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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보기    고구려(高句麗) 16 편  |  고구려(高句麗) 18편  

유리왕에 아버지가 세운 졸본 땅의 맹주로 등장 하기는 하였으나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

아버지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의 기반이 계루국 이었지만 계루국 이라는것도 알고 보면 다양한 세력 집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즉 계루부출신의 유리왕의 왕권과 이에 통제를 받는 각 노부(奴部) 가 국가권력의 양축이라 할수있다 .
계루부, 연노부,소노부,절노부, 비류부등은 유리왕로서는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지않을수 없다 .더구나 계루부 출신 의 계모였던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반란 사건은 유리왕으로서는 계루부 출신 왕으로서 부담 되지 않을수 없었다

유리왕은 졸본땅의 주축 세력인 계루부가 소서노 탈출 사건 이후 관계가 소원 해진감도 없지 않았다 . 그래서 유리왕은 이러한 각세력을 끌어 안기 위하여 국중대회(國中大會)라는 제사행사를 벌려 집단 내부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 소속원간의 일체감과 단결을 도모도 해보았다

국중 대회 라는것은 동명왕 고주몽에 대한 제사였다 .이때 각부족은 고구려의 공동 시조로 동명왕으로 모시도록 하여 제사를 지냄으로서 각부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해 보기도 하였다

유리왕은 아버지 주몽에게 복속된 국가들과 선비족 토벌로 얻은 전리품과 정복 된국가들로 부터 받는 공납의 징수로 날로 나라의 부(富)가 늘어 나자 이를 이용 왕권 강화도 해보았다

그러나 뿌리 깊은 각 부족들의 유리왕에 대한 반발은 유리왕으로서는 여간 부담이되지 않는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계루부 일부 대인(大人)들중에는 한(漢)의 접경지대에 세운 비류 백제(伯帝)와 한강 중류에 세운 십제(十濟...후에 百濟)의 온조와 내통하고있다는 정보는 유리의 심경을 그리 편치 않게 하였다

마리가 아뢰었다
"전하 , 지금 계루부와 절노부 대인들 중에는 아직도 소서노와 비류 온조와접촉하며 대왕을 비방하는 사례가 있다 합니다 .당장에 그자들을 잡아들여서 목을 베이십시요 "
유리왕이 말한다
" 태후와 비류,온조에게 동조 하는자가 일부 있다는 말은 듣고있으나 그래보았자 지금는 그들이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아니오? 나는 신경 안 쓰기로 생각 하고 있었는데 새삼스러히 또 그런것을 가지고 계루부와 절노부 인중에서 아직도 미련이 있다는 말이오?"
"그러하다 하옵니다"
"그것은 잘못 들었을거요 .과인이 보기에는 그 계루부 나 절노부 사람들을 잘 달래어 잘만 임용해 쓰면 괞찬은 인물들 이라고 생각하오 너무 그들을 색안경으로 보지마오"

'전하 , 그렇지 않사옵니다 .신이 보기에는 그 대인 이라는 자들은 겉으로는 임금께충성하는척하나 하나 실은 그렇지않은자들입니다. 상감을 찾아 뵐때나 물러 날때가 앞뒤가 분명치않은자 들이며 평소 우리 공신들에 대하여도 좋은점은 아예 말조차 꺼내지 않으며 악한것 이라도 있는것 처럼 들춰내기 일수입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고 공신들을 모함이나 한는 족속들과 머리를 맞대고 큰일을 도모해서는 절대 않되옵니다 "

유리왕도 각부 족장들이 최근 비류,소서노,온조 사건 이후 태도가 불손 한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는 했으나 선왕을 도와 고구려를 일으킨 부족들에게 까지 함부로 했다가는 더큰 화를 가져올것 같아 망서리지 않을수 없었다
"알겠소 ,생각해봅시다"
유리왕은 아버지가 세운 졸본땅에서 부족들과 피비린내나는 살륙을 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리도 그점 모르는바 아니었다
그는 평소에 마음 먹고 있던 왕성을 졸본에서 다른곳으로 옮길것을 건의한다
"전하 ,그러시다면 이곳은 아무래도 대왕과 궁합이 맞지 않는곳입니다 .차라리 불원간 다른 곳으로 도읍을 옮겨 이들 4부족들의 입김을 끊어보시는것이 어떠하실까요?"
유리왕은 마리의 제의에 대하여 과연 새로운 생각이구나 하고 귀가 번쩍 뜨이기는 했으나 섣뿔리 아버지가 세운 도웁지를 이전한다는것은 쉽게 다룰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하고 말을 삼간다
"............"
며칠후 유리왕은 이문제를 아버지 주몽의 절친한 친구이자 공신으로있는 협부에게 말을 꺼내었다 .
협부는 임금의 엉뚱한 생각에 놀라운 표정을 짓고
"도읍을 옮기시다니요?"
"영 ,졸본은 내게 마음이 들지않으니 웬 일이오?"
"전하 , 졸본이 어때서 그러십니까?"
"계루부인지 하는 놈들이 계속 과인을 괴롭히니 하는 말이오"
협부는 왕이 최근 들어 정사에 골몰하기 보다 몇일씩 궁궐을 비우며 사냥이나 다닌 다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한 국가의 도읍을 옮긴다고 그런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습니까?"
"일전에 마리 공이 내게 간하기에 하는 말이오"
"전하, 도읍지는 함부로 옮기는것이아닙니다 .도읍을 옮기는 국가 안위에관한 중대한사항입니다 . 동명왕께서 세운 이 도읍지가 어때서 그러십니까?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것은 도읍지가 잘못 된것이 아니라 임금이 백성들을 어떻게하면 잘 먹여 살리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계루부나 연노부등에서 간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시고 군주가 하여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유리왕은 협부가자기 의견에 적극 동참 할 줄 알았다가 오히려 핀잔 비슷한 말에 조금 기분이 상하였다 .
"그러면 공의 생각은 어떻게 해야 민심을 바로 잡을수있다고 생각하오?"
"전하 ,모든것은 상감께서 하시기에 달렸습니다 .이를테면 군주가 판단을 잘못하면 나라가 위태롭고 백성들은 방향을 잊게 합니다 .반대로 어진 군주가 나타 나면 나라가 편안해지고 백성이 잘 다스려지는것입니다 ,세상의 화와 복은 군주의 생각하나에 달려있습니다 .도읍지가 나빠서 정치가 안 된다는것은 당치않는 말씀입니다 "

유리왕은 할말이없었다 .
유리왕은 협부의 말은 귀에 들어 오지않았다 .한시라도 새로운 곳에 도읍지를 정하고 유리 왕국을 별도로 세워 골치아픈 졸본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더 굳어갔다 .

이런일이 있은후 부터 유리왕은 정사(政事)를 소흘히하고 자기의 독특한 취미인 사냥하기에만 열중하였다 .

협부는 왕의 마음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하여 왕비를 새로 맞아 들이도록 주선했다
바로 다물도 책임자인 순노부족의 송양(松孃)의 딸이었다 .지역 호족들과 사이가 좋지않은 유리왕에게 혼인으로서 관계를 깊이 맺게 하기위함이었다 .

혼인이 결정 되자 왕비를 왕궁으로 데려왔다
이 시기에 남쪽 한강변에는 백제를 온조가 나라를 세웠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온조는 비류와 헤어저 자기를 따르는 오간(烏干),마려(馬黎)등 열사람의 신하의 도움으로 지금의 서울 땅인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이라는 봉우리에 올라 도읍지로 정할곳을 찾다 보니 북으로 높은 산이있고 남으로 큰 강이 흐르는 한강주변이좋아보였으나 온조는 유리왕의 추적이 두려워 더 남쪽으로 내려 갈것을 생각한다

오간(烏干)이 말한다
"보아하니 이곳은 장차 크게 될 땅이니 도읍지로 정하시지요"
온조가말한다
"땅은 산높고 물 넓고 깊어서 좋기는하나 북쪽에서 외적이 침공하면 남쪽에 있는 큰강 때문에 방해가될듯하니 적합치않은것 같소"
오간은 온조가 북쪽에서 추적할지 모른다는 피해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온조가 딱하게보였다

"설마 유리왕이 이곳 까지 공격하겠습니까? 지금 졸본성은 북쪽의 부여국과 서쪽의 한(漢)이 언제 싸움을 걸지모르는 판국에 이곳 까지 신경쓰겠습니까?"
"아니오 형은 성격이 평소 온화하다가도 때로는 불같은 성격이라 언제 공격 할지 모르오"

마려가 대안을 내놓았다
"그러시다면 한수 건너 저 멀리 보이는곳에 도읍을 정하시면 좋지 않습니까?. 저기보이는 하남(河南) 땅은 북으로는 한수(漢江)를 띠고있고 동으로는 높은산이 있으며 남으로는 옥택(沃澤)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로 적으로부터 방호를 할수있는 지역으로 천험(天險)의 지리(地利)를 겸한 곳입니다 .이런곳은 다시얻기 힘든 지역입니다 .따라서 이곳에 도읍을 정함이 마땅 하다고 생각합니다"

온조는 이곳에 토성을 쌓은뒤 하남 위례성이라 이름을 붙이고 열 신하를 보필을 받으며 처음에는 국호를 십제(十濟)라하였다

이때가 중국에서는 한(漢) 의 성제(成帝)시절이고 고구려 유리왕 때였다.
비류는 지금의 중국 요동성 요하서쪽에 나라를세우고 백제(伯帝)라 칭하고 자기가 주몽의 맏이라는 정통성을 구실로 언제인가는 졸본을 수복하리라 마음 먹고있었다

비류가세운 대수(帶水)와패수(浿水)는 지금 중국 요녕성 대능하(大凌河)유역으로 한(漢)의 대방군(帶方郡)이 다. 한(漢)이 내란에 휩싸이자 중국과 가차이 있는 낙랑군만 남기고 폐군 시킨 곳이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의 황해도설은 허구임)

비류는 패수 근방의 비옥한 땅에 나라를 세우자 농사를 장려하고 군사 훈련을 열심히하여 언제인가는 졸본성 탈환의기회를 엿보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고구려는 비류백제에 비하면 하잘것 없는 소국 이므로 하루라도 고구려의공격에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다행히 이러한 걱정을 덜수 있는것은 고구려와 사이에있는 패수(浿水..지금의 요하))덕을 톡톡히 보고있는셈이었다
비류는 우선 유리왕이 눈치를 못채게하기위하여 국명을 백제라 이름짓고 중국식으로 자기이름을 구이(仇怡)라고 가명을쓰고 있었다

그는 한(漢)을 끌어 들여 고토수복(故土收復)의기회를 엇보고 있었던것이다
그는 한의 요동 태수 공손도(公孫度)의 딸을 맞이 하여 장차 옛땅인 졸본을 공격할때 힘을 얻기위한 정책적 결혼도 잊지 않았다
< 비류의 백제는 삼국사기에서 인용한 북사(北史)와 당서(唐書)에 기록되어있다 >

비류는 자기가 세운 백제에 동명왕의 사당을 세우더니 서쪽에 위치한 낙랑(樂浪)에 사신을 보내어 서로간에 침범을 않기로 수호 조약 까지 맺어 놓았다 .
철저한 친한(漢) 고구려 배척 정책이었다

한편 고구려는 겉으로는 태평성세가 이루어 지고있 었으나 궁중에는 왕비 송씨(松氏)가 산욕열(産褥熱)로 급작스럽게 별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때 태어난 아들은 다행히무사하였다
별안간 왕비가 죽자 유리왕은 더욱 마음둘 곳이 없었다 .
그가 즐기는 사냥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었다
급작스러운 왕비의 죽음을 가지고 백성들은 제각각 소문이뒤 숭숭하였다 .
"왕비가 왕자를 출생할때 왕이 살생을 금해야하는데도 신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슬산에 사냥을 갔다가 흰노루가 나타나자 쏴 죽이었다는거야....부정탄게 분명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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