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함께 읽자] "그녀의 당당했던 모습이 힘든 나를 일으켜 세운다"
▲ 22일 서강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고 장영희 교수 추모 낭독회에서 장 교수의 제자 고수라씨가 장 교수의 유고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낭독하고 있다./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서강대서 고(故) 장영희 교수 추모 낭독회
"고통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 것."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 동문회관. 무대에 걸린 커다란 화면에 고(故) 장영희 교수가 남긴 글이 사진과 함께 떴다. 장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45일째 되는 날,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은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추모 낭독회에 담았다.
제자들에 둘러싸여 아이처럼 웃고 있는 장 교수의 사진이 나오자, 사회를 맡은 정훈 서강대 총동문회 부회장은 "우리가 그의 글을 소리 내 읽으면 하늘에서도 들릴 것"이라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조선일보가 함께 전개하는 '책, 함께 읽자' 캠페인의 하나로 열린 이날 낭독회에서 연극배우 이승철(59)씨가 장 교수의 유고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 한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 세상을 결국 이렇게 떠나야 하는구나.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대 난간을 붙잡았다.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30년 넘게 무대에 서온 이씨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2004년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척추로 전이된 후,
독한 항암제 때문에 땀과 눈물까지 빨갛게 되더라는 부분에 낭독이 이르자 객석에서 가느다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장영희 교수의 제자 고수라(여·23)씨와 서강대 출신인 MBC아나운서 손정은(29)씨도 낭독에 참여했다.
"내가 죽고 난 후 장영희가 지상에 왔다 간 흔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차피 지구상의 65억 인구 중에 내가 태어났다 가는 것은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덤일 뿐이다.
그러나 이왕 덤인 김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덤이 아니라, 없어도 좋으나 있으니 더 좋은 덤이 되고 싶다."
손씨는 "재학 시절 낡은 목발을 짚고 힘겹게 다니면서도 늘 밝게 웃어주는 그 강한 아름다움에 감탄했었다"며 "장 교수님의 글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민차연(여·23)씨는 낭독회가 진행되는 내내 휠체어를 탄 채 자리를 지켰다.
척추장애가 있는 그는 3년 전 같은 장소에서 장 교수와 식사를 했다. 민 씨는 "교수님은 내게 '공부 열심히
하라'며 북돋아줬고, 그때 교수님의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이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다"고 말했다.
이날 낭독회에는 장영희 교수의 형제와 조카들도 참여했다.
장 교수의 오빠인 장병우(63)씨는 "아직도 영희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나 낭독회에 오는 것도 많이 주저했다"며 "막상 와보니 많은 분들의 정성에 놀랐고, 오늘 낭독회를 영희 무덤에 가 얘기해주겠다"고 말했다.
김남인 기자 kn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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