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여년만에 옛 전적지를찿아서...
ㅇ 흔적 마져 없어진 여단본부 지휘소.
Greece의 大문호 '니코르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불후의 명작
'희랍인 죠르바'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것은 세월따라 사라지게 마련 이지만,
사라지는 것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라고...
'마불 마운틴'을 지나 남쪽으로 약25Km쯤 되는 지점을 통과할 무렵.
우리 일행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옛 청룡부대 본부의 흔적을 찾아 볼 겸, 야자나무 그늘 아래
쉬어 가기로 했다. 여단본부 의무중대와 수용중대가 위치했던
황금빛 모래사장과 청명한 하늘가를 맴도는 흰 갈매기들이
우리들을 반가이 맞는다. 푸르디 푸른 남지나海의 수평선은
옛모습 그대로였으나 분명이 구릉지대 하록에 위치했던
여단본부의 전방 CP자리는 그 어느 곳 에서도
아무런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 옛날 곳곳의 길목에 세워졌던 붉은색 단대호 간판의 모습도,
국방색 분대천막으로 급조된 야전부대의 활기찼던 옛 정경도,
그리고 그 사이로 모래먼지 휘날리며 분주히 내 달리던
작전부대 이동차량의 행렬도 사라진 채,
'An Ban'마을의 옛 전쟁터에 모습은 초저녁 적막 속에
40여 년의 세월을 삼키는 듯 노을 속으로 하루 해가 저물어 간다.
돌아서는 쓸쓸한 발걸음은 마치 정들었던 옛집을 못 찾고
돌아서는 허전한 마음에 비유되는 심정 이랄까 ?.
다시금 가던 길을 재촉하며 1번 국도를 따라 남하하던 우리일행은
해안도로를 벗어나 우회전으로 접어 든다.
우측으로 전개되는 울창한 야자림, 그 사이 외나무다리 측면에
언젠가 본듯한 마을 촌락의 한가함, 고개를 돌려 좌측을 바라보니
문득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드는 '투본'江 하구의 풍경이 시야를 가린다.
순간 낯익은 538도로의 모습이 마치 낡은 필름이 돌아가듯 펼쳐진다. "
아 !. 저쯤이 美軍 CAP소대 초소가 있던 길목이고,
이 도로는 'Hoi An'으로 통하는 도로였구나! ….'
순간 감동의 물결이 인다. 강산이 변하길 어언 네 차례...
문득 옛 일기장이 떠오른다.
ㅇ 마침내 청룡이 "Hoi An'에 둥지를 틀다.
그날 '소대장의 비망록'은 비룡작전 개시 후 (M+21)인
1968년 1월 12일(금) 맑음. 으로 시작된다.
06시~ 먼동이 틀 무렵, 청룡부대 제 3대대와 배속 특공중대의 엄호아래,
여단 전방CP와 제2대대를 포함한
공수기동 제 2제대가 'Hoi An'의 새로운 전술지역에 착륙한다.
아울러 이날은 우리 해병 제 2여단이 美 해병 제 1사단 5연대로부터
지역 내 모든 작전 수행 권을 정식으로 인수 함으로써,
'비룡작전'의 절정을 이루게 된 날인 동시에,
우리 해병대가 'Hoi An'지역에 진주 하였음을 널리 공표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김 연상장군의 청룡여단 전방CP는 이날 05시부터 美 해병 항공사단의
大型헬기( CH46, CH47 ) 로 'Chu Lai'에서 'Hoi An'지역으로
공수기동을 개시 하였고,
제 3대대 CP가 있었던 'Triem Trung'마을 (Hoi An市 西쪽 5 Km.)에
진입하여 CP를 개설하였으며. 당일 12시를 기해
美 해병 제 1사단의 관할이었던 TAOR (전술책임지역) 내의 모든 작전권을
정식으로 인수 하였다.
이날 여단 직할 특공중대는 새벽 05시, 'Hoi An'市 외곽에 위치한
공설운동장으로 긴급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청룡부대의 'Hoi An'진주를 환영하는 시민 환영대회의 경계경호와
예상되는 잠재 불순 방해세력의 사전 구축을 위한 임무였었다.
이 대회에는 Nguyen Van Thieu 자유 월남 공화국 대통령을 비롯한
Quang Nam省長, 월남 1군단의 Lam 중장 등
5,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하여 이 지역의 유사이래
전대미문의 성대한 행사였단다.
이 행사에서 여단장 김연상장군은 " 새로운 작전지역의 평화 회복을 위해
한국 청룡부대는 혼신을 다할 것이며, 이와 같은 노력이 양국간의 우호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임을 확신한다." 는 요지의 답사로 화답했다고 기억 된다.
성황리에 끝난 시민 환영대회를 무사히 마친 후, 필자가 이끄는 제1소대는
당일 16시경 부대로 복귀 하던 중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는다.
美 해병대 사령관 Chapman 대장이 3th MAF 사령관 Chushman중장의 안내로
여단을 방문하여, 韓美 해병대간의 보다 원활한 지원체제를 약속하는
전반행사를 경비, 경호하라는 임무였었다.
수행하던 兩國의 각급참모를 비롯한 20여 개의 '별들에 행진'은
아마도 야자나무 사이로 밤하늘을 비치는 남십자성보다도 몇 배 더
영롱해 보였다. '스타'는 역시 '스타'였었다. (소대장의 비망록 中 에서...)
ㅇ '비룡작전'의 마지막 제대 편성.
한편 제 1대대는 이날 17시에 '비룡작전'에 따르는 부대기동 최종제대로 편성,
여단으로서는 제일 늦게 '추라이'지역의 대대CP를 ARVN(월남군)에게
인계 하였고, 대대 TAOR은 美 육군 Americal사단에게 인계한 후,
구 여단본부 지역으로 집결하여 1월 17일에 예정된 제 5대대의
부대 이동에 앞서 부대정비를 지원하면서 자체 방어에 들어간다.
그리고 제 2대대 제 6중대(장,국종표 대위)는
08시에 경비중대(장,황문식 소령)로 부터 배속이 해제 되어
원대 복귀 하기 위해 'Ha My Dong'마을을 따라 부대 기동을 하던 중,
매복 중이던 VC를 발견 이들을 소탕, 도주하던 20여명을 사살하고
수류탄, 실탄, 무전기등 기타 장비 다수를 노획한다.
또 제 7중대(장,박영택 대위)는 09시에
4번 公路를 서쪽으로 지상 기동 끝에,
의명 Nhi Khin마을(Hoi An 서쪽 13Km.) 에 진입하여 진지를 점령하고
TAOR(C)지역 탐색을 위한 새로운 포석을 구축 하였다.
아울러 제 3대대 제 9중대(장,안성두 대위)는 이날 여단 作命으로
08시에 의명 Thanh An마을에 새로운 중대진지를 개설하였으며,
제 10중대(장, 윤 춘웅 대위)는 당일 오전 중 중대 규모의 병력으로
진지주변 일대를 수색하면서 진지 보수작업을 실시 하였다.
이윽고 1월 17일(M+26), 이날 여단은 작전계획에 의거
제 3제대가 공수기동으로 Hoi An(A)지역에 새로이 진입 함으로서
약 75%에 해당되는 전투병력을 새로운 지역에 배치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점차로 그 관할지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제 2대대는 TAOR(C)지역에서 기지를 중심으로 탐색전을 전개 하였고,
제 3대대는 요지명령 제 6-68호에 따라 (A)지역에서
TAOR 남쪽(B-1)지역으로 전환하여 기지 건설작업에 착수 한다.
한편 제 5대대는 이날 부대기동 제 3제대에 편성되어
제 27중대(장,한상칠 대위)만을 Chul Lai지역에 잔류시킨 다음,
공수기동으로 Hoi An에 진입하여 새로운 진지를 점령 함으로서,
여단의 전력을 크게 보강 하였다.
이어서 제 25중대(장,방기호 대위)는 제 3제대 공수기동 선봉대로
08 ;30분에 Quang Ha마을(Hoi An북쪽 8Km)에
착륙 후, 구 본호 대위의 제 11중대 전술기지를 인수하고
이곳에 진입한 다음 급 편 방어편성에 착수 하였다.
15시쯤에 이르러 북쪽 지역으로부터 단대호 미상의 적으로부터
맹렬한 소화기 사격을 받는 한편, 서쪽 방향으로부터는
적의 60mm 박격포의 집중포격을 받게 된다.
이는 부대교체를 틈타 많은 손실을 가하여 교란을 목적으로 기습하였다가,
오히려 중대장의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으로 적을 초 전에 박살내
통쾌히 격퇴시키는 수훈을 올린다.
전적지 방문 이틀째를 맞는 이날... 17세기 무렵 이곳에 번성했던
'창파'왕조의 유적지인 '쩐기 사당'과 '풍흥의 집'을 둘러보고, '광조우 회관'근처
야자나무 아래에서 오늘 하루를 정리 한다.
자유월남의 황색깃발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진 지 24년 후인 1999년,
다행스럽게도 전쟁터의 폐허에서 옛 모습을 어렵사리 간직한 이유적지들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함은 불행 중 다행이었음에
잠시 이곳을 지나는 옛 나그네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하였다.
Tunes of gl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