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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해 일본은 서울 서대문 밖 청수관에 임시 일본 대사관을 개설하고 조약에의해 조선은 부산, 인천, 원산 세 곳을 개방 받았다.
조선에서는 일본에 수신사로 김홍집을 보냈다.
김홍집은 일본을 다녀 오자 조선이 그동안 쇄국 정책으로 얼마나 나라가 뒤 떨어진가를 절실히 느끼었다 .세계는 서로 개방되어 나라와 나라사이에는 관계를 맺고 살지 않으면 않되게 되어 있는데 유독 조선 만은 외국 사람들과 접촉을 싫어 하고 자기 고집 들만 피우고 세상 돌아 가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수신사로 다녀 온 김홍집은 고종에게 일본의 개화를 얘기 해도 왕이 잘 이해를 못하고있자 자기가 청나라 사람 황준헌이 쓴 책을 감명 깊게 읽은적이 있어 그 책을 고종에게 받치어 읽어 보게 하였다 .
그 책 이름은 "조선 책략"이라는 것으로 내용은 "국가가 강해 지려면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습득 하여야 하고 북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러시아 세력을 막으려면 청나라와 함께 일본과 미국등과 손을 잡고 러시아의 남진 을 막아야 하며 또 문제가 되고 있는 천주교 문제도 성경에 나오는 예수는 서양에서는 정신적 지주로 조선에서 떠 받드는 공자나 주자와 다른바가 없으니 공자 이론이 해가 없듯이 예수도 전혀 해가 되지 않을것이라는" 내용 이었다.
고종은 점차 서양 문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그는 김홍집에게 일본의 군사, 교육, 산업에 대한 사항을 좀더 알아 오라고 하여 신사 유람단이라는 시찰단을 젊은 사람들로 만들어 일본에 알아 보도록 하였다.고종은 일본 뿐만아니라 청나라에도 영선사라는 유학생을 보내 서양에대 한 것을 알아 오라 하였다.
특히 일본이 최신식 무기로 일사 불란하게 군대를 운영하고있다는 말을 듣고 군사제도에 관심을 쏟았다.
종전에 산만 하게 되어 있는 5 군영 훈련 도감, 어영청, 총융청, 금위영, 수어청을 단순하게 무위영과 장어영으로 통합하였다.
통합하면서 무위영과 장어영의 군인들을 최신식으로 훈련 시키기 위해 해체전 5 군영 에서 지원한 80 명을 뽑아 별기군이라는 특별 부대를 만들어 일본 장교인 굴본예조(堀本禮造)에게 군사훈련을 맡기었다.
별기군은 선발된 정예 부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무위영과 장어영 구식 군대 보다도 식사 부식도 좋고 군복도 최신식으로 만들어 특별 대우를 받았으나 구식 군대는 그렇지 못하였다 .
게다가 별기군 교련사 당상은 실세인 민영익이었기 때문에 구식 군대 보다 사기도 높고 자긍심도 대단했다.
왕에게 받치었던 "조선 책략"이라는 책이 항간에 돌아 다니기 시작 했다 .이에 전국 유림이 읽어 보고 민씨 일색의 조정의 시책을 비난하는 유생들의 입김이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장안 어디서 나온 소문인지 모르지만 고종의 이복 형인 이재선이 왕이 된다는 소문이었다
민영익과 민비가 만나 소문의 진위를 의론 하였다
"조카 ,요사이 장안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데 알고 있오"
"이재선이 왕이 된다는 소문 말씀 입니까?"
"알고 있구먼..."
"알아 보았는데 대원군의 덕으로 형조 참의와 승지 벼슬 까지 하였던 안기영등이 이재선을 앞세워 임금을 몰아내고 새임금으로 앉히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소문입니다 "
"소문이 자주 나면 소문 대로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먼저 진주 병사 음모도 그랬지만 대원군 주위에 모여있는 졸개들이 온갖 못된 공작을 모두 하고 있습니다"
"그놈들을 급습 할수도 없고 ...."
"놈들은 대원군에 빌 붙어 대원군의 말이라면 죽으라면 죽을 놈들만 모여 있습니다 "
"큰일이군 .....나라일을 자기 사조직의 희생물로 사용하려 하니 "
"전하의 대원군 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일망 타진 하련만 그렇게 마음대로 할수도 없습니다 "
"하여간 그놈들의 동태를 자세히 조사하여 일망 타진 하게 . 대원군 눈치 볼것 없어 , 증거만 확실 하다면 ....."
"알았습니다 "
고종18 년 8 월 신사 유람단이 일본서 돌아 오고 젊은 유학생들이 청나라로 떠나던 날이었다.
안기영,권정호, 강달선, 이철구 등 관련자 30 명이 이 반역죄로 모두 잡혀왔다
민영익이 직접 주모자 안기영을 불러 심문하였다.
"무엇이 불만이 있어 역모를 계획 했다는 말이냐?"
안기영은 체념을 했는지 마구 말을 쏟아 내었다.
'"개화 정책과 외세 침략을 막지 못하는 조정에 유감이 있소이다 "
"나라가 잘 되려면 외국과에 문호를 개방하고 나라 발전에 힘써야 한다는것을 몰라하는 소리냐?"
"그게 유감이오 ,우리 나라의 근본은 성리학을 정통 사상으로 하고 지금 까지 나라의 명맥을 유지 해 왔는데 도대체 지금 조정이 하는 일은 무엇이오? 나라는 일본 놈들의 손아귀에서 놀아 나지 않나? 천주교가 나라의 정신을 좀 먹고있는 데도 이를 막을 의지가 있기나 한것인가? 어느 하나 마음에 차지 않소"
"그래서 네가 위정 척사의 기수라는 것이냐?"
"그렇다고 도 볼수 있지요"
위정척사란(衛正斥邪)란 바른 학문과 바른길을 택하고 사학(邪學)과 이단을 물리치자는 유생들과 대원군파들의 구호나 다름 없었다 .
말 하자면 지금 까지의 성리학을 바른 학문으로 지키고 그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은 배격 해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이들의 이러한 사상은 서양의 통상 요구에대한 반대운동과 서양의 침략에 대한 척화주전론 (斥和 主戰論)으로 발전하여 대원군의 통상과 수교 반대를 강력히 뒷 받침하는 주장이라고 볼수있다.
대원군은 개혁을 입 버릇처럼 주장하면서도 세계 정세와는 어긋나는 길을 걷고 있었던것이다
"그래? 너는 실학사상을 아느냐?"
"내가 그런것을 연구 한적도 들은 적도 없소이다"
"자네는 사사로롭고 좁은 시야를 가지고 매사를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것이야 ,지금 세계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어 청나라의 양무운동과 일본의 문명 개화론을 조금이라도 알고있으면 자네 같이 엉뚱한 역모를 꾸밀 이유가 없다 "
"자네 ,자네 하지 말고 어서 죽일려면 죽이시오"
"한가지 더 묻겠다 .이번에 사건은 자네가 주동이렸다"
"그렇소이다 .나라를 바로 잡아 보려고 한 것뿐이오"
"누구의 사주를 받았느냐?"
"받은 사람이 없소이다 "
"......"
이들은 고종 18 년 10 월 배후 인물을 찾아 내지 못한채 모두 처형 되고 만다 .
소문은 여전히 이번 역모 사건도 대원군의 추종자들의 소행일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대원군과 민비간에는 돌이킬수 없는 원수로 점점 굳어 가고 있었다 .
고종 19 년 정월이었다
궁궐에는 경사가 있었다 . 민비가 낳은 세자가 아이가 어른이되는 관례식이 거행되었다 .세자의나이 9 세였다
이어 민태호의 딸이 세자빈으로 간택 되었다. 며칠동 안 잔치가 벌어지고 세자가 오래 살게 하여야 한다며 전국 큰 사찰에서 치성을 드리게 하였다 .엄청난 경비가 드는 것은 물론이었다 .
나라는 이렇게 잔치와 치성으로 질탕 돈을 물쓰듯 하고 있는데 무위영과 장어영의 구식군대는 배를 곯고 있었다 .열석달째나 급료도 주지 않을 뿐만아니라 군대내 부식은 엉망이었다 .벼슬아치들은 수단 껏 나라의 재산을 파먹고 백성들을 쥐어 짜내는 탐관 오리 들만 설치고 있었고 군인들이 죽는지 사는지에대하여는 관심이 없었다 .군인들 뿐만 아니라 군인들에게 딸린 가족들이 더 살길이 막막하여 모두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반면 민영익이 직접 지휘하는 신식 군대인 별기군은 일본 장교의 훈련 하에 대우까지 좋아서 좋은 군복과 성능이 좋은 일본제 장총에 모두 기름기 도는 얼굴들이었다 .
구식 군대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구식 군대가 불만이 더해 가고 있을때 마침 호남 지방에서 쌀이 도착 되었다 .
그런데 그동안 밀린 쌀 13 개월분을 준다는것이 아니고 한달치 만 우선 준다는 것이었다 .불만에 앞서 우선 가뭄에 물 만난다는식으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이제 배 좀 채우겠구먼 "
구식 군인들은 빈 쌀자루를 들고 선혜청 도봉소로 몰려갔다
도봉소 안은 쌀을 먼저 타가려고 난장판 이었다 .구식 군대는 이제 먹고 사는데만 혈안이 되어 군인이라는 신분을 망각하여 질서고 뭐고 잊고 있었다.
쌀을 타 갖고 나오던 군인들은 오래간 만에 보는 쌀을 감상 이라도 하려는 듯이 두손으로 함빡 손바닥에 담아 올려보았다
여기 저기서 좋아서 떠들던 소리가 잠시 조용해지는가 했더니
"이게 쌀이여?"
누군가가 큰 소리로 떠들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듯이 쌀을 들여다 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쌀겨야 ? 쌀이야?"
하고 누군가가 투덜 거리자 한쪽에서는
"아니 모래가 반이지 이게 쌀이야?'
"썩은 쌀이지 않아?"
여기저기서 군인들의 불만의 소리가 터지었다
"이자식 들이 이걸 먹으라고 주는거야?"
이번에는 욕지거리 까지 나왔다
"왜들 말이 많아 ,받았으면 빨리 갈일이지...가져 가기 싫으면 다시 쏟아놔..."
창고직이 인 듯한 사람이 이 큰소리치었다 .
"무엇이?"
한 군인이 화를 내자 여기 저기서 들고 일어났다
"가져 가기 싫으면 쏟아놔?...."
화가 난 군인이 모래 섞인 쌀을 쏟아 놓았다
"이자식들아 이걸 먹으라고 줘?"
"저 자식을 죽여라 "
마침내 군인들이 창고직이를 사정 없이 집단 폭행 하기시작했다
선혜청 도봉는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창고직이 인 6 몀은 뒷문으로 피투성이가 된채 도망가 간신히 목슴은 부지했다.
이소식을 들은 민겸호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 포도대장은 어서 양곡 창고 문을 닫고 관련자를 모두 잡아들여라 "
포교 수십명이 현장에 나타나 앞장섰던 군졸들을 모두 연행항여 수감하였다
다음날 서울 장안은 어수선하였다 .어제 있었던 양곡 창고 사건의 소문에 의하면 앞장섰던 김춘영, 유복만, 강명준, 정의길등이 포도청에 잡혀가 죽도록 얻어 맞아 반주검이 되어 있다는것이었다 .얻어 맞은 창고직이가 기억 나는 대로 폭행 주모자를 잡아들였는데 폭행에 가담했던 홍만복만 누락이되었다 .
창고직이가 기억을 못한 모양이었다 .
홍만복은 아무래도 불안하여 구속된 김춘영의 부친 김장손에게 찾아갔다 .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의론하기 위함이었다 . 김장손은 전직 군인으로서 군대내에는 신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김장손은 무위영 대장 이경하를 찾아갔다
이경하가 있는 동병영에는 군인들이 소식을 들으러 많이 모여 있었다 .이경하는 김장손에게
" 쌀 지급 문제는 선혜청 소관이오 내가 편지를 써 줄터이니 선혜청 당상을 찾아 가시오 "
하고 발을 빼었다
"썩어 빠진 놈, 제 부하들이 부당한 대우 를 받아 생긴 사건인데 편지나 써 주고 자기는 쑥 빠지겠다는 거지....? 기회주의자 같은 놈..."
김장손은 화가 났지만 꾹참고 선혜청 당상을 찾아 가지 않고 실세인 민겸호에게 찾아갔다 .그곳에 모여있던 군인들이 김장손을 딸았다
때마침 민겸호는 없고 민겸호의 하인이 큰소리로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들 모여와 대감을 만나겠다는거냐? 그런 문제는 선혜청 당사과 사의 할 일이지 .지금 대감이 출타 중이시다, 이렇게 몰려와 만나겠다는 것은 대감에게 시위 하겠다는거냐? 썩 물러 가지 않으면 모두 잡아 들이 실거야 "
하고 큰 소리치었다
민겸호는 권세가 워낙 높은 양반이라 하인 까지도 대감 못지 않은 도도함을 표시하고있었다
"이자식 , 뭐가 어쩌구? 비켜 이자식아 "
군인들이 흥분하여 하인을 밀치고 민겸호의 집안으로 들여 닥치었다
민겸호의집은 어느것하나 호화롭지 않은것이 없었다
"아니 이놈이 어디라고 "
아직도 호기가 남은 하인이 뒤쫓아 들어 오자 집안의 하인들 너댓명이 나왔으나 군인들의 위세에 눌려 아무소리 못하고 서있었다.
"이런 썩어 빠진놈이 있으니까 썩은 쌀이 나오는거야"
누군가가 소리치자
"이놈의 집부터 때려 부수자"
하고 소리치자 흥분된 군인들이 들여 닥쳐 세간살이를 닥치는대로 때려 부쉈다
정신없이 화풀이를 한지 몇시간이지났다
집안이 난장판이 되어 일은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겁이났다 .군인들은 다음 닥아 올 보복이 겁이났다
홍만복은 더욱 겁이났다 .자기가 영낙 없이 주동자로 몰릴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잠시 궁리하다가 홍만복이 안을 꺼냈다
"여러분 이번 사태는 민씨들 소행이니 아무리 민가 들을 쫓아 다녀 봐야 소용 없고 대원위 대감에게나 찾아가 하소연 합시다"
"옳소"
아닌게 아니라 구식군대가 대원군 시절에는 이렇게 군인들이 박대 받지 않았다. 군인들은 그때가 그리웠다.
마침 대원군 이 운현궁에 와 있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