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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비는 완화군을 세자로 책봉 하자는 대원군의 얘기가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발끈했다
"어림도 없는소리 중전이 눈이 멀뚱 멀뚱 한데 완화군으로 세자를 책봉해? "
조대비는 그동안 중전이 시어머니로서 보살핌을 받고 있으면서 앞서 태어 낳아 죽은 아기 왕자에 대해서도 측은 지심을 아직 갖고 있었다
대원군이 세자 책봉 문제를 부리 낳게 밀어 부치는 의도를 모르는바 아니었다
(흥 , 장기 집권 하겠다고 .....어림 없는 소리)
똑똑한 왕비의 기를 죽이고 명분도 없는 완화군을 원자로 삼음으로서 자기의 정치 기반을 더 공고히 하려는 술책임을 조대비가 모를리가 없었다.
대원군은 그동안 조 대비에게 국사를 단 한건도 상의 조차도 없이 독단으로 처리하여 조대비를 완전히 무시했다
그런데 조대비에게 대하는 민비의 태도와 조대비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는 두사람의 잦은 대화는 결국 서로 손을 잡게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완화군 세자 책정 문제가 홍순목 영의정 사퇴와 조대비의 반대로 잠시 잠잠 해진 사이에 민비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민비는 완화군 책봉 사건이 발생 하자 부리 낳게 친정 오빠 벌인 민승호를 불러 들였다
"오라버니 , 나라가 지금 대 내외적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일본이 언제 처들어 올지 모릅니다 . 대원군은 서양 세력을 물리 치었다고 자만에 빠저 일본 쯤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 하고있으나 일본은 서양 세력과는 다릅니다 .서양 배들이 우리 근해로 들어 온것은 단순히 통상이나 천주교 문제로 들어 왔다 간것뿐이지 대대적 군사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착각하고 있는것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 또 국내 문제도 그렇습니다.
매일 개혁 ,개혁 떠들면서 실제는 외국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쇄국 정책으로 척화비나 세워 놓고 전쟁 준비나하고 있으니 나라가 어떻게 됩니까?
쇄국정책이 개혁입니까? 경복궁 중수를 위해 파탄 난 재정을 충당 하기 위해 세율을 고율로 올려 백성을 울리는것이 개혁입니까?
게다가 후궁에게서 낳은 완화군을 세자로 삼겠다고하여 이를 반대한 영의정을 해임하는것이 개혁입니까? "
민비는 격앙된 어조로 시아버지의 독재를 민승호에게 한 풀이 하고 있었다
"............."
"친정을 해야 합니다 .오라버니가 이번 일에 적극 도와 주기바랍니다"
민승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민비가 다 하자 속으로는 후련 하였으나 민비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대원군에게 알려지면 민비에게 어떤 보복이 올지 모르므로
"마마, 고정 하시옵소서 ,이 얘기가 밖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하소 환기 시키었다
"그렇지 않아도 만일을 위해서 모두 물렸습니다"
민태호는 왕비의 속이라도 더 풀어 주고 싶었다 .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가요?"
민비는 오라버니를 바싹 닥아 오라하고 귓속 말로 무엇인가 수군거리었다
다음날 고종에게 한통의 상소문이 날아 들었다 .곧은 소리 잘하기로 소문난 유생 최익현의 상소문이었다
상소문의 내용은 삼정승과 육조판서와 사간,과 사헌부 시종까지 싸잡아 대원군의 실정을 날카롭게 파헤친 극렬하한 내용으로 대원군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해야 한다면서 대원군을 탄핵하라는 내용이었다
상소문 내용을 읽은 고종은 상소문 내용이 어느 하나 틀린 소리는 아니었으나 아버지 대원군의 위세를 꺾을 만큼 마음이 모질지 못하였다 .
그는 총명한 왕비와 당당한 대원군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던 것이다 .
고종도 이제 22 세의 친정을 할만한 나이었다 .더구나 영특한 왕비가 옆에 있으니 임금노릇도 한번 해볼만 하다.
그러나 고종은 민비 만큼 똑똑 하지 못하였다.
고종은 매사에서 맺고 끊는 능력이 대원군 만큼 미치지 못 하였다 .항상 어정쩡한 태도로 임하였기때문에 과단성있는 정치력을 발휘 할수 없었다.
고종은 최익현의 상소문이 마음에 들어 즉시 대원군에게 호조 참판으로 최익현을 기용토록 조치 했다.
바른 소리 잘하는 최익현을 대원군 턱 밑으로 보내 대원군을 견제 하기 위한 생각에서였다. 물론 그뒤에는 민비와 민승호의 입김이 작용했다 .
최익현이 하루 아침에 호조 참판으로 발령나자 조정의 삼공 육경은 당황하지않을수 없었다 .조정이 온통 대원군파인데 엉뚱하게 자기들을 극렬하게 비방한 사람이 들어오니 당황하지않을수 없었다 . 좌의정 강노가 왕에게 최익현 발령의 부당함을 상소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들여 보낸 최익현 발령 취소를 할 임금이 아니었다. 다음날은 사간원과 사헌부 관원들까지 부축여 최익현 임명을 취소하여야 한다는 상소문이 날아들었다 .최익현이 사간원과 사헌부까지 싸잡아 비난한 것에대한 불만이었다.
임금은 그것도 묵살하였다 .
대원군은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이상한 생각이들었다 .요사이 최익현 문제도 그렇고 임금의 태도가 이상하였기때문이었다 .
최익현이라는 무명의 유생 따위가 자기를 신랄하게 비평한것이 심기를 편치않게 하였기때문이었다.
대원군은 일부러 몸이 아프다고 핑계대고 성북의 석파(石坡)산장에 머물면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우의정 박규수를 시켜 자객으로 하여금 최익현을 없애 버리라고 까지 은밀히 지시했으나 최익현을 죽이려는 계획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1월3 일 최 익현은 첫 상소문 낸지 한달 만에 두번째 또 상소문을 또 내었다
이번 상소문은 대원군의 실정을 더 신랄하게 비평하면서 이번 만큼은 꼭 대원군이 물러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원군은 석파 산장에서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만 대고 반응이 없었다 .고종은 대원군이 스스로 물러 날줄 알았는데 끗떡없이 벋히고있자 이번에는 겁이났다
(아버님이 화가 난것이 아닌가?)
다음날 고종은 도승지에게 명령을 내렸다
" 상소문 내용을 보니 부친에게 무례한 글을 올려 정사에 혼란을 가중시켰으니 즉시 최익현을 귀양을 보내도록하라 "
대원군의 눈치를 보기위한 왕의 조치였다.
하지만 고종은 내심 아버지 대원군에게 할말을 최익현이 다 해 주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공은 대원군에게 넘어가 있었으나 대원군은 일언 반구도 없이 이번에는 양주직곡 산장으로 들어가 나오지않고있었다 .정권을 넘겨 주고 싶지 않은 대원군의 심사를 단적으로 표시 하는것이 분명했다
대원군 일파들이 최익현을 시내 불량배들을 시켜 죽이리라는 소문이 고종의 귀에 까지 들려 왔다.고종은 최익현을 귀양 길에 그를 잘 보호하라고 특별 명령을 내리었다.
결국 고종과 민비가 노린것은 최익현의 붓을 빌려 대원군의 비행을 그에게 주지 시킨것이 었으니 일단 일차 계획은 성공한 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