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직은 일본의 거물급 정객들과 평소 친분이 두터웠다. 천리교 신자 였던 그는 종교 목적이나 연극 시찰등 이유로 뻔질나게 일본에 자주 드나 들다가 일본에서 살기도했는데 일본 여자와 재혼 까지 하여 살면서 일본 정계인물과 접촉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인직이 일본 정객 고마츠를 만나려고 예고 없이 그의 집에 나타나자 고마츠는 당황하였다 "아니 조선이 어딘데 여기 까지 먼곳을 ..... 별안간 웬일이 십니까?" "미안 합니다 .졸지에 찾아와서 ...이완용 총리 대신 께서 고마츠 선생을 만나 뵙고 몇가지 간곡히 말씀을 올리고 돌아 오라 해서 염체 불구 하고 찾아 왔습니다 " "하, 이총리께서..." 고마츠는 이완용이 보냈다는 말을 듣고 이인직에 대한 대접이 더 융숭 해지었다
고마츠는 일본의 거물급 정객으로 일본 정계에서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특히 그의 한일 합방론은 타를 추종 못할 정도를 조선 사정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고마츠는 술상을 내 오라하였다 무더운 여름 밤 이었지 만 시원한 맥주 맛에 금방 더위가 가시는 듯했다 이인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마츠 선생, 요즈음 조선 사정을 잘 아시지요?" " 그럼요 .조선에서는 일진회가 합방 집회를 여는등 분위기가 잘 조성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일본 정계에서도 매일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
" 선생 말씀 하신 대로 우리 한국에는 요사이 일진회가 주축이되어 연일 데모를 하지 않나 ? 성명서를 발표 하지 않나 ? 떠들석합니다 .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 날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근 이 총리를 찾아 뵙고 대세가 돌아 가는 것이 심상치 않으니 총리께서도 합방 문제는 한일 양국의 중대사이니 만큼 총리 각하의 거취와 각오를 빨리 결정 하여야 한다고 아뢴적이있습니다 2 천만 조선 백성들과 함께 쓰러지고 말것인가? 아니면 6 천만 일본 신민들과 함께 살아 남을 것인가 ? 라고물었고 이어 제가 총리께서는 이 두길 중 한길을 선택 할수 밖에 없으니 .어느길을 선택 하실것입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고마츠는 이인직의 말에 관심 있다는듯이 다그쳐 물었다 "그래 뭐라고 말씀하십디까?" "이 총리 대신께서는 저의 말에 잠간 깊이 생각 하시다가 서서히 말씀 하시기를 ' 요사이 우리 내각의 역활을 가지고 일본 당국에서는 말이 많은데 아무리 우리를 잘못한다고 송병준이를 총리로 내세운다는 말을 듣고있는데 과연 그렇게 해서 우리 이상으로 일본을 도울 내각을 새롭게 만들수 있겠느냐 며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니냐고 말씀 하시는것을 들었습니다 "
고마츠는 이인직의 말을 듣고 일단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황은 지금 조선에 나가있는 데라우치의 정책 방향에 좋은 획기적 정보가 아닐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 자, 시원한 맥주나 한잔 하십시다" 고마츠는 아주 좋은 정보를 가져 왔다고 내심 군침이 당긴것이었다
넓은 응접실에는 어느새 달빛 까지 새어 들어와 분위기를 한층 더 돋구었다 "걱정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일본 정계에서도 일진회 회원들이 매일 집회를 갖고 성명을 하는등 활동에대하여 감명을 받아 한때는 송병준 대감 같은 분을 총리로 임명하여 밀고 나가야 탄력을 더 받을 것이라는 말은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선생의 말을 들어 보니 우리 정객들이 조선의 내부 사정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총리께 전하십시오 . 절대 내각 변동은 없을 것이니 어서 소신껏 일한 합방을 서두르기나 하시라고요"
이인직은 이 말을 듣고 기다리던 대답이 쉽게 나오자 앞에 있던 맥주잔을 단숨에 두잔이나 비웠다 .일단 송병준 총리기용설의 불씨는 끈셈이기때문이었다 "데라구치 통감에게도 말씀이나 해 주십시요" "걱정 마십시요 ,데라구치야 내 말이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는사람 이니까.....하하하" 고마츠의 웃음소리가 넓은 정원을 흔들었다
(고마츠는 후일 자서전인 '조선병합의 이면'이란 책에서 이런 내용으로 기술하고있다 )
어쨋든 이인직은 일본 거물급 정객의 확답을 받아 가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완용은 고마츠의 대답을 받은뒤 자신감을 갖고 한일합방에 더 열을 올리기 시작 했다
대한제국은 이제 바람 앞에 촛불과 다름 없었다. 이완용 총리대신 같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자리에서 있는자가 나라를 위하여 일해야 함에도 오히려 한일합방에 열을 올리고 있을뿐아니라 고종이나 순종 같이 무능하고 무사 안일에 빠져 있는 최고 권력자를은 마치 태평시대의 군주 모양으로 궁궐내에서 인자한 웃음만 띄우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 하기 이를데 없었다
백성들도 마찬 가지 였다 나라가 위기에 빠저 있는데도 종로의 상인들은 보통 날과 다름없이 가게문이나 열고 돈만 벌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백성들이야 무슨 죄가 일을까 마는 나라가 온통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 가는데도 그일은 자기 일이 아니고 남의일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몰라서 그러는지 서울 장안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어쨋든 나라의 운명은 시시각각으로 시계의 초침과 같이 움직여가고있었다 나라의 최후의 보루인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 된 마당에 어떻게 초개 처럼 목슴을 바치는 독립 투사들의 힘만으로 이를 건질수 있겠는가? 이리 보고 저리 뜯어 보아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보통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일본이 이것을 그냥 둘리 없었다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인 황제는 훌륭한 지도력, 국민들의은 독립 의지, 나라의 권력을 쥔 대신들은 나라를 위한 충성심이 있어야 할텐데 어느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으니 나라가 어찌 될것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이인직의 고마츠 면담후 이완용은 데라우치와 내각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합방문제에 나서기 시작했다 한편 궁궐에서는 윤덕영, 윤택영 , 민병석이 거의 매일 같이 조석으로 고종을 문안드리며 이구동성으로 왕가와 종친의 신분 보장과 종묘 사직 뿐만아니라 백성들의 안녕을 유지 하는길은 협약을 원만히 성립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고 고종에게 누누히 설명하고 있었다 . 벌써 7일째였다. 이에 고종은 이미 대세가 기울어 지었다고 판단하고 어쩔수 없이 한일 합방 조인에 대하여 수락 하고 만다
1910 년 8 월 22 일 오후 1시 창덕궁 대조전 홍복헌에서는 대한 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총리 대신 이완용을 비롯한 내부대신 박제순, 궁내부대신, 민병석, 탁지부대신 고영희, 시종 원경 윤덕 , 친위부 무관장 이병무, 승녕부총관 조민희 ,농상공부대신 조중웅등 제 대신들이 모두 좌정하였다 어느 대신 하나도 나서서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이완용이 미리 만들어 갖다 준 조칙만이 순종황제의 탁자위에 올려있었다 이윽고 순종황제는 손을 파르르떨면서 조칙을 들고 읽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짐은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한일 양국간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 양국간에 서로 합하여 일가를 이루기로 하였다. 이것은 한일 양국이 만세의 행복을 도모하는 것으로 생각 하고 이에 조선의 전 통치권을 짐이 매우 신뢰 할수있는 대일본제국 황제 폐하께 양도할것임을 ......결정....하였도다" 조칙 마지막 대목에서 순종은 차마 매듭을 못 짓고 더듬 거리다가 눈시울을 붉히며 간신히 다 낭독하였다 순종은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통감 데라우찌에게 뜻을 전하라 일렀다 "총리 대신께 전권을 위임하니 데라우치 통감에게 알리시요" 하고 일어나더니 두말 없이 내전으로 사라지었다
각 대신들은 머리만 조아리고 꿈쩍 하지 않았고 이완용은 자신이 전권 대신으로서 대한제국을 일본에 헌납 하는데 공로자라는 뿌듯함에 들떠 어서 데라우치 통감에게 달려가고 싶어 어쩔줄 모르고 들떠 있었다
오후 3 시경 이완용은 데라우치 통감을 찾아가기 위하여 마차에 올랐다 그는 통감부에 도착 하자 마자 데라우치에게 순종의 위임장을 뵈워 주고 보라는 듯이 조약문을 다시 펴놓았다
"제1조 한국 황제는 일본 제국 황제 폐하께 모든 통치권을 영구히 양도한다 제2조 일본 제국 황제폐하는 1조의 양여를 수락하고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한다 "
이 한일 합방조약은 조선 역사에있어서 가장수치스럽고 욕된기록이었다
오후 4시가 되자 이완용과 데라우치는 조인문에 서명을 하였다 이로써 오백년 동안 연연히 이어오던 조선 왕조는 끝내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한일합방이 발표되자 백성들은 허탈에 빠지었다 . 금산군수 홍범식은 합방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자살 하였다.유생 황현도 스스로 목슴을 끊었다.
일본은 한국 백성들의 허탈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이 사전에 세 워놓은 계획대로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1910년 8월 29일자로 한일 합방을 발표하면서 국호인 대한제국을 조선이라고 고치었다 이제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이었다 따라서 황제는 왕으로 쓰도록하고 순종황제의 연호인 융희도 없애버리고 일본의 연호인 명치(明治...메이지)를 쓰게 하였다 이로써 조선을 다스리기 시작한 일본은 통감 제도를 없애고 조선총독부를 만들었다 1910년 10월 1일을 기하여 조선 총독부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초대 총독은 통감이었던 데라우치가 임명되었다 데라우치는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육군 대신 출신이었다 그는 한일 합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자 드디어 본성을 들어 내었다 모든일이 군대식으로 처리 하려 하였다. 총독에 취임한 데라우치는 제일먼저 대한제국의 내각을 해산기키었다 그리고 왕족의 반발을 우려해 왕족과 대신들에게 귀족의 칭호를 주었다 .왕실에서 쓸돈도 제법 든든하게 주었다 효자,열녀등도 포상하고 죄수들도 석방하였다 조선사람들에게 사탕 발림 하기위한 수작이었다 데라우치는 합방과 동시 일어날 폭동이 제일 마음에 걸리었다 그래서 본국에서 추가 파병 요청을 하여 군대수가 10 만명에 이르렀는데 그중 헌병마도 2 만명이나 되었다 이들 헌병들이 경찰일을 맡아보게하여 경찰서 주재소를 새로 만들고 전국에 700여개를 두었다 헌병대 까지 합치면 1300 여개소나 되었다
데라우치는 헌병 경찰을 앞세워 제일 먼저 한일이 조선의 항일 단체를 모두 해산시키었다 다음은 신문이었다 조선 민중의 눈과 입을 막아 항일운동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데라우치는 총독이되자 평소부터 눈에가시처럼 여기던 경성신문, 대한신보, 제국신문, 매일신문, 황성신문,등을 모두 폐간시키었다 특히 항일을 내세웠던 대한매일신보는 데라우치가 합방전 부터 술좌석에만 나가면 노래처럼 없애겠다고 떠들던 신문이었다 총독이되자 데라우치는 가차없이 이 신문을 폐간시키었다 데라우치는 대신 자기의 대변인이라고 할수 있는 한글판 매일신보만 남겨 두었을 뿐이었다 합방됨으로서 이제 조선의 입과 귀가되는 신문은 씨가 마른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인들과 기독교와 천도교 출신 인물들은 이꼴을 두고 볼수 없었다 일본 헌병 경찰의 눈을 피하여 독랍 운동을 하기시작 한것이다. 대한제국이 외국세력에 의해 기울어져 갈즈음 서울과 지방에서는 많은 학교들이 들어섰다. 교육으로 기울어저 가는 나라를 일으키기 위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가서 교육제도를 보고온 이용익이 보성학교를 세운것을 필두로 엄주익이 양정학교, 엄비가 진명학교, 민영휘가 휘문학교, 보인학회가 보인학교를 세웠고 잇달아 숭문, 중동, 선린 등 사랍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서울에는 교동, 재동, 인현등 공립 보통 학교가 생기기도 했다 조선 총독부는 이러한 학교들이 많이 늘어나는것은 지식인들을 많이 양성하는것이고 지식인들이 많이 늘어나는것은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는 세력이 되는것으로 보고 이를 탄압하기시작하였다
전국에 걸쳐 2216개나 되는 학교들에 조선 총독부는 '조선 교육령'이라는 법을 만들어 소학교를 보통 학교로 , 중학교를 고등 보통 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표면적으로는 각종 학교를 근대화 시키는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모든것을 일본화 하기위한 술책이었다
학교에서는 조선인들의 독립 정신을 아예 뿌리 뽑기위하여 군복 비슷한 제복을 입은 선생이 칼 까지 차고 칠판 앞에 서는 웃지못할 일 까지 생기었다 . 학교에서는 한글을 아예 없애 버리었다
조선의 전통적 유교사상은 어디로 가고 장차 자기들의 수족처럼 부려먹기위한 농업이나 공업등 기술 분야만 집중하여 가르치었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고등 교육을 가르치기를 원치 않았다 . 많이알면 알수록 일본에대한 항거 하는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배우지못한 농민들은 억압적으로 누르면 말을 잘들었으나 지식인들은 말을 듣지않았다
처음에는 일본에 협조하는척했으나 거의가 민족주의자로 변모 그중에도 일본에 건너가 신지식에 물 들은 조선 청년들은 가르쳐 준 보람도 없이 일본의 얄팍한 정치에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였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자기의 나라가 있었던 조선 왕국시대에는 공부만 잘하면 조선조정에서 인정하여 벼슬도하고 지위도 얻어 입신양명할수있는 상승적 기회가 있었으나 나라를 잃은 식민지하의 조선인들은 이제 개 돼지만도 못한 노예로 전락 해버린 때문이었다
최근 데라우치는 술만 먹으면 이제는 조선의 신 지식인을 어떻게하면 없애나 하는 생각으로 영일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조선인들의 향학열을 식히기위해 보통학교만 나와도 공무원이될수있다는것을 뵈워 주려고 면서기로 채용해주었다 . 무엇때문에 논팔고 소팔아 고등보통 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다니느냐는 것이었다 보통학교만 나와도 면서기를 할수 있는데 구태어 대학에는 왜 가느냐는것이었다
한국인은 대학을 나와 봤자 고급공무원이 될수 없는데 왜 구태어 고등교육을 받으려고 기를 쓰느냐 하는것이었다 한국인들이 학문에 대한 미련을 봉쇄 하기위한 간교한 술책 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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