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은(31회) 철은 문명과 더불어 생명유지에도 필수불가결

by 사무처 posted Aug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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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은의 의학이야기] 철은 문명과 더불어 생명유지에도 필수불가결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 (대한의사협회 정책자문위원)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 (대한의사협회 정책자문위원)

물질은 국가의 운명뿐 아니라 국가가 번성하고 몰락하는 시기도 결정한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처럼 특정시대를 지칭하는 용어에 물질이 들어간다. 물질과 인류문명사는 서로 그 궤를 함께한다. 청동기가 부족해진 것이 철기시대의 계기가 되었고 철제 무기와 농기구가 없는 집단은 철기를 가진 민족에게 정복을 당해야했다. 현대를 철기시대가 지나고 실리콘이 대표되는 물질로 규석기 시대라고도 하지만 철이 없었다면 현대사회의 대도시는 존재할 수 없었다. 거대한 빌딩의 골조와 도로, 교량, 자동차, 철도, 선박, 가전, 무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실 철은 영국의 발명가 헨리 베세머의 제강법이 나온 19세기 이후에야 값이 저렴해졌다. 그전에는 연철로 만든 철로가 빨리 찌그러져 3~6개월마다 교체해 주어야했다. 한때 철은 금보다 귀했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술혁명은 철을 희귀 금속에서 상용금속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가능해졌다. 철은 원자번호 26번으로 가장 안정된 원소이고 우주의 모든 물질은 철로 되려는 관성을 갖는다.

 

철보다 원자량이 적은 원소는 융합하여 철이 되려하고 무거운 원소는 분열하여 철이 되려한다. 지구 지각을 이루는 금속 중에 철의 비율은 5.8%, 구리는 0.005%이다. 철이 훨씬 더 많은 광물이지만 구리가 일찍 이용된 이유는 광석에서 추출하여 제련하기 쉬었기 때문이다. 철은 용융점이 높아 추출하기 어려웠다.

 

철과 구리는 동물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미네랄이기도하다. 철은 이온의 형태로 몸속에 존재하지만 호흡에서 산소교환에 꼭 필요한 원소이다. 산소 분자(O₂)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 안에 있는 철과 약하게 결합해서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배달된다. 즉 철분이 산소교환의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피는 왜 빨간 색일까? 그것은 헤모글로빈의 철과 깊은 연관이 있다. 철은 이온 형태로 몸에서 존재하는데 주위 환경에 따라 어떤 이온 형태로 존재하느냐에 따라 다른 색으로 바뀔 수 있다. 피가 항상 붉지는 않다. 동맥에서 나오는 피는 투명하고 맑은 붉은 색이지만 정맥으로 들어가는 피는 검푸른 색을 띤다. 정맥의 피가 검푸르게 보이는 이유는 철(Fe)이 산소와 결합했던 자리를 물 분자가 차지하게 되면서 철 주위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피는 모두 빨간 색일까? 연체동물이나 갑각류의 피는 청록색이다. 이들 생물에는 헤모시아닌이라는 헤모글로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있다. 이 헤모시아닌 속에는 철(Fe) 대신 구리(Cu)가 들어가 있어 피 색깔이 청록색으로 보인다. 살아있는 문어나 오징어 또는 들에서 메뚜기나 여치를 잡을 수 있다면 이 녀석들의 피 색깔을 확인해 보자. 단지 피 속에 철이 들어 있느냐 구리가 들어있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헤모글로빈 내의 철은 항상 Fe2+ 이온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피가 몸 밖으로 나오면 산소와 결합해서 바로 Fe3+의 이온 형태로 바뀌어 버린다. 몸속에 있을 때는 산소와 결합해도 Fe2+의 이온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수수께끼는 오랫동안 의학자들의 숙제가 되었다.

 

산소는 헤모글로빈의 철과 결합해서 우리 몸의 조직 세포로 운반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소와 철의 결합이 쉽게 끊어져야 한다. 만일 산소 분자가 철과 너무 강하게 결합이 이루어져 있으면 산소를 다른 조직 세포로 배달하기는 매우 어렵다. 실제로 산소 분자와 비슷한 크기의 일산화탄소(CO)는 산소 분자(O₂) 보다 약 25~200배 정도 강한 결합력을 가진다. 그래서 일산화탄소가 혈액에 들어가면 산소 대신 헤모글로빈과 강하게 결합해 산소 부족으로 질식 현상이 나타나며 심할 경우 죽게 된다. 예전에 연탄으로 난방할 때 가장 흔하게 일어났던 사고가 바로 일산화탄소 가스 중독이었다.

 

최근 자동차의 증가로 일산화탄소가 급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일산화탄소 농도 이하에서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의학자들은 이 부분에 의문을 가졌다. 일산화탄소가 산소보다 헤모글로빈의 철에 더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데도 어떻게 인체에서 산소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였다. 해답은 헤모글로빈의 철 이온 주변에 히스티딘(His)이라는 아미노산이 산소와 일산화탄소를 우리 몸이 구별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었다. 히스티딘은 일산화탄소보다 산소 분자와 더 강하게 수소결합을 하는 것으로 예측됐으며, 일산화탄소가 헤모글로빈의 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철은 인간의 문명과 더불어 생명유지에도 필수불가결한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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