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제 9 대왕이 된 고국천왕은 신대왕 백고의 의 두째 아들이고 본명은 남무(男武)이다. 별호는 이이모(伊夷謀)이다.
그는 지혜와 판단력이 출중한 임금으로 등장하였다.
그는 임금이 되자 조정의 권력 중심이 연나부와 환나부가 장악하고 있는것을 알고 우선 조정을 왕권 중심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막강한 기존 세력을 꺾는다는 것은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형인 발기(拔奇)가 왕이 되지 못하자 소노부(消奴部)와 접촉이 잦아 지면서 아버지 신대왕에 쏠렸던 원망이 동생인 남무에게로 가기 시작했다 .
그러나 동생 남무는 이미 고국천왕이 되어있었다.
고국천왕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
대저 군주는 부하 관리들에게는 실적을 요구하기 마련이고 관리들은 이에 편승 군주에게만 공적을 세우려는 것이 인지 상정이다.
그래서 관리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충성 만 잘 하는척하기만 하면 군주에게서는 신임을 받게마련이다.대신 백성은 전혀 고려치 않고 윗사람 눈치만 보는 관리들 때문에 백성들은 모든것을 포기하고 멋대로 놀아나는 난민(亂民)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
고구려에는 그동안 연나부와 환나부가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정치를 좌우하고 있으면서 아버지 신대왕을 이용 하여 백성들 괴롭혔다.
고국천왕은 안으로 썩어 들어가는 고구려의 기강을 잡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 하다고 생각했다 .
( 나뭇잎을 하나 하나씩 잡아 당겨 큰 나무를 흔들려고자 한다고 가정 하자 ....이것은 누가 보아도 헛 고생일 뿐이다. 그러나 좌우에서 믿둥을 쳐서 큰 나무를 움직이려 한다면 면 아무리 큰 나무라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
그렇다 ! 관리들은 나무의 믿둥과 같다 .연나부와 관나부들이 장악하고 있는 뿌리 깊은 관리들을 장악 하여야 한다 )
고국천왕은 태자 시절 부터의 측근인 도솔수(都率修)를 부른다 .
"아무래도 환나부와 연나부의 세력을 꺾지 않고는 왕은 허수아비나 다름 없어 "
도솔수가 아뢴다 .
"그동안 고구려가 지탱 되어 온것만 해도 천만 다행입니다 . 지금 우리와 다른 민족이지만 중국에는 썩을 대로 썩어 농민 봉기가 잠잠 할때가 없다합니다 .우리고구려도 이번에 대 수술을 하지 않으시면 언제 남의 민족의 밥이될지 모릅니다 .특단의조치를 취하셔야 합니다"
왕은 자기가 평소 먹었던 마음을 털어 놓는다 .
"환나부와 연나부의 토졸들을 무력화 시키고 소노부와 발기 왕자와의 끈을 끊어야 할것 같소 "
도솔수가 왕의 핵심적 혜안에 놀란다 '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일을 잘 진행하시려면 방법이 중요합니다 "
"어떤 방법...."
"모든 사물은 특성이 있습니다 .사물의 도리에 쫓아 일을 진행시키면 모든것이 순조로운법입니다. 환나부, 연나부 소노부의 세력을 견제하시려면 제나부(提那部)와손잡으셔야 합니다 "
고국천왕이 감동한다 .
"좋은 생각이오 "
왕이 만족하게 생각 하는것을 보고 도솔수가 아뢴다.
"전하, 제나부의 우소(于素)와 손잡으십시요 .훌륭한 어른입니다 "
"늙어서 ....."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늙은 사람들이 더 있는법입니다.우소 어른은 어떤사람과 대화하던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판단 할줄 아는 지혜가있는 분이고 세상의 사람들이 보는 눈을 자기눈으로보 듯하며 세상 사라들이 듣고있는귀를 자기 귀로 듣 듯이 하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세상 사람들의마음을 내 마음 같이 여기는 분이니 그보다 더한 분이어디 있습니까?한번 찾아 뵙지요"
왕은 직접 우소를 직접 찾아 자문을 구한다 .
왕이 행차 하여 우소와 담소를 나누던 중 우연히 창밖의 예쁜 여인들이 도화 꽃 아래서 거닐고있는 장면을 보았다 . 그중에 아주 아릿다운 여인을 궁으로 돌아 와서도 왕의 머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왕이 도솔수를 불러 그여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
도솔수는 우소의 딸임을 알아 채리고 우소의 허락을 받아 왕비로 맞이 하도록 주선한다 .
도솔수가 제나부와 왕간의 끈을 더 공고히 맺어 주기 위한 계책이었다.
왕이된지 두해째 되던 해인 고국천왕 2 년 봄 2 월에 비(妃)로 우씨(于氏)를 맞이하여 왕후로 삼는다 .
그는 결혼 결과를 졸본으로 가서 시조의 사당에 제사 지낸다 .
고국천왕은 이제 왕권을 키우기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기 시작한것이다 .
이 무렵 중국의 동한(東漢)은 내란에 휩싸여 정신을 못차리고있었다.
오랜 동안 세금에 짓눌려 살아오 던 농민들이 땅만 조금이라도 갖고 있으면 수확량보다도 더 많은 세금을 걷우워가고 세금을 못내면 관가에 잡아다 구속 시키거나 볼기치기를 밥 먹듯이 하는 나라에 원한을 뒤로하고 전국을 방황하고 있었다.
남자는 지게에 옷가지와 이불을 짊어지고 여자는 머리에 먹을 것을 이고 중국 곳곳에유랑하는 농민들이 부지기수였다 .
이때 장각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도교와 민간 신앙을 토대로 태평도라는 종교를 만들어 세상을 구할길은 자기 밖에 없다며 방황하는 농민들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
중국은 삽시간에 장각의 세상으로 변하였다 .
하남성, 하북성, 산동성이 모두 태평도에 심취 되어 동한의 노골적인 세금 착취에 대한 반발이 점점 세력화 되었다 .
그들은 정부의 탄압에 맞서 조직을 공고히 했는데 전 신도를 36 방으로하고 소방, 대방등 계층화된 조직을 과시했다 .
그들은 머리 이마에 노란색 두건을 매었기 때문에 황건군이라고 스스로 불렀고 중국정부에서는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렀다.
-황건을 쓴 유적(流賊)-
유적이라는 말에 농민들은 코웃음을 치었다 .
"도적 놈들이 도적이 아닌 사람 들을 보고 도적 이라고 하니 누가 도적인고?"
당황 한것은 한(漢)나라 조정이었다 .
중국의 황제인 영제(靈帝)는 관군을 도원하여 진압 작전에 나섰으나 하남,하북, 산동, 사천 까지 뻗어나간 황건군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무려 반년을 끌며 중국 전체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만들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