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와 범죄도시
구 자 문
미디어 전성시대에 살면서 전통적인 책자나 신문 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검색을 하게 되고, 긴 시간 영화관에 가기보다는 집에서 TV 시청함이 흔해졌지만, 근래에는 어디서든 핸드폰 끼고 유튜브 감상함이 더 흔한 일상이 되어 있다. 물론 정도 차이는 있지만 남녀노소 유튜브를 즐기고 다양한 정보들을 얻게 되는데, 이는 역사, 문화, 과학기술 등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들, 클래식부터 현대적인 것들까지 감상한다. 하지만 빠르게 검색하는 것 만큼이나 그 내용도 요점만 감상 함이 버릇이 되어 버렸다. 대단한 영화들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보다는 재미있는 부분만 연속적으로 보게 되는 경향이 크다.
이는 인터넷 신문도 마찬가지인데, 과거 같이 신문 몇 개를 샅샅이 훝어보며 다양한 뉴스와 다양한 의견들을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헤드라인이나 보고 싶은 것들만 연속으로 보고 좀 불편하거나 주의를 끌지 못하는 것은 그냥 넘겨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영화감상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관심 있는 주제를 고르게 되고 그중 주요 부분만을 보게 되니 전체적인 흐름이나 메시지를 파악하기 힘들다. 정 궁금하면 인터넷 서치를 통해 남의 리뷰를 읽고 전반을 파악하게 되니, 일면 편리한 점도 있지만, 내 자신 스스로의 다양한 각도에서의 이해능력은 사라져도 되게 되어 있는 듯 하다.
여러 상영관이 모여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포항에 생긴지도 15~20년은 되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이번에 처음 가 보았다.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포항의 극장이란 드라마 ‘장군의 아들’에 나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 꽉 차고, 오징어와 땅콩 팔러 다니고, 가끔 영사기 필름이 끊어지기도 하는 곳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다. 물론 아이들 있는 미국에 가면 오래 전부터 이러한 멀티플렉스에 익숙한 것이 사실이고, 아이들이 어릴 때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뷰티 앤 비스트’, ‘랜드 비훠 타임’ 등을 함께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도 CJ그룹이 멀티플렉스인 CGV (CJ Golden Village)를 전국에 짓기 시작한 것이 20~25년 전 같은데, 그때 그 대기업 담당 사장님이 지인이라서 관련 에피소드들을 직접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그 당시도 영화관에 간 적은 별로 없어서, 서울에 다니러 가면 아는 이들이 ‘영화관에 가자’, ‘한달에 몇 번이나 영화를 보느냐?’는 요청과 질문에 좀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영화를 싫어한게 아니고 극장에 가지 않는 대신 TV나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년에 여러 차례 국제선 긴 시간 비행시간에 감상하는 것은 오래된 클래식 무비로서 ‘벤허’, ‘로마의 휴일’ 등이고, 그다음 보는 것들이 좀 더 최근 것들이지만 코미디적 요소가 가미된 ‘인디아나 존스’, ‘마이네임 이스 노바디’, ‘주래식 파크’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전쟁영화인 ‘위워 솔저스’,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것들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달 포항에서 그것도 평일 저녁에 CGV에 가 볼 기회가 생겼다. 동네 지인 두 분이 극장표를 예매한다며 강권하는 것이었다. 비도 오고 그날 일을 대충 끝낸 상황이기에 그분들 차를 타고 육거리 근처의 CGV북포항으로 갔다. 2층으로 올라가 팝콘과 콜라를 하나씩 사들고 3층 상영관으로 갔다. 제목은 ‘범죄도시 4’. 이 영화는 상영된지 한달로 접어드는데 전국 상영관 대부분이 이를 상영하고 있고,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다른 영화들이 이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약된 상영 룸 앞쪽에 자리 잡고 앉으니 의자가 매우 편하다. 4XD IMAX 화면도 크고 멋지다. 약간의 광고 후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처음부터 칼싸움이다. 스토리가 단순하고 약간의 코미디적인 요소가 있어 큰 고민 없이 감상하며 시간 때울 만한 작품일 수 있는데, 잔혹한 칼싸움이 많다.
무대가 ‘필리핀’인데, 정말 그곳에서 저렇게 칼싸움을 한다는 것인가? 그런 칼잡이들도 총 한방이면 끝장일텐데... 필자로서는 과거 ‘킬빌’, ‘바람의 검심’ 등 검객영화에 나오는 칼싸움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서의 백병전만큼이나 참혹해 보였다. 솔직히 CGV의 웅장한 화면이 이러한 장면들만을 보여주기에 아까워 보인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사람들이 이러한 단순한 폭력적인 것들만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닌지 걱정됨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나 풀려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다른 영화들이 눈에 차지 않아 가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도 웅장한 스크린과 음향에 사치를 누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고, 동행한 이들과 대화도 나누고 차도 한잔 할 수 있었다.
필자의 대학동창 둘째 아들이 명문 대학 졸업 후 부산에서 영화감독수습을 하며 10여년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본다. 물론 필자의 제자들 중에도 연극과 영화제작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중점적으로 제작하고 있는 것은 단편 문예영화들인데, 당연히 돈도 벌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있다. 동창을 만나면 아들 영화 잘 만들고 있냐고 안부는 묻지만, 그리 희망적인 대답을 듣지는 못한다. 물론 이러한 기저층들이 존재하니 ‘기생충’ 같은 작품들이 미국에서도 수상하는 영광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 감상한 ‘범죄도시 4’ 같은 것들도 가끔이라도 나타나야 영화관에 관객을 끌어모으고 영화제작계에 투자가 이어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2024년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