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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井上 )공사는 조선에 나오자 전임자 오오토리(大鳥)가 입수한 대원군이 평양 감사에게 보냈다는 밀서를 심도 깊게 연구하였다 .
조선의 일본공사로 발령 받을때 총리가 준 밀서 원본을 품고 왔기때문이었다 .
새로부임한 일본공사 이노우에는 우선 조선 조정의 총리 대신인 김홍집을 중심으로한 내각에 힘을 주기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
김홍집은 이노우에 일본 공사와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었다 .
고종 21 년 김옥균이 3 일정권을 이룩 하다가 갑신년 청나라의 도움으로 민씨 정권이 이들을 진압하자 김옥균 , 박영효.서광범등이 일본 공사와 함께 도망 친적이 있었다 .
당시 청나라의 힘을 입은 민씨 정부는 예조참판 서상우를 일본에 보내 일본이 김옥균등을 사주해 정변을 일으켰으니 책임을 지고 김옥균 박영효등의 소환을 요구 하였으나 일본 정부는 김옥균을 보내기는 커녕 오히려 서울에 있는 공사관이 불 탔으니 변상하라고 요구하며 거부하였다.
조선 정부도 이에 맞 대응 하자 당시 전권대사 이노우에가 육군 2 개 대대 , 군함7 척을 몰고와 당시 좌의정 김홍집에게 협상 하여 한성 조약을 체결한 인연이 있는사이였다.
일본 공사 이노우에는 군국 기무처를 폐지 하는대신 내각 수반에 김홍집을 임명 토록하여 왕에게 압박을 가하고 김홍집에게 총리 대신 직함을 주었으나 오랫 동안 청나라와 관계를 갖고 있었던 김홍집은 일본공사의 마음에 썩들지 않았다 .더구나 김홍집은 대원군과도 그리 사이가 나쁜편도 아니었다 .
그래서 그런지 내각에서 결정된 사항이 왕의 형식적인 결재만 받으면 되는 일을가지고 사사건건 대원군의 눈치를 보는것 같았다
일본 공사 정상은 조선에 부임시 일본 당국에서 넘겨준 소위 대원군 밀서를 갖고 있었다
그는 대원군을 조정으로 복귀 시킨것도 전임자 대조 공사의 공로인데도 오히려 청나라로 보내는 밀서를 평양감사에게 보내는등 행위를 하고도 시침을 떼고있는것이 괫심하였다
(대원군을 제거해야한다)
새로부 임한 이노우에 공사의 결심이었다
이노우에 일본 공사의 속셈은 대원군 뿐만 아니라 임금 까지도 정치에서 손을 떼도록 할 작정이었다 .
그대신으로 김홍집을 필두로한 대신들에게 실권을 맡기는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대원군이 청나라를 굴뚝 같이 믿고있는동안 왕과 민비는 일본이나 청나라 보다 러시아에 힘을 얻어 일본을 견제 하려 하였다
일본공사는 일본의 예를 들며 왕은 어디 까지나 상징적 존재로 있어야 하며 왕의 권위와 정치가 구분 하여야 하되 내각이 실질적으로 잘해야 정치가 잘되는 것이라고 임금에게 설명하였다
고종은 일본의 제도가 그렇다니 할말 을잊고 있었다.그렇지 않아도 군국 기무처가 모든 정책 결정을 하고 있는판국이니 말이다 .
일본은 갑신 정변 당시 일본으로 도망 갔던 박영효와 서광범을 다시 데리고 들어와 김홍집 내각에 입각 시키었다 .이 두사람은 갑신 정변 때 일본 세력을 업고 정권을 차지하려다 일본으로 도망친 역모자로 낙인 찍힌사람들 이었다 .
일본이 이들을 이용하여 내각을 자기 마음대로 할려고 심어 놓은 인물 들이었다
그러니 김홍집 내각의 대신들로서는 그들이 그렇게 탐탁하게 보일리가 없었다
이노우에 일본 공사는 종래의 군국기무처를 폐지하는 대신 내각으로 하여금 대원군과 임금과의 차별화를 기하기 위하여 홍범14 조라는 법을 만들어 개혁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담은 소위 내정 개혁법을 발표하였다
홍범 14 조라는것은 오늘날 헌법과 같은 최초의 국가 기본법으로 그내용은
1.조선은 청나라 의존하려는 태도를 버린 자주 독립 국가이다.,
2.종전 까지 왕실 사무인지 국정 사무 인지 모르는 것을 분리한다
3.임금은 반드시 대신의 의견에 따라 결재 하되 왕실이나 종친은 간섭 못한다
4.궁궐이나 관청의 비용은 반드시 에산 범위 내에서 하고
5. 각부서의 직무와 권한을 명백히한다
6. 징병법을 실시한다
7.지방 관제를 고친다
8.민법,형법을 개정한다
9.공정한 인사관리를 한다.
10.세금을 걷을때는 반드시 법에 정한 최소 한도로한다
11.왕실의 경비를 줄인다
12.인재 양성으로 새 문물을 받아 들인다
13.세금을 함부로 걷지도 못하며 새로 세목을 정할때는 탁지부에서 결정한다
14.왕실의 규칙을 따로 정한다
등이었다
대원군도 총리대신 명의로 발표된 홍범 14 조에대하여는 할 말이 없었다
지금 까지 임금의 말이면 모든것이 법으로 통했는데 내각의 결정 없이는 대원군도 결재권이 없으니 허수아비 신세로 추락한 셈이었다
더구나 홍범 14조에는 곳곳에 왕실의 간섭을 배제하는 조항이 삽입 되어 있었다.
임금에게서 정치적 실권을 빼앗는 법이었다
(병신같이.....)
대원군은 한숨만 깊게 쉬고 만 있었다
대원군이 한숨 만 쉬고 있을때 느닷 없이 일본 이노우에공사가 운현궁으로 대원군을 찾아 왔다
" 대감께서는 우리 일본의 힘으로 섭정을 하신것 아닙니까?"
"그렇소만 "
"그런데 대원위 대감께서는 어째서 우리 일본을 배신하고 청나라와 내통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런일이 없소이다"
일본공사 정상(이노우에)는 품속에서 대원군이 평양 감사에게 보낸냈던 밀서를 꺼내 놓았다
"이 밀서는 그럼 누가 보낸것이 오이까?'
"............."
대원군은 자기가 보낸 밀서 임이 맞자 할말을 잊었다 .평안감사를 믿었던 것이 후회될뿐이었다
결국 대원군은 섭정의 자리를 내놓고야 말았다
일본은 고종에게서도 정치에서 손을 떼게하고 김홍집 총리 대신 이하 각대신들에게 정치의 실권 을 쥐게 하는작업을 거의 성공한셈이었다
이즈음 왕과 민비는 청나라와 일본에 실망하고 러시아 대사와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대원군은 섭정 자리를 물러 나고도 고종을 폐위하고 손자 이준용을 왕으로 추대할꿈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도 왕이 알게되자 역적으로 몰려 교동으로 귀양을 보내었다
이제 대원군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이 되었다
그가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고 막대한 세금을 걷우워 경복궁을 짓고 외세를 막기 위하여 프랑스 신부등 을 죽이고 전국의 650 개의 유생들이 모이는 서원을 철폐하는등 각종 개혁이라는 이름의 지난 정치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
홍범 14 조로 세상은 달라져 갔다
관리들이 쌀이나 다른 곡식으로 받던 녹이 월급으로 바뀌 었고 과거 제도도 없애었으며 양반이고 쌍놈이고 할것 없이 보통시험에 합격하면 관리가 될수 있었고 지방 부서도 8 도 안에 군현 제도를 없애고 23 개부를 두고 그 밑에 군, 면을 두었다.
그리고 지방관서장에게 법을 만들수도 없었고 군사를 다스릴수 없게 됐다.
지방 수령이 하던 사법도 분리하여 재판소와 고등법원이 별도로 생기었다
세금도 지방 수령이 제멋대로 걷던것을 징세서라는것을 곳곳에 세워 법에 의하지 않고는 함부로 걷지 못하게했다
모든권력은 이제 총리 대신 이하 대신들에게 돌아갔다 .왕이 속수 무책으로 있자 민비가 이를 갈았다
(김홍집 이놈 언제부터 네가 총리 대신이드냐?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제가 임금이나 된것처럼 우쭐거려?)
하고 애꿎인 김홍집을 원망하다가도
(아니야, 모든것은 김홍집만 때문 만이 아니다. 일본놈들도 문제야....이놈들 두고보자 )
하고 김홍집과 일본을 싸잡아 원망하였다.
민비가 김홍집을 미워하는것는 김홍집이 일본 공사의 허수아비 노릇하는데도 있지만 대원군과 가차이 지낸일이 있기때문이기도 했다
민비는 기어이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내각중심의 제도를 깨뜰여 왕권을 되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김홍집내각에는 일본공사와 같이들어온 박영효가 내부 대신이 되어 있었다
민비는 박영효를 염두에 두고있었다
(박영효 ,이자를 끌어 들여야겠다 )
민비는 박영효를 잘안다 .박영효는 철종의 사위다 김옥균과 박영효가 갑신정변때 일본으로 망명길에 올랐을때 청나라의 힘으로 일본을 몰아내었던 고종이 역적으로 몰았던 인물이다
박영효는 김홍집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일본대사가 박영효에게 모든 자문을 받고있었기 때문에 총리 대신인 김홍집이 탐탁하게 생각 할리 만무었기 때문이다 .민비가 그런사이를 모를리 가없었다
민비는 박영효를 불렀다
"나라가 건실 하려면 왕실이 건재 하여야 하는데 이러다가는 조선 왕조가 어찌될가 두렵소이다"
"왕비 마마 무슨 말씀이옵니까 .왕실을 신이 지켜주지않고 누가 지켜드립니까?"
"옳은 말씀이오 ,이제 부터 왕실의 안전을 오직 내부 대신만 믿겠소"
"......."
두사람은 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다
박영효는 과거 자기가 역적으로 몰려 일본으로 망명 했던 경력이 있어 왕실을 경계했고 민비는 민비대로 김홍집 내각을 무너 뜨리려면 박영효를 이용하는수밖에 뾰죽한 방법이없다고 생각했다
민비는 갑신정변때 악몽을 잊지못하고 있었지만 김홍집과 박영효간의 갈등을 부축여 왕권을 회복하기위해서는 원수와도 손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리둥절 한것은 박영효였다
그렇지않아도 일본 공사의 입김을 받고 귀국 해 김홍집내각에 내부대신으로 있지만 김홍집은 박영효에대하여 매우 껄그럽게 행동하였다 .
(역적놈이 뻐젓이 일본놈들을 등에 업고나타나서 무슨짓을 하려고.....)
김홍집은 갑신정변의 악몽을 아직도 갖고있었다
박영효는 민비가 자기를 이토록 믿고 부탁하는데 생각을 바꿔 먹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박영효는 마침내 민비에게 충성하리라고 마음을 굳히었다.
민비에게는 또하나의 좋은 소식이들어왔다 .
일본이 청나라 이홍장과 맺은 마관 조약에 의하여 요동반도 할양을 러시아가 주동이되어 이를 프랑스와 독일이 일본이 차지하지못하게 저지시킨사건이 생긴것이다
민비는 이소식을 듣고
(흥 일본 놈들이라고 별수 없군 ,청나라를 연전 연패 시키더니 러시아에게는 꼼짝 못하는구먼.....)
민비는 일본을 밀어 내기 위하여는 러시아를 이용하 는동시에 총리대신 김홍집부터 몰아 내어야 하겠다고 마음 굳혔다 .김홍집은 최근 총리대신 이라며 거들먹거리는것이 보기 싫었을 뿐아니라 평소 대원군의 눈치를 보는 태도가 미웠기 때문이었다.
민비는 박영효에게 김홍집의 오른팔 격인 군부대신 조희연을 해임 하여야 한다고 귀뜸했다 .
박영효는 그러지 않아도 군부대신이 껄그러웁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임금에게 군부대신이 군사훈련을 소흘히하는등 무능하다고 경질 해줄것을 건의 했다
민비도나서서 왕에게 건의했다
왕은 요즈음 내각의 힘이 강화된 이후 민비에게 더 비중을 두고 있는 편이었다
조희연 해임을 명하자 대뜸 김홍집이 들고일어났다
"군부대신을 해임 하려면 신도 고만두겠습니다"
만류 할줄 알았던 김홍집의 사의 표명은 즉각 받아들여 지고 후임으로 박정양이 총리로 임명되었다
김홍집이 물러나자 박영효는 민비 만 믿고 있었으나 민비의 태도가 별안간 달라저 갑오경장으로 쫓겨났던 민씨들이 대거 다시 기용되기 시작했다 .민비의 책략이었다
민영달 .민영환,민영소등이었다
박영효는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속았구나....)
박영효는 내부 대신의 직권으로 민비의 친위대인 궝궐 수비대를 자기를 따르는 군대로 바꾸려고하였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민비가 임금에게 귀뜸 이를 못하게 하였다
(민비를 제거해야한다)
박영효는 이런생각이 들자 일본공사관 직원들과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러나 이불만의 소리가 민비의 귀에 들어갔다
박영효는다시 역적으로 몰리어 체포령이 내리었다
그는 날쎄게 일본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여 일본으로 다시 망명하고 말았다.
박영효가 내부대신 자리를 내놓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모두 물러났다 .
민비는 눈에 가시 같은 박영효가 물러 가자 잦은 내각의 경질이 부담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
일본공사와 사이에 두 사람씩이나 인사 조치 한데 대한 반발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민비는 왕에게 다시 귀뜸하여 김홍집을 다시 총리로 앉히되 왕을 무시하는 듯하는 행동이 보이면 다시 갈도록하고 다시 총리로 발령하였다 .
일본 공사도 태도가 누그러지었다.
어느새 조선 정치의 실질적 권한은 민비에게 돌아가있었다
민비가 러시아에 관심을 갖자 조정은 러시아와 손잡은 대신들이 늘어났다.
일본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