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방문기
구 자 문
경주를 가게 되면 주로 보문단지의 호숫가 호텔에 머물렀고 다른 곳을 크게 찾아가지 못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불국사 등 몇 곳을 들러볼 수 있었다. 내 생애 가장 처음 불국사를 방문한 때는 50여년 전 중학교 3학년 수학여행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완행열차를 타고 불국사역에서 내려 한참 산길을 걸어 올라 불국사며 석굴암에 도착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방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불국사 방문은 토요일 오전으로 오후 시작되는 심포지엄 이전에 두세 시간 빈틈을 낸 것이었다. 보문단지에서 지척에 위치한 불국사지만 옆으로 지나친 적은 여러 번이나 그 경내로 들어가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대고 표를 끊고 경내로 들어서니 바위 돌 깔린 걷기 좋은 길이 가벼운 경사를 이루며 위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사진을 통해 익숙한 불국사의 모습이 보인다. 대웅전으로 가자면 석조로 된 청운교와 백운교로 불리는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아래쪽 계단을 청운교라 하고 위쪽 계단을 백운교라 하는데 전체 33계단으로 청운교는 17계단, 백운교는 16계단이며, 경사각은 45도인데, 국보 23호이다. 불교 우주관에 의하면, 33이라는 숫자는 우주, 즉 불교 우주관의 중심 산인 수미산 정상부에 위치한 도리천(忉利天)을 의미하며, 그곳의 제왕은 제석천(帝釋天)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이고 대웅전이다. 지금은 이 계단을 안전상 오르지 못하게 하고 오른쪽으로 돌길을 내어 돌아가게 했다. 불국사는 일부 구조가 석조로 되어 있기도 하고 방화와 지진에 파괴되더라도 곧 복구되어 건물 원형이 살아 있지만, 목조로 지어진 궁전과 사찰들은 대부분 전란에 소실되고 설계도면도 없어 원형복구가 힘들다. 옛터전에 주춧돌만 남은 황량한 황룡사터를 보며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전하는데, 그 중 일부분인 황룡사 9층목탑을 수 많은 시뮬레이션 끝에 최근 복원했고, 그 탑 하나만이 본래 자리도 아닌 K-Hotel 전면 빈터에 세워져 많은 이들을 경탄케 하고 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 좌우로 수목이 우거져 아름다움을 더하는데, 수백년은 된듯한 둥치 굵은 소나무들이 여러 개 살아남아 긴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다. 마침내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단청 오랜 목조건물이지만 대웅전 안의 중앙 정면에는 수미단(須彌壇)이 있고, 그 위에 목조석가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竭羅菩薩)이 협시(脇侍)하고 있으며, 다시 그 좌우에 흙으로 빚은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두 제자상이 모셔져 있다. 초파일이 지났지만 많은 이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1765년(영조 41)에 중창된 것이나, 그 초석과 석단 등은 대체로 신라시대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앞에 세워진 것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탑으로 잘 알려진 석가탑과 다보탑이다. 네팔과 몽골을 여행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여행하면서, 그리고 한국의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이 같은 오래된 그러나 규모가 훨씬 크고 정교한 전탑, 목탑, 석탑들을 본적 있고, 최근 조성한 기계로 깎은 석탑과 콘크리트 혼용탑들을 본 적 있지만, 사진으로 보든 실제로 보든 필자에게 이 탑들같이 경건하면서도 잔잔한 감흥과 자부심을 주는 것들은 없었다. 부여나 익산의 5층 석탑들처럼 논산의 미륵불처럼 망국의 애처로움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신라도 망하고 고구려 고토를 잃었다고 후세들의 원망을 사고 있지만 말이다.
불국사의 내력을 적은 '불국사 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이 절은 528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절의 규모를 크게 늘렸고, 751년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이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다시 크게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지으면서 규모가 2,000여 칸으로 커졌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 왜군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 버렸고, 그때, 금동불상, 옥으로 만든 물건, 돌로 된 다리와 탑 등만이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불타 버린 불국사의 목조건물들 일부는 광해군 때인 1612년에 복구되었고, 인조 때인 1630년에 자하문, 1648년에 무설전이 다시 세워졌고, 1659년에 대웅전이 세워지는 등 순조 때인 1805년까지 40여 차례의 복원공사가 계속되면서 안양문, 극락전, 비로전, 관음전 등이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러 국력이 약해지자 복원공사도 중단되었고, 이미 세워졌던 건물들도 낡고 파손된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가 일제침략기를 맞았다. 일제는 1924년에 대규모 보수공사를 하면서 다보탑을 해체수리하였다. 그때 탑 속에서 금동불상, 사리장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나 행방불명되었고, 관련된 기록 자료들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진행하였는데, 이때 무설전, 경루, 관음전, 비로전, 화랑 등이 복원되고, 대웅전, 극락전, 범영루, 자하문 등이 새로 단청되었다.
대웅전을 떠나, 올 때와는 다른 반대편 입구로 향했다. 돌다리와 작은 연못을 지나 4개의 거대한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을 지나 아래쪽 주차한 입구 쪽를 향해 걸어가자니 50여년전 수학여행때 웃고 떠들며 걷던 생각이 났다. 코로나팬데믹 여파에도 주말이라서인지 꽤 많은 이들이 경주를 찾은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이곳 불국사를 찾았고 또한 지척에 위치한 토함산 정상부의 석굴암을 찾을 것이다. 물론 어둠이 깔리면 밤의 운치 대단한 안압지를 찾을 것이다.
2021년 5월 31일
97년도인가 아이들 데리고 나갔을때 불국사에 들렸었는데 그때 건물 개수공사를 하던때라 거기에 쓸 기와장들을 기부금을 내면 주더군요.
기와장 밑에다 자기 이름이나 원하는 구절을 쓰게도 해주고. 그러니 우리들 이름으로 된 기와장 몇개가 불국사 지붕에 자리잡고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