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성적 아예 안 보겠다” 서남표의 입시 역발상
공교육 살리기 위해선 입시가 뒷받침해 줘야
학생들 잠재력만 볼 것
“상당히 급진적인 방안”
공정성·객관성 확보가 성패 여부를 결정할 듯
정년(테뉴어) 심사 강화로 교수 사회에 태풍을 몰고 왔던 서남표 KAIST 총장이 개혁 방향을 대입으로
돌렸다. 올해 고3이 치르는 2010학년도 대입에서 일반 고교 학생 대상 무시험 전형을 도입해 ‘공교육
살리기’ 실험에 나선 것이다. 수능과 내신성적을 보지 않는 대신 학교장 추천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150명을 뽑는 것이 핵심이다. 사교육을 받아 점수만 올린 학생보다는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
공교육 정상화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올해부터 입학 정원 300명 전원을 입학사정관제로 뽑겠다는
POSTECH(옛 포항공대)보다 한발 더 나간 셈이다
서 총장은 5일 “고교 성적을 아예 보지 않겠다”며 “교장들이 포텐셜(잠재성) 있는 학생을 뽑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서 총장의 대입안은 중앙일보의 ‘대학 경쟁력을 말한다’ 시리즈를 계기로 지난달 정부·
대학·고교·교원단체가 ‘공교육 살리기 4자 협약’을 맺은 이후 처음 나온 것이다. 서 총장은 “공교육을
살리려면 입시가 뒷받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KAIST가 입시 개혁에 나섬에 따라 정부가 추진 중인 입학사정관제도가 힘을 받게 됐다. 정부는 수험생들
의 잠재력을 보는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고 지원을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서 총장의 역발상=일반적으로 상위권 대학들은 특수목적 고교(과학고·외국어고 등)나 자립형 사립고
출신 학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 총장은 일반계 고교를 주목했다. 그는 “한 사립 고교는 10
년 동안 KAIST에 들어온 학생이 한 명도 없다”며 “거기에도 똑똑한 아이가 있을 텐데 기회를 주면 교육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반계 고교에서 150명을 뽑겠다는 것을 기회 균
등으로 접근한 것이다.
서 총장은 “전국 일반계 고교 교장들이 추천해 준 학생을 그대로 믿고 입학사정관 전형을 치르겠다”며
“성적이 나쁜 학생도 추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 총장은 교장 추천 과정에서 빚어지는 학
부모들의 치맛바람과 잡음에 대해서도 새로운 안을 내놨다. 좋은 학생을 추천하는 학교는 더 뽑을 것이
고, 성적순으로 뽑아 추천한 학교는 이듬해 입시에서 반드시 불이익을 보게 한다는 것이다.
최종 선발 전형 방법인 면접 기준이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KAIST) 면접장 유리창 뒤에 가서 보면
느낄 것”이라며 “교수 3명이 학생 한 명을 놓고 하루 종일 보면 학생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교과 지식을 묻고 측정하는 일반 대학들의 심층 면접 방식과 대조된다. 서 총장은 “학생이
모르는 얘기를 왜 묻나.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하고, 그중에서 물어보면 학생이 대답하고, 또 묻고 하다
보면 잠재력이 있는 아이인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현 가능성은=서 총장의 역발상이 공정성 논란을 일으킬지도 관심이다. 교장 추천자를 대상으로 하
는 서울대 지역균형 선발도 일반계 고교들은 성적순으로 1~2명씩 서울대에 추천한다. 문흥안 건국대 입
학처장(전국입학처장협의회 회장)은 “상당히 급진적인 방안으로 보인다”며 “성적을 무시하지 말고 다양
한 비교과 활동을 함께 반영해야 고교 교육 시스템을 존중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발의 공정성
과 객관성 확보가 성패의 ‘키’라는 것이다.
KAIST는 무시험 전형 선발 인원을 더 늘릴지 확정하지 않았다. 현재 과학고나 과학영재고에서 들어오는
인원을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다. KAIST는 2009학년도 입시까지 영어성적을 반영하거나 국제수학·과학경
시대회 실적 등을 반영해 선발했다.
강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