안의 국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쟁점법안 처리 문제로 여야(與野)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지난 1일 밤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하던
한나라당 의원 100여명 중 자리를 깔고 앉아 구호를 외치던 모습이 유난히 어색한 초선의원이 있었다.
고검장 출신으로 이번 18대에 처음 여의도에 입성한 이범관 의원이었다.
"내가 옛날에 처벌하던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셈인데 어떻게 맘이 편하겠나. '이런 게 정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대검 공안부장까지 지낸 '공안통'인 이 의원은 현직 검사 시절 국회에서 회의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폭력
을 휘두른 의원들을 사법 처리한 일이 있다. 그때의 기억과 최근 국회상황이 겹쳐진 듯 이 의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국회 외교통상위 소속인 이 의원은 작년 12월 야당 의원의 '망치폭력'을 눈앞에서 지켜 보
기도 했다.
이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청와대 민정비서관·법무부 기획관리실장·서울지검장
(현 서울중앙지검장) 등 국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직책을 거쳤다. 검사 출신 현역 의원 가운데 최고참이
기도 하다.
초선이지만 국회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임기를 시작했으나,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는 이상과 현실 간의 간격을 절감한 듯했다. "선명성 경쟁을 하듯이 강경 노선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대화와 토론을 덮어 버리는 현실은 여야 공히 반복됐고 그 모습에 절망했다."
당 지도부에 대한 쓴소리도 했다. "도대체 근본적인 전략이 없는 것 같다. 작년 말과 올해 초 벌어졌던
국회 폭력사태에서도 우리 당 지도부는 확고한 방향을 정해놓고 일관되게 대처하질 못했다. 눈앞에 벌어
지는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대응하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이 의원은 "얼마 전 친구로부터 '이젠 국회(國會)의원이 아니라 국민에게 해(害)를 끼치는 국해(國害)의원
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렸
다. '시간이 가면 다 해결된다', '다른 쟁점이 생기면 모두 덮이게 돼 있다'라고 말하는 의원들까지 있는데
그건 정말 오산이다."
그의 결론은 "이제 국회의원의 수를 적정선에서 감축하고 여의도 정치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진지하
게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