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것의 힘>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아 드러난 것 뒤에 도사리고 있는 숨은 것을 보는 것이 진짜 안목"
튀어야 산다.
개성이 최고의 상품이다.
구직난이 심할수록,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런 구호들이 인기다. 일견 그럴듯하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취업 전선에서 성공하려면 남과 달라보여야 하고, 수없이 쏟아지는 신상품들 속에서 소비자의 눈길을 잡으려면 개성 있는 상품이라야 할 게다. 그러나 백 번 옳은 말 같아도 일반론으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 누구나 다 튀어보이면 튀는 게 장점이 될 수 없다. 개성만을 앞세운 상품은 대량생산의 메커니즘과 모순을 빚는다.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청바지를 입는다.” 이런 광고 카피는 (개성으로 위장된) 똑같은 청바지를 대량으로 생산해 대량으로 판매하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자체 모순이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튀는 것도 아니고 개성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훌륭한 처세의 전략처럼 간주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드러난 것’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드러난 것이 지배하는 얍삽한 사회에서는 눈에 띄는 것을 더욱 두드러지도록 포장하는 데 열중하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외모 지상주의도 그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외모만큼 확실히 드러난 것이 또 있겠는가?
‘드러난 것’이 있다면 ‘숨은 것’도 있을 터이다. 사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그 배후에는 숨은 것이 빙산의 본체처럼 도사리고 있다. 드러난 것은 숨은 것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도 말하지 않던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전체적인 줄거리를 의식하면서 인물들의 대사와 행위에 주목한다.
바꿔 말해 각 장면에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 인물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거리 풍경, 탁자 위의 소품 따위는 영화 전문가가 아니라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 배경음악, 풍경, 소품이 없으면 아무리 줄거리가 튼튼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영화가 된다.
오히려 참된 거장이라면 줄거리와 인물처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드러난 것보다 일반적인 시선에 잘 포착되지 않는 부분들을 훨씬 공들여 표현한다. 그 디테일한 부분들이 바로 숨은 것을 이룬다.
드러난 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지만 숨은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숨은 것은 독특한 방식으로 그 존재를 알리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를 때 듣는 사람들은 노래를 들을 뿐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반주는 듣지 않는다. 반주는 숨어 있다. 그럼 반주는 어떻게 그 존재를 드러낼까? 그것을 알려면 반주를 없애보면 된다.
반주가 없다면 누구나 노래가 어색하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즉 노래방의 반주는 있으면 있다는 게 드러나지 않고 없어야만 없다는 게 드러나는 셈이다. 숨은 것은 이렇게 일종의 변형된 부재 증명, 알리바이의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엄밀히 말하면 숨은 것은 감춰진 게 아니다. 가려지고 감춰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당연시될 뿐이다(노래방의 반주는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당연시되기 때문에 아무도 듣지 않는다). 드러난 것에만 눈길을 줄 때 숨은 것은 구박을 받아 더욱 당연시되면서 완전히 숨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숨은 것을 보려면 드러난 것, 당연시된 것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주식 보유분이 5%밖에 안 되는 재벌 총수가 기업 전체를 주무르는 이유는 나머지 95%를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각계 각층을 대상으로 인재를 발굴해야 하는 대통령이 측근 인물들 중에서만 인재를 발탁하는 이유는 드러난 것만 볼 뿐 숨은 것을 볼 수 있는 깊은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은 그런 사람들이 경제와 정치의 최고봉에 있다는 것 자체가 드러난 것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얄팍함을 말해준다.
하지만 숨은 것은 마냥 침묵하지 않는다. 마침내 때가 되어 숨은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드러난 것의 세계는 송두리째 무너지게 된다. 때로 그 과정은 혁명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