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전라고 6회 재경동창회, 정기·산행·번개모임 합쳐 1년에 25~26번 만나
전주 전라고 6회(1976년 졸업) 재경 동창회는 자신들의 졸업 기수에 맞춰 매년 6월 6일 ‘쌍륙절 행사’를 한다. 2006년엔 대관령 목장과 오대산 월정사, 지난해엔 단양 8경과 충주호, 올해엔 강원도 속초를 다녀왔다.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기록자’를 자청하는 최영록(51·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씨는 이를
‘추억의 수학여행’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수학여행에는 부부 51쌍, 싱글 13명, 자녀 4명 등 총 119명이 참석했다. 미국으로 이민 간 황의찬(51·사업가)씨 부부도 32년 만에 동창회에 참석했다.
최씨에 따르면 전라고 6회 졸업생은 모두 417명, 그중 2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150여 명은 2000년에 동창회 카페를 만들어 본격적인 동창회 활동을 시작했다.
친한 친구끼리 만나기는 했지만 나이 40을 넘기면서 전체 모임의 필요성을 느꼈다.
매년 두 차례 정기모임(신년 하례식·쌍륙절)에 월례 산행모임, 거기에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서울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열리는 번개 모임까지 합해 1년에 25~26차례 얼굴을 본다. 기뻐서, 슬퍼서, 재혼해서, 승진해서 등 번개 모임의 이유도 다양하다.
2006년엔 졸업 30주년을 맞아 『쉰둥이들의 쉰이야기』라는 문집도 발간했다. 학창시절의 추억부터 군대 간 아들에게 전하는 글까지 폭넓은 주제의 50여 편이 빼곡히 담겨 있다.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던 부인들은 급기야 자기들끼리 ‘전라여고’라는 가상의 학교를 만들었다. 이들은 “머지않아 ‘전라여고 동창회’가 결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최씨는 “비슷한 입맛과 언어, 정서를 공유한 이들이 턱 없는 편안함을 느끼며 끊임없이 삶의 화제를 나누는 것이 우리 동창회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동창은 언제나 내 편 … 회사와 달리 솔직한 얘기해 좋다”
지난 6일 강원도 설악산으로 부부 동반 ‘수학여행’을 떠난 전라고 6회 동창생들이 버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나이는 먹었어도 마음은 예전 초등학교 다닐 때와 똑같아요.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만나는 자체가 좋은 거죠.”
충북 옥천군에 사는 강은자(57·주부)씨는 2년 전부터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강씨는 옥천군 삼양초등학교 19회 졸업생. 그동안 가까운 친구끼리 삼삼오오 만나 오다 2년 전 정식으로
동창회 조직을 꾸렸다. 5월 30일엔 옥천군 한 펜션에 40여 명이 모여 1박을 하며 추억을 되새겼다.
각종 동창회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큰 기둥 중 하나다. 그리고 동창회의 중심에는 언제나 4050이 있다.
30대까지는 동창회에 신경을 쓰지 못하다가 40을 넘으면서 동창회를 찾게 되고, 열심을 내게 된다.
4050이 동창회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씨는 “아이들이 성인이 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4050이 ‘시간·경제적 여유’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40대를 넘기면서 남성은 사회적 기반이 잡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여성 역시 자녀가 장성해 교육 문제 등의 압박에서 해방된다.
이조정(48·동두천초 48회)씨는 “여유가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 날의 순수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이것이 곧 동창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기적으로 부모의 사망, 장성한 자녀의 결혼식 등 애·경사를 앞두고 있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김춘근·49·강원 화촌중 21회)”는 점도 작용한다.
“4050은 동창회 말고는 특별히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20·30대는 싸이월드, 인터넷 동호회 카페 등을 통해 나름의 친목사회를 만들어 나가지만 4050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기 쉽지 않고, 그동안 속해 있던 커뮤니티는 일·생활이 중심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동창들은 언제나 내 편’이기 때문에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4050이 많았다.
고교 평준화 이전 세대는 특히 고교 동창회에 매우 열심이다. ‘남다른 애교심’을 이유로 든다. 후배들에게 미안해서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50대 남성은 “시험을 치르고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학교에 진학한 세대와 추첨으로 들어온 세대의 애교심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교 평준화는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됐다.
동창회 활성화의 배경에는 인터넷 발전이 있었다. 특히 99년 문을 연 ‘아이러브스쿨’의 영향이 컸다. 아이러브스쿨은 오픈 9개월 만에 실명인증 회원수 300만을 확보하며 전국에 ‘동창 찾기’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나 수익모델 악화, 내부 조직 문제 등으로 급격히 쇠락했 다.
이렇게 되자 동창회는 독자적인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젊은 층 뺨치는 인터넷 카페가 생겼고, 부부 동반 해외여행, 수시로 갖는 번개 모임까지 여러 진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광주 숭일고 25회 동창회는 3년 전 중국 황산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일본 후쿠오카, 올 5월엔 대마도에 부부 동반으로 다녀왔다. 모임마다 40여 명이 꾸준히 참석한다. 10여 년 전 산악회로 시작했지만 2004년 9월 동창회 카페를 만들면서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동창회에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다음카페 동창회 부문 1위인 ‘화촌중 21회 동창회’에는
지난 22일 하루 동안에만 모두 75건의 새 글이 등록됐다.
“점심에 소폭 두 잔을 먹고 들어왔더니 너무 졸린다(아이디 ‘비호’)”는 글이 등록되자 채 5분도 안 돼 “나는 소주 한 병을 먹고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아이디 ‘봉봉’)” “음주 업무는 단속 대상이 아니냐(아이디 ‘코아’)”는 댓글이 따라 붙는다. “일이 잔뜩 밀려있는데 카페에서 나갈 수가 없다(아이디 ‘박용칠’)”는 글에는
“나도 남편이 ‘애들 컴퓨터 많이 한다고 야단치지 말고 당신부터 잘하라’고 한다(아이디 ‘지키미향숙’)”는
댓글이 붙기도 한다. 젊은 층의 소유물로만 여겨졌던 ‘댓글 놀이’와 ‘중독자’가 4050의 인터넷 카페에도
나타난 것이다.
동창회는 단순한 친목에서 벗어나 진화하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4050들이 주축이 되다 보니 다양한 활동을 추구한다. 모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거나 모교 운동팀을 후원하는 것은 거의 모든 동창회
사업 중 하나다.
기름 유출 사고 피해를 본 고향에 모여 자원봉사를 펼치는 동창회(충남 해양과학고)도 있다. 전주 전라고
6회 총무 마남일(51·자영업)씨는 “태안반도 기름 제거나 고향 농사철 일손 돕기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동창회로 진화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
글=이승녕·송지혜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게재일 : 2008년 06월 24일 [6면]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