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제10 대 황제인 환제가 양기의 독재를 무너 뜨린 배경은 당시 양기의 부정부패가 원인이었기도 했지만 환제가 양기를 없애기 위하여 환관들을 이용한 것이 환관들의힘을 키워준 계기가 되었다.
환관들의힘으로 외척을 몰아 내자 환관들은 구국공신으로 둔갑하고 황제의 눈과 귀를 막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
처음에는미운 양기와 외척을 몰아내는데 쾌재를 불렀던 세력들이 다시 환관들을 미워하게 된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
황제는 환관들에게 진 빚을 갚기위하여 환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다 .이에 따라 죄없는 충신들이 환관들의 입 자락에 하나둘씩 제거되기 시작하고 조정은 환관들 차지가 되고 만다 .환관들은 충신들을 몰아 낸 자리에 자기들의입맛에 맞는자를 황제에게 추천하여 임명토록 했는데 그것도 실제 알고 보면 돈을 받고 감투를 씨워주는 매관 매직에 불과 했다 .
환관들에게 둘러 싸여 정신을 못차리던 환제가 병으로 죽자 12 살의영제(靈帝)가 들어선다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어머니인 두태후가 섭정을 한다.
역시 역사는 반복 하는것인가?
두태후의 동생 두무가 대장군이 되었고 벼슬을 다시는 하지 못하게 하는 금고(禁固)를 받았던 진번이 재 기용되고 쫓겨났던 인사들이 재 기용된다.
이제 중국의 동한 정부는 제법 환관의 입김이 없는 정상적 이닌 나라로 돌아 가는 듯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순탄치는 않았다 .
환관들은 위기 의식을 느끼고 조정에 복귀한 인사들과 정면 대치가 시작된다 .
이에 두무와 진번등이 환관들을 쓸어 버리려다 오히려 환관들이 몰래 이들의 계획을 듣고 먼저 선수를 쳐 자객을 시켜 진번을 찔러죽인다 .두무도 환관들의 압력에 못이겨 자살 하고 만다.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많은 선비들이 옥사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
피 비린내 나는 암투로 조정에대하여 백성들도 이제한(漢)나라의 수명은 다 되었다고 모두 한탄한다 .
나라가 이지경이되니지방호족들은 농민수탈에 혈안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이것을 두고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하였다 .
이른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 보다 더무섭다"는 뜻이다.
황제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황제의 체면은 말이 아니니 지방의 호족들은 제 멋대로 농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매겨 죽을 지경의 사람은 백성들 밖에 없었다.
방치하는 중앙정부와 짜 낼대로 쥐어 짜내어도 세금이 부족 할세라 조금이라도 더 가혹한 세금을더 걷으려는 호족들의 가렴주구는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었다. 민란이 않일어 나는것이 이상 할 정도였다 .
드디어 올 것은 오고 만다 .중국 하북성 거록현에 살고있던 장각(張角)이란자가 태평요술이라는 이론을 내세워 자가가 세상을 바로 잡겠다고하며 스스로 대현량사 (大賢良師 )라 자칭하며 남부여대 하여 떠도는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
태평도라는 종교 이념때문에 지방태수들도 처음에는방관 상태에 있었고 중앙정부 자체도 조정내부의 갈등 때문에 별로 관심이 없어 처음에는 별탈 없이 커나갔다.
장각이 처음에 농민들에게 노랑수건 만들어 쓰게 한것은 칼날 같이 살벌한 푸른색 세상은가고 평화 스럽고 살기 좋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이메지를 고안하여 교묘히 써 먹었다.
이른바 황건군(黃巾軍)이라 칭 하였고 조정에서는 황건적(黃巾賊)리라 불렀으니 서로 대치되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나라를 구하는 군대라는 뜻이요 , 하나는 나라를 망치려는도둑이라는뜻이니 가히 나라꼴이 알아 볼만하였다.
이른바 황건군은 방(方)이라는 세포 조직이있었고 이 방은 36 개방으로 조직화 되었으며 장각도 지금 까지 대현량사라는 호칭 대신에 대장군이라는 호칭을 쓰였으니 이제는 종교 집단이 아니라 군사집단으로 변하고 말았다 .
이제 백성들은 한(漢)나라에 더 기대 할것이 없어지었다.
조정의 정치는극도로 부패하였고 지방호족들은 농민들의토지 빼앗기와 세금 거두기에혈안이되었으며 각처에서 봉기하는 농민 반란을 진압 하기위하여 군사비 지출이 늘어 날대로 늘어나니 백성들에 대한 세금 수탈은 날로 심해갔다 .
결국 백성들은 살기 위하여 황건군에 가담하거나 동참 할수 밖에 없었다 .
한편 동탁은 왕윤의 미인계에 빠저 자기 충직한 오른팔이었던 여포에게 주살 당하고 만다 .
그러나 동탁의 부하였던 이각과 곽사가 동탁의 원수를 갚기위하여 왕윤을 죽여버린다 .
그러나 이각과 곽사는 저희들끼리 의견 충돌로 싸움이 붙었다 .
이각과 곽사에게 끌려다니던 헌제가 장안에서 옛 서울인 낙양으로 다시 돌아 왔을때는 궁전은 모두 불에 타고 민가는 잡초만 무성하였다 .
다행히 불타지 않은 환관의 집에 머물게되었다.
이름만황제이지 대신들도 양곡이없어 굶기일수였다 .
동탁이 죽으니 연합군은 싸울 상대가 없어지었다. 각 군벌들은 자시의 이익만 챙기느라고 황제가 저지경이 되었는데도 누구하나 거들 떠 보는 사람이 없었다 .잘못하여 황제를 옹위 한답시고 각 군벌로 부터 눈총을 받았다가는 동탁 꼴이 나기 십중 팔구였기때문이었다.
이때를 놓지지 않고 야심 많은 조조가 군사들을 몰고와 헌제를 허창으로 모신다.
조조의세력이 자연히 커질수 밖에없었다 .
그러나 원소가 가만히 있지않았다.
황건적들은 황건적대로 , 군부의 책임자인 대장군은 대장군대로, 삼공이라 통하는 광록훈의 공신들은 있으나 마나였고,황제를 모시는 어위는 사라진지 오래 였다. 결국 한(漢)나라는 더이상 지탱할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각지역의 태수들은 자기가 스스로 왕이라고 자칭하며 황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