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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이 임금으로 부터 국정을 맡아 달라는 지시를 받아 입궐 한지 이틀후인 고종 31년 7 월 25 일 충청도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는 청나라 북양 함대 소속 3 천톤급 1.2호 군함이 정박 중에 있었다.
200 미리 함포가 좌우로 2 문씩 장착 된 이 두 군함은 청나라 산동 반도 위해위 항에서 출발하여 청군 2 천명을 싣고 조선의 내란을 진압 하기 위하여 아산만에 들어와 있는 배로 청 나라의 주력함이었다.

풍도는 태안 반도 북쪽 제부도 서남쪽에 있는 외딴섬으로 안개가 많은 지역이다 .
7 월 25 일 새벽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청나라 군함 1호 군함 망루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망루병이 걷히는 안개 사이로 느닷 없이 시커면 정체불명의 군함이 1호와 2호 사이로 접근하는 것을 보고 놀라 비상 종을 치었다.

일본 전함 1.2.3.호 4 천톤급 이 접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전함은 청의 군함을 주시하며 엔진을 끄고 안개속을 헤치고 접근해 오면서 각 함정의 부함장들이 함장의 명령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전함 함장이 소리치었다 .기수함에서 발포 깃발이 일제히 올라갔다
"발포 "

청나라군들이 미처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일본 전함 함포에서는 불을 뿜기 시작했다 .
청나라군의 함상은 삽시간에 포격에 맞아 불바다가 되어 아수라장이 되고 배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청군들이 바닷속으로 뛰어 들었다 .
한시간 가까이 퍼부어 대던 함포 사격이 멈추자 청나라 함대가 모두 바다 속으로 침몰되기 시작하였다.

청군과 일본군과의 해전은 일방적인 일본의 승리였다 .안개 낀 새벽을 이용한 작전도 주효 하였지만 화력 또한 일본 군함의 우세 속에서 이루어진 승리였다.
어쨋든 일본은 청나라가 변변치 못한 북양 함대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 동안 자력으로 건조한 철갑선, 순양함 등 55 척의 6 만톤급 까지 건조하여 그 위력을 과시 하고 있었던것이다 .
게다가 성능면에서도 청나라의 주력함 보다도 평균 시속이 1 해리나 빠를 뿐만 니라 평균 선령도 중국 보다 2 년이나 었고 포사격도 청국에 비해 발사 도가 두배나 우세하였다 .

일본군은 청군을 선전 포고도 이 기습 공격을 가한후 나흘후인 7 월 29 일 평택에 주둔 하고 있다가 충청도 성환으로 이동한 청나라 육군과 과 접전 하여 청군을 격파하자 청군은 아산, 공주,대전, 충주,를 거처 춘천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강원도를 거처 평양으로 가서 본국에서 오는 지원군과 합칠 계획이었던 것이다 .

일본군은 청군의 퇴로를 막기 위하여 일본 하관 항을 출발한 육군 2진을 가 병하여 1진은 부산,대구,충주, 한성, 황주를 거처 평양으로 , 다른 1진은 원산으로 상륙하여 서쪽으로 거침 없이 청군을 추격 평양 까지 진격 하였다 .
고종 31년 9월 15일
청나라 1 명이 평양에서 일본과 일전을 불사하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청군은 선발대가 황해도 황주에서 여지 없이 패퇴하자 9 월 16 일 밤 평양을 포기하고 압록강을 건너 후퇴하고 았다

이와같이 청군과 일본군이 분탕질 하고 있는 사이에도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 만 자국에서 가져 왔을뿐 저들이 먹을 식량, 부식.와 군수 물자 수송 노동력을 조선 정부에압박을 가해 "조선대 일본 맹약"이라는 조약을 강요 현지 조달 하였으므로 조선 백성은 전쟁터를 제공한 외에도 군량공급 이라는 이중고통을 당하고있었다 따라서 조선의 자주권이란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결국 조선에서 청나라 세력은 싹쓸이 한것이나 다름 없이 되어 버리고 조선은 일본의 좋은 요리감이 되고말았다 .
일본은 본격적으로 "개혁"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내정 간섭의 칼을 계속 들여대었다 .
일본은 임금과 왕비는 정치에 손을 전혀 못대게 하고 일부 대신들만이 정치 정권을 갖게 하는 내각책임제 비슷한제도로 제도를 바꾸도록 강요하였기때문이었다
일본은 소위 군국 기무처(軍國機務處)라는 계획 중추 기관을 만들고 일본 공사가 고문이되어 일일히 간섭하였다 .군국기무처가 정치 군사에 관한 모든 사항을 의결함으로서 왕의 권한을 가로채게 하기 위함이었다

군국 기무처는 정치 군사에 대한 의결 기관으로 왕과 왕비 대원군도 얼씬 못하게하였다.
영의정 김홍집에게 총재관이란 직함을 주었고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의원들로는 박정양, 민영달, 김종한, 김윤식, 조희연, 이윤용, 김가진, 정경원, 우길준, 김하영등 17 명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집행 기관으로는 궁내부와 의정부로 나누고 의정부 밑에 내무,외무, 탁지, 법무,학무 공무,농상등 기구를 두었는데 이를 8 아문이라고 불렀다.

의정부의 수장으로 총리 대신 이었고 궁내부와 각부인 아문에 대신 차관을 두었는데 차관을 협판이라 하였다.
어쩄든 이 군국 기무처라는 곳은 왕이나 왕비나 대원군도 얼씬 못하는 특별 권력기구로 발돋음 였다 .왕에게 속하는 모든 권한을 내각에게 넘기 록하는 획기적 개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후일 역사가들은 갑오 경장이라 부른다

아무 실권을 쥐지 못한 대원군은 왕의 권한을 자기가 대신하여 휘두르던 시절의 옛날의 대원군이 아니었다. 모든 국가의사는 군국기무처의 박정양, 민영달등 17 명의 의원들이 결정을 하여 집행했기 때문이었다 .
대원군에게는 할일도 없을뿐만 아니라 할수도 없게 제도를 만든것이었다. 이제는지난날의 대원위 대감의 분부 따위 같은 명령은 꿈에도 생각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청일 전쟁과 일본의 내정 간섭을 보면서 실권 는 왕에 하여 연민의정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대원군은 옛날 같은 권력도 없을 뿐만아 니라 임금이 대원군에게 내린 정치와 군사에 관한 모든 권한도 군국기무처와 일본공사가 주무르고 있으므로 있으나 마나한 재가 되어 린것이다
(그렇다, 일본 공사놈에게 속았다 .나쁜놈들...일본놈들을 몰아 내어야 왕의 권위가 서지... ,군국기무처가 어디서 말라 비틀어진 의결기관이야...)
대원군은 허수아비가 된 자기의 처지에 분노를 먹음치 않을수 없었다.
(병신같은....함부트면 왕에대하여 욕이 입 에 나올번 했다 .이게 모두 며느리짓 때문이야...)
대원군은 이렇게 된것이 왕과 며느리 민비의 탓으로도 돌리었다
그는 불현듯 엉뚱한 생각 까지 하였다
(왕을 갈아 치워?...)
대원군의 생각은 여기 까지 미치었다

(아니야, 아니야,그렇다면 누구와 손을 잡는다는 말인가? 청나라? 러시아? .....)
대원군은 어디 손 잡을곳이 없었다
(동학군 전봉준?..........)
아이로니컬하게도 대원군은 동학의 접주 전봉준에게 까지 비약하였다.
그러나 뾰죽한 대안이 없었다
(역도들과 손을 잡아?)
대원군은 점점 마음의 갈등이 일기시작했다
(동학이 왜 여도란 말이냐 . 나라가 부패한것이 조병갑이 같은 놈을 군수로 임명한 왕에게 책임이 있지 ......맞다 , 전봉준이는 역도가 아니라 나라를 구할 의인이다)

일본과 청국이 전쟁을 치르고 왕권은 17 인 합의제인 군국기무처로 넘어간 사이에 잠잠 할줄 알았던 삼남지방의 소요는 끊이지를 않았다 .
동학란으로 홍역을 치른 모든 관아는 모든 권위를 동학 농민군에게 빼앗기고 왕이 인정한 동학의 집강소의 눈치를 보아야 고을을 다스릴수 있을 정도였다 .

뿔뿔이 흩어진 농민군은 각지역에서 행패를 부리었다 .
7 월 9일에는 전라도 부안, 같은 날 충청도 서천에서는 관아를 습격 무기고 창고까지 털리고 .7 월 17 일에는 충청도 연기 ,같은 날 한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계속 벌어지었고 8월달에 들어서서는 공주, 천안 등지에서 소란을 피웠다.

동학의 집강소의 접주들은 처음에는 왕의 회유책에 동조 하는 듯했으나 이들은 점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7 월 15 일 전라도 남원 땅에서 농민들이 전봉준과 김개남을 불러 농민 대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전봉준이 조정과의 타협을 비난하는 듯한 발언이 마구 쏟아 지었다
"도대체 나라가 우리를 위해 해준다느것이 무엇이냐? 나라가 세금 따위나 부과 시켜 백성들을 괴롭히지를 않나? 한다는 짓이 서양 오랑캐들과 청나라 ,일본 놈들까지 끌어들여 이 나라를 저들 마음대로 분탕질 하고 있는 데도 임금이 도대체 무엇 하고있는거냐?"
전봉준에게 직접 대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전봉준이 듣는 어감은 그리 유쾌한것은 아니었다 .

각지에서 이렇게 소란이 일고 있고 일본군이 평양 전투에서 승리하여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때인 8 월 25 일 전주 감영에 있는 전봉준 대도소(大都所)에 한성에서 대원군이 보낸 밀서를 들고 왔다는 한 사내가 있었다
"대원군이 왜 나를 찾아?"
전봉준은 대원군의 명성은 듣고있었지만 그의 밀사가 직접 찾아왔다는데 의아했다
"대원위 대감께서 장군을 찾아 뵙고 이 밀지를 드리라 해서 왔습니다 "

전봉준이 밀서를 뜯고 읽어 보았다
"장군을 내가 찾아 보고 말을 전달 해야겠지만 거리 관계로 밀서만 보내어 미안 하외다 .
장군도 아시다시피 지금 조정에서는 일본공사가 군국기무처라는것을 만들어 놓고 온나라를 저희 나라 처럼 저들 마음대로 요리하고 있소이다. 임금이 있으되 있으나 마나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에게 먹히고말것이니 이를 물리치려면 우리힘으로 해야 하는데 이번 일을 성취하려면 장군의 협력이 절대 필요하오.일본도 이제 평양에서 승리했고 저희 마음대로 개혁이라는것을 해나가고있는데 그대로 두면 나라를 빼앗기게 생기었소 . 그러니 장군, 일본 세력을 내쫓으려면 지금 밖에 없소 이다"
전봉준은 대원군의 밀지를 받고 잠시 눈을 감았다 .
(내 일찌기 고부땅에서 태어나 세금 착취에 노한 백성들의 뜻을 받들어 여기 까지왔건만 지금에와서 전주 대도소에서 세월만 허비 할수 없는일 아닌가? 대원위 대감도 한때는 국정을 바로 잡으려고 무던히 애쓰던 양반인데 지금 일본놈들 때문에 힘을 못쓰는 모양인데 가만히 있을수 없지........)
전봉준은 마음 속으로는 대원군의 말에 동조하지만 동학교의 내부 사정이 쉽지 았다 .
교주 최시형이 무력 행사를 반대하기 때문이었다
"동학교는 무력을 사용 해서는 않된다 .그러므로 교도들을 선동하여 국가에 대한 반란을 이르키는 것은 국가에 대한 죄악이다"
라는것이 최시형의 신조였다

그러나 전봉준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야 ,지금이 어느때냐? 지금 동학이라는 것도 국가 없으면 소용이없다. 대원위 대감이 부탁 한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이르키기 위한것이다 .하물며 대원위 대감 까지 이렇게 나서는데 말이다 .....)
그는 마침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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