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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0 년 11월 3 0일
조선 조정은 별안간 조병갑을 익산군수로 전임 발령을 내렸다가 어쩐 일인지 채 한달도 안되어 다시 고부 군수로 재 발령을 내렸다.
농민들은 지긋 지긋한 조병갑이 익산 군수로 전임이 잘 되었다고 생각 하고 있었는데 또다시 부안 군수 자리로 다시 돌아 오자 분노가 폭발하였다
고종 31년 1 월 10 일 새벽 동이틀 무렵 이었다
만석보 남쪽에 있는 말목 장터에 ,농민 차림의 사람들이 손에 삽, 괭이 ,소스랑,등을 가지고 모여 들기 시작 했다.날씨가 정월이라 추운 날씨 였으나 모여든 농민들은 보이지 않는 열기로 가득했다.동학도간에 사발통문이 돌아간것이다
여러사람들이 무언가 서로 말을 건네고 있는 동안 군중 앞에 키가 그리 크지도 않으나 당차고 야무지게 생고 이글거리는 눈빛의 한 사내가 나타났다
" 전봉준 접주다"
누군가가 소리 치자 모두가 전봉준에게 시선을 집중 되었다 .전봉준이라는 사내가 큰소리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농민 여러분,우리 고부는 역사 이래로 8 도 가운데도 국가 살림의 제일 큰 몫을 하는 지역 이었습니다 .
임진란때는 우리가 지은 쌀을 군량미로 대어 나라를 구하였고 그도 모자라 근왕군으로서 우리몸을 받처 행주산성 전투에서 적의 예기를 꺾기 까지 하며 굳굳하게 고장을 지켜 왔습니다 .
그런데 이번에 탐욕스럽고 행패가 심한 군수가 부임 해 오더니 거친 땅 을 놀리지 않겠다며 개간을 시켰고 보 막기 공사를 농민들이 스스로 이룩해 놓은면 세금을 절대 받지 않겠다고 약속 까지 했었습니다 .
그러나 보십시요
저, 조병갑은 세금을 받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돈을 강제로 받아내지를 않나? 돈이 없어 세금을 못내는 백성들을 관가로 잡아다 곤장을 치지않나? 행패가 극에 달하고있습니다
농민 여러분, 어제 낮에 군수가 잔치를 벌렸다합니다. 술판에는 술잔이 돌아가고 기생이 춤을추고 호화판이었다 합니다
여러분 그그렇다면 그 호화판 잔치 상 앞에 앉은 군수의 황금 술잔에 부어저 있는 빛좋은 술은 누가 만들어준 술입니까? 농민 여러분의 고혈이 아니고 무엇이며 상위에 그득한 기름진 안주는 농민 여러분의 땀이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기까지 열변이 이어 지자 여기 저기서
"조병갑을 죽여라"
"탐관 오리 조병갑을 없애 버리자 "
하고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전봉준은 고함 소리를 들었는지 않 들었는지 열변을 계속하였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 헐고 썩어 빠진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이런 군수가 다시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일어 섭시다 .나를 따르셔 주신다면 제 온몸을 받쳐 도탄에 빠진 여러분과 함꼐 싸우겠습니다 "
"전봉준 장군 만세"
누군가가 만세 함성을 지르자
"전봉준 장군 만세 "
하고 온 장터를 울렸다
"조병갑을 죽여라"
여기 저기서 고함이 들렸다
"자 나를 따르시오"
전봉준이 앞장을서 성난 군중을 이끌고 관아가 있는 고부 읍으로 돌진 하였다 .말목에서 고부읍 까지 나가는동안 여러 마을에서 세금에 시달렸던 농민들이 자진하여 곡괭이와 삽 ,소스랑을 들고 따라 나섰다
관아 의 관리들은 엄청난 농민들이 몰려 들며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자 놀라 도망 치었다 .
"조병갑을 잡아라"
'관속들을 한놈도 남기지 말고 잡아라"
술에서 덜깨어난 조병갑은 자기를 죽이라는 함성이 들리자 이방을 을 찾았으나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조병갑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담을 넘어 산을 넘고 들을 건너 허겁 지겁 인근 정읍으로 도망가서 말을 하나 얻어 타고 전주 감영으로 달리었다
군중들은 관아를 샅샅히 뒤져 창고 문을 뜯기시작했다 .무기가 가득 하였다 ,모두 창과 칼을 빼어 들고 조병갑 찾기에 혈안이되었으나 조병갑은 발견 할수 없었다
"양곡 창고를 열어라"
누군가가 소리 치자 창고문이 열리었다 .
창고안에는 물세로 걷우워 들인 곡식이 창고에 가득하였다
"이놈이 이렇게 까지 세금을 걷워다 여기다 쌓아 놓고 어쩌자는거야 .이래 놓고 우리를 굶주리게 만들어? 죽일놈"
전봉준은 가능한 한 원래의 양곡 주인에게 돌려 줄수있는데 까지 돌려 주도록하고 나머지는 가난한 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오랫동안 눌려만 지내던 농민들은 해방감에 도취되어 거리로 쏟아저 나와 만세를 불렀다
"전봉준 장군 만세 "
"전봉준 장군 만세 "
누군가가
"녹두장군 만세 "
하고 만세를 부르자 만세를 부르던 농민들이 어리 둥절하여 그쪽을 바라 보았다
어떤사람이 전봉준의 작은 키에 다부진 입과 매부리 같은 눈을 보고 부른 장난 끼 어린 만세 소리였다
이소리에 어리 둥절 한것은 농민 아니라 전봉준이었다 .자기를 향하여 어떤 백성이 소리치는것을 보고 전봉준은 그에게 손을 들어 빙그레 웃었다 .
농민들은 녹두장군 만세를 부르던 사람에게 화를 낼줄 알았던 접봉준이 오히려 자기 보고 부르는 애칭으로 들었는지 빙그레 여유있는 웃음으로 손을 번쩍 들어 보이는 여유있는 모습에 모두들 박수를 치었다
"와 ....녹두장군 만세 "
"전봉준 장군만세 "
백성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만석보 새 뚝을 헐어버리자"
누구인가 소리치자 농민들은 벌떼 같이 자기들이 쌓았던 뚝으로 몰려갔다
삽시간에 뚝이 무너지고 벽력 같은물이 하류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전봉준은 고부 관아에 일단 진을치었다
한편 조병갑은 전주 감영에 간신히 도착하여 전라 감사 김문현에게 찾아갔다 .
" 동학 접주 전봉준이 반란을 일으키어 고부읍을 점령하고 관아를 습격하여 쑥대 밭이 되었습니다 .어려우시지만 군사를 동원해 주시든가 곤란 하시면 군사 천명 만 저에게 맡겨 주시면 앞장서 진압 하겠습니다"
전라감사 김문현은 음흉한 사람이었다
그는 벌써 조병갑이 찾아 올줄 알고 미리 조정에 장계를 올려 놓고 자기 휘하의 정석진이라는 군위에게 군사 50 몀을 주고 농민으로 위장시켜 전봉준 농민 군중속에 투입해 놓고 전봉준의 움직임에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여차하여 전봉준을 진압 할시에 자기 공을 내 세우기위한 포석이었다
전라 감사 김문현은 조병갑에게
"듣자니 조 군수가 잘못이 많다 던데...."
"제가 뭐 잘못 했습니까? 본래 동학 접주놈 들이 나라를 뒤집어 업흐려고 하는수작인데요"
"여하간 조군수는 당분간 감영에 근신하시오 .내가 진상을 조사해 조정에 보고 하리다"
교활한 김문현이 자기가 전봉준혁명군을 진압하여 공을 독차지 하려는 속셈이었다
조병갑은 전라 감사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이제 군수는 다 해먹었군.....)
그런데 웬일인지 전봉준 진영에 들여 보었던 정석진으로 부터 소식이 끊어지었다.
알아보니 정석진 군위와 함께 50명의 위장 병사들이 본색이 들어나 모두 살해 되었다는 것이었다
정석진이 살해되자 전봉준에대한 정보는 캄캄할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고부 사건은 전라 감사의 능력으로도 속수 무책이 되었다.
해결 방법은 조정에서 군사를 파견해주어야 해결될 문제로 발전했다.
조정에서는 김문현의 장계를 보고 조병갑의 벼슬을 박탈하고 서울로 잡아 올리라 하였고 김문현은 감봉 조치했다
이어서 새로운 고부 군수에 용안현감 박원명을 임명하고 사건 조사관으로 장흥 부사 이용태를 안핵사라는 벼슬을 주어 고부로 내려 보내었다 .
박원명은 올바른 선비 출신이었다
그는 고부로 내려가 전봉준을 직접 만났다
"전하께서 나라도 어수선 한데 전봉준이 같은 못된 탐관오리들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며 전장군을 위무하라는 어명이 있어 나를 고부 군수로 제수 하였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 생업에나 잘 하시기 바라오"
"삿또 이번에는 제발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오 , 그러면 해산 시키리다"
"걱정 마시오 꼭 약속 할터이니 해산이나 해주시오"
전봉준은 농민들에게일단 해산할것을 종용하였다
"농민 여러분 전하께서 여러분에게 고생을 시켜 유감이라고 말씀 하셨다 하오 .이번에 새로 부임한 박군수가 앞으로는 농민 여러분을 위하여 선정을 베푸신다 하니 걱정말고 일단 물러 가셔서 생업에 전념을 다하시오"
전봉준의 말 한마디가 떨어 지자 농민들은 뿔뿔히 헤어지었다
조사관이라고 나온 안핵사 이용태는 박원명과 달랐다
박원명과는 달리 조사관 이용태는조병갑 사건의 진상을 조사 한답시고 자기가 데리고온 역졸 800 명을 데리고 으시 대더니 조병갑이 도망칠때 창고에서 털린 양곡이 불법이므로 되 찾겠다며 집집마다 관아에서 가지고 간 양곡에 대하여 역졸들을 풀어 집집마다 뒤지고 발견 되는대로 도로 빼앗아갔다 .농민들중 내놓지 않겠다고 버티는 자는 관아로 끌고가 매질 까지 하였다
또 당시 관아를 습격하여 기물을 파손한것은 거의가 동학도들 짓이라며 조사 하겠다고 주동자들을 불러 들이었고 만일 응하지 않으면 잡아다 매질뿐만 아니라 그들 집도 보복적 파괴 까지하였다 .
게다가 역졸들에게 지시만 해놓고 이용태는 기생들을 끼고 술잔치를 벌려 취해있기 일수였다
농민들은 분개하여 전봉준을 다시 찾았다 .
그러나 그는 이미 안핵사 이용태 행패 소식을 듣고 있던 전봉준은 이용태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입암산성에 몸을 피하 여안핵사 이용태 소식을 산성에서도 다 듣고 있었다
(죽일놈들 , 나라가 썩어 나라가 엉망인데도 임금이 저런 것들을 옆에 두고 정치를 하고있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나라 부터 고치어야 한다 동학에서 말하는 개혁이 바로 개벽이 아니더냐?.....)
그는 결국 새로운 나라 부터 세워야 한다고 결심했다
안핵사 이용태의 악행은 각지의 동학 접주들에게 까지 널리 알려지었다
전봉준은 각지의 접주들에게 사발통문으로 도움을 요청 하게되고 전봉준의 서신을 받은 접주와 동학도들은 모두 백산으로 몰려 들기 시작했다.
태인, 금구, 부안,무장등 가차운 지역 부터 호응이왔다 접주들은 동학도 들을 데리고 백산으로 몰려 들었다
백산에 모인 동학도들은 줄 잡아 4천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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