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이 철학적 화두를 던진 후에야 비로소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수 세기가 지나도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은 힘들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인생의 오점을 남길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술가들이 자아 성찰을 위해 치열하게 그린 자화상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한국 여성 미술 거장 윤석남(82)은 '나는 도대체 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자화상을 제작해 오고 있다. 그는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나를 그린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선비 화가 윤두서(1668~1715)의 서슬 퍼런 자화상(국보 240호)에 전율을 느껴 서양화 붓을 버리고 한국 채색화를 그리고 있다.

현재 서울 리안갤러리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미국 인물화가 엘리자베스 페이턴(56)은 거울에 비친 자신 모습을 그리면서 내면을 투영한다. 40여 년간 초상화에 천착해온 그는 "얼굴에 시간, 역사, 개성 등 많은 것이 담겨 있다"고 한다. 자화상은 작가의 정체성과 더불어 신념, 일상, 인간관계를 기록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모델인 나를 먼저 그리면서 타인을 탐구하기도 했다.
  프랑스 세관원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 앙리 루소(1844~1910)는 주변의 혹평에도 화가로 살겠다는 의지를 1890년 자화상에 담았다. 세상을 떠난 첫 번째 부인과 재혼한 아내 이름을 새긴 팔레트와 붓을 쥐고 결연하게 서 있다. 당시 사람들이 흉물이라고 부르던 에펠탑과 만국기, 열기구들을 배경에 그려 신문물을 수용하기도 한다.
  스페인 출신 현대미술 개척자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타계하기 1년 전인 1972년 죽음에 맞서는 자화상을 그렸다. 부릅뜬 눈과 깊은 주름, 자유로운 선으로 세월의 풍파를 피하지 못한 노년의 모습을 천진하게 그려냈다. 생전에 그는 "나이가 들수록 바람이 강해지며, 그것은 항상 당신의 얼굴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 천재 낙서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가 1982년 그린 자화상은 아프리카 가면 같은 얼굴,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 과장된 두 손이 특징이다. 거리를 방황하던 그가 갤러리 전시를 통해 인정받기 시작할 때 그렸으며, 밀려오는 작품 주문에 허덕이는 모습 같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그림 값이 비싼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84) 작품 '찰리와 함께한 자화상'(2005년)은 친구이자 큐레이터 찰리 샤이프스를 뒤에 두고 이젤 앞에 있는 자신을 그렸다. 오랜 세월 묵묵히 화가의 작업 과정을 지켜본 큐레이터와 우정을 담은 듯하다.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품으로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에서 전시 중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왕립박물관이 소장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말년 자화상(1510년)은 마치 작가의 영혼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눈빛과 마주치면 신비한 힘이 생긴다는 속설에 독일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눈독을 들였던 그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