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의 대학 혁명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이달 초 ‘정년보장(tenure) 교수’ 심사에서 신청자 35명 가운데 15명을 탈락시켰다. KAIST는 이번 심사에서 院內원내 교수 4명, 원외 국내 교수 4명, 해외 석학 4명 등 12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평가서를 받았다. 나이·서열·호봉은 모두 무시하고 실적과 성과만으로 평가했다. 이번 심사에서 탈락한 교수들은 대부분 미국 동부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중 일부는 해외 대학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이다. KAIST 서남표 총장은 탈락률이 높았던 분야의 학과장을 불러 “왜 학과 차원에서 엄격히 거르지 않았느냐”는 질책도 했다고 한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인정과 인연에 끌려 정년보장 신청을 한 것 아니냐는 뜻이다.
하버드 같은 경우는 정년보장 심사 통과율이 20%밖에 안 된다. 스탠퍼드도 ‘助조교수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년보장 안 해 주기로 악명 높다. 교수 임용 5년 안에 정년보장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방출예고 통고서’가 날아온다. 빨리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딴판이다. 2년 전 국정감사 때 이주호 의원이 46개 국·공립대를 조사해 봤더니 정년보장 심사 통과율이 96.6%였다. 年限연한만 차면 자동으로 정년보장 도장을 찍어 주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 철밥통보다 교수 철밥통이 더 단단한 것이다.
KAIST 서남표 총장은 지난 11일 서울대 교수들에게 한 강의에서 서울대를 ‘피더 스쿨(Feeder School)’이라고 불렀다. 서울대 출신은 외국 대학원으로 유학은 가면서 자기 학교 대학원엔 안 가는 것을 꼬집은 말이다. 교수 수준, 교육 여건이 떨어져서 그 밑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수 사회에 우수한 자만이 살아남는 경쟁이 있어야 교수 사회 전체가 존경받고 존중받는다. 쌀과 겨가 半半반반이면 전체가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것이다.
[9/29일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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