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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금구, 무장등에서 접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
군중들은 어느덧 4000 명이나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홍계훈을 전라 병사 겸 초토사로 임명 하고 병사 700 여명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고종은 동학 농민들이 점점 세력이 강해 지는데 대하여 몹시 걱정 하고 있었다
" 듣자니 동학 반란군이 고부를 떠나 이미 태인을 점령하고 금구현 원평으로 이동하고있다는 보고인데 홍계훈이 이런 판국에 어떻게 빨리 전라도에 육로를 통해서 간다는 말이오"
영의정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먼저 열었다
"전하 , 걱정 마시 옵소서,육로 로는 며칠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군산으로 가도록 조치 했습니다 .배로 가면 하루면 족합니다 "
"그동안 동학 반란군은 가만히 있겠소?"."
"그래서 김문현 전라 감사에게 경군(京軍)이 도착될때 까지 태인과 부안으로 군사를 이동 배치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
"알겠소"
임금은 그때서야 안심이 되는지 내전으로 들었다
홍계훈의 경군 800 명은 제물포(인천)로 향하였다
한편 원평 농민군은 부안으로 이동 고부 도교산에 있던 농민들과 합류했다
전봉준은 김개남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황토현에서 관군과 전투 채비를 하고있었다
홍계훈의 경군 700 여명은 4월5일 저녁에 인천을 출발 하여 다음날 군산에 도착하였고 전라 감영군이 있는 부안으로 향하던 중 전라 감영군이 황토재에서 크게 패하여 도망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홍계훈은 겁이더럭 났다.700 명의 경군으로 4000 명의 성난 농민군을 친다는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 였기 때문이다 .
농민군은 황토재 승리 여세를 몰아 정읍 읍내로 처들어가 정읍 관아를 점령하고 그길로 노도와 같이 고창, 영광 ,함평, 나주까지 진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홍게훈은 농민군이 거처간 정읍.고창을 추격했으나 농민군은 벌서 나주에서 장성쪽으로 나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보고를 마친 부장이 시무룩해있는 홍계훈에게 입을 열었다
"이놈들이 벌써 장성땅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합니다"
" 호남의 심장인 전주성을 노릴것이 분명해 "
홍계훈은 자신이 없었다 .농민군의 엄청난 숫자 때문이었다
부장이 안을 꺼냈다
"삿또, 반도들은 숫자가 많아 행군 하는데 문제가 없을수 없습니다. 반도들은 부안, 고창,영광, 나주를 거치동안 매우 피로 할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
"그놈들은 전주로 통하는 장성읍 황룡리를 거치지 않으면 전주로 갈수가 없습니다 .이곳을 막으려면 황룡리에 진을 처야 합니다"
"황룡리? 그곳에 진을 치려면 정읍을 거쳐서 들어가야 하는데 이곳 고창에서 정읍까지는 엄청난거리지 "
"맞습니다 .반도들은 지금 나주를 떠나 장성읍으로 들어올것이 분명합니다 "
"그렇긴한데 정읍이나 함평이 모두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으니 잘못하다가는 기습당하기 십상이지 ......어떻게 장성땅으로 들어선다?"
"걱정 마십시요 이곳은 저의 처가가 있는곳이 므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10 리쯤가면 장성으로 넘어가는 살우치 고개가 있습니다 .이곳을 넘으면 바로 황룡촌입니다 이곳을 지나갈때 기습공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적은 숫자로 적을 치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
"음......"
그래도 홍계훈은 자신이없었다 .엄청난 농민군과 일대일로 대적한다는것은 쉬운일이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홍계훈은 부장의 말대로 살우치 고개를 넘어 황룡리 뒷산에 진을 치기로하고 고개를 넘기시작했다 .고개는 예상과 달리 사람들만 겨우 넘을만한 소로길이었다
"저놈들이 이고개로 넘는다면 고개위에 복병을 배치하면 좋은데....."
"동학 무리들이 고창쪽으로 으로 빠질리가 없지요"
"그러니까 문제지...."
홍계훈은 고개를 넘으면서도 마음에 차지않는모양이었다
그는 고개위에서 장비를 점검 하다 대포가 보이지 않는것이 발견되었다
"대포가 어디 있는가?"
"길이험하여 이동상 문제가있어 고개저쪽 숲속에 감춰 놓고왔습니다 "
"뭐라고?"
홍계훈은 대포만 굴뚝 같이 믿고있었는데 대포가 않보인다는 바람에 놀랐다
그는 더럭 겁이더 났다 .농민군들이 닥아 오고있으므로 더이상 물러 날수도 없기때문이었다 .그가 전라도에 온후 한번도 농민군과 전투라고는 해본적이없기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는 어쩔수 없이 장성읍 황룡리로 경군을 배치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과연 긴 뱀같은 긴 농민군의 행열이 장성읍을 향하여 들어 오고 있었다
농민군은 부장이 예측 한대로 황룡리 산 아래를 지나 더니 모두들 그자리에서 행군을 멈추고 식사판을 벌리고있었다
홍계훈과 700 명의 경군은 숨을 죽이고 기관총을 그들에게 조준하였다
홍계훈이 손을 번쩍 들자 별안간 콩볶는듯한 기관총소리가 나고 황룡촌 골짜기가 아수라장이되었다
"어떤놈이냐?"
전봉준이 산위를 바라 보니 기관포를 쏘는 관군이 눈에 들어왔다
전봉준이 순간 차고 있던 장검을 빼들었다
"저 놈들을 일망 타진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농민군들이 갖고 있던 총과 화살이 경군을 향하여 날기 시작했다
"돌격하라"
전봉준의 두번째 명령이 떨어지자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농민군 4000 여명이 일시에 새까맣게 산으로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
경군은 풍지 박산하여 넘어 왔던 살우치 고개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장성쪽으로 도망치게 놔 둔 전봉준은 이 싸움에서 기관포 사격으로 농민군도 적지않은 인명 피해가 처음 생기었다 .기관포 사격으로 40 여명이 죽은 것이었다.
홍계훈은 그길로 전라감사 김문현이있는 전주성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전주성의 전라 감사는 어디로 도망가고 전봉준이 먼저 점령하여 있었다 .전봉준은 홍계훈이 전주성으로 향할것을 미리알고 선수를 쳤던것이다
전봉준은 전주성으로 처들어 온다는 말을 듣고 미리 전라도 관군이 도망치는바람에 힘 안 들이고 전주성을 먼저 차지 할수 있었다.
홍계훈은 할수 없이 전주성 외곽인 남 완산 용두현에다 진을 치었다 .용두현은 전주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험한 산 고개였다 .
홍계훈의 경군은 전주성내를 향하여 대포를 쏘아댔다 .겁을 주기 위함이었다
농민들도 쏟아지는 포탄에 사상자가 생기자 전의를 잃고 있었다
" 저놈들의 대포와 기관포만 없어도 좋겠는데...."
총 사령관 김개남이 사상자가 생기자 많이 걱정이되었다 .
전봉준이 사상자를 돌보다가 김개남에게 닥아왔다
금구 접주 김덕명이 권했다
"이렇게 시간만 끌면 큰일입니다 .공격을 하시지요"
".........."
전봉준은 결심하고 용두현에 공격령을 다시내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
용두현 고개는 상상외로 높고 험하여 처 올라 가다가 경군이 쏘아대는 기관포와 대포에 많은 희생자만 내었다
전봉준은 일단 철수를 명령하고 전주성으로 들어 왔다
홍계훈은 생각 밖으로 경군이 선전하자 기운이 백배하였다
그는 가지고 온 종이와 붓을 준비 하라하여 글을 써나갔다
"전봉준에게 말하노라
그동안 그대들이 억울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 잘 알고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나라가 외세로 존망 지척에 있어 시끄러운때 어찌하여 이런 난리를 피우는가? 그대들이 억울한사연은 전하께 올려 해결 해 줄터이니 무기를 걷우고 고향에 돌아 가거라 "
홍계훈은 글을말아서 전봉준에게 사절 한명을 보내었다
전봉준은 글을 받고 고민에 빠지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게 대치만 하고 있을수 없는 일이아닌가?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여 살릴수 있을것이며 그 사이에 저놈 들은 계속 증강 될것이니....)
전봉준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홍장군, 서신은 잘 받아 보았소이다 .우리가 이어려운 시절에 왜 이렇게 일어났는지는 장군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니 기쁘오이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는 그리 크지 않소이다 .우선 이나라의 썩어 빠진 관리를 이 나라에서 뿌리 뽑아 주시고 그 다음 도탄에 빠진 백성들로 부터 제발 새로운 세금 좀 걷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소이다 .그렇게만 약속 하신다면 용의가 있겠소이다.마지막으로 지금 전주에는 경기전이 일부 파괴 되었으니 대포 쏘는것은 삼가해주시오 "
홍계훈이 글을 읽어 보더니
"흠 됐다 ....이만 하면 희망이 보이는군"
하고 다시 다른 한 쪽으로 임금에게 장계를 올리고 다시 글을 써서 전봉준에게 보내었다
"그대가 요구 한대로 조병갑은 의금부에 갇혔으며 이용태는 귀양을 보내었소 . 전라감사 김문현은 내가 책임지고 파직토 록 임금께 건의할터이니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조치 하시오"
전봉준은 글을 읽어 보니 더이상 벋힐 명분이 없었다 그는 최종적으로 다시 붓을들었다
"홍장군께 한 마디 묻겠소이다 , 이번 농민들의 봉기는 어느 누구가 선동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 순수한 농민들의 의사였소 .만일 해산을 한다면 저와 동학도들은 물론 농민들에게 죄를 묻지않겠다는 약속을 할 의사기 있는지 답변 해주시오 . 만일 그것을 못한다면 우리들은 여기서 죽을 수 밖에 없소이다 "
홍계훈이 읽어 보니 이렇게 하지 않고는 농민군을 달랠 방법이 없다
" 그대가 요구 한대로 신분을 보장 하겠으니 해산 하라"
이렇게 홍계훈과 동학 농민군간에 지리한 10 일간의 협상이 벌어지고 있는사이에 조정에서는 전라도에서 소식이 없자 초조한 나머지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관군으로서는 동학농민군을 막아 낼수 없다고 판단하고 청나라에 동학군 진압을 요청 한것이었다
청나라로서는 어떻게 하던지 조선 내정에 간섭하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아닐수 없었다 .
이런 사실도 모르고 전주성을 점령한지 열흘만에 성문을 활짝 열었다
농민군이 전주성은 나갈때 홍계훈은 약속대로 그들 뒤를 추격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농민군이 물러나자 문제가생기었다 .
농민군들이 거처간 각지 역은 지방 수령들이 죽거나 도망간 처지라 완전 치안 공백상태였다
조정에서는 긴급 대책으로 전라도 53 개군에다 동학도와 집적적인 마찰을 피하기위해 집강소라는기구를 만들어 동학도들에게 스스로 다스리도록 조치했다 .각읍에 집강 한 사람과 서기, 성찰, 집사, 동몽 이라는 직책을 주어 관리들이 다시 자리 잡을때 까지 그들을 감시 하도록 해 주었다
.
전주에는 대도소라는 것을 두어 전봉준이 총지휘 토록 하였다
전봉준은 조정의 배려로 만들어진 집강소의 조직이 아주 좋다고 생각하고 동학이있는곳이면 모두 이런 조직으로 바꾸도록 하여 나중에는 전라도 뿐만 아니라 경상도 ,충청도,강원도 경기, 황해, 평안도 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전봉준은 각고을의 집강소가 할일12개 항의 행동지 침을 하달하였다
내용은 동학교도와 조정은 서로 미움을 버릴것,부패 관료를 색출 할것, 악질 양반을 엄벌 하도록 하고 노비 문서를 없앨것, 청상 과부도 시집을 갈수 있도록 한다, 잡세를 자꾸 신설 못하게하여 세금 행정을 바로잡는다 등이었다
이렇게 나라가 어느정도 안정 되어가고 있는때 한성에서는 3 천명의 청나라군대와 7 천명의 일본군이 용산에다 진을치고 동학군 을 몰아 낸다는 명분으로 진주 하기 시작했다.
청군이들어오자 일본도 뒤지지 않겠다고 군대를 들여온것이었다.
그들은 동학 농민군이 해산 하였는데도 물러 갈생각을 하지 않고있었다
전주의 전봉준의 귀에도 이소식이들어 왔다
(이놈들이 궁 궐까지 범했다며....)
전봉준은 이를 뽀드득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