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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아프리카
제목 : 동백꽃 아프리카
판형 : 210*200mm
저자 : 김민호
출판사명 : 안목
출간일 : 2013년6월19일
페이지수 : 168 pp
정가 : 18,000원
ISBN : 978-89-98043-08-7
<출판사 리뷰>
(78장의 컬러사진과 31편의 글, 에필로그 수록)
동백은
어떤 바람에 떨어지던 동백은
삶의 한바탕 소란함을 조용한 낙하로 삭히고
어떤 흙먼지에 구르던 동백은
꽃잎을 여미는 처연함이 있고
어떤 돌무덤에 의지하던 동백은
붉은 덩어리 한 올도 놓지 않으니
비로서 동백다운 동백이 되듯
나타났다가 홀연 사라지는
아프리카 사람은
어느 곳 어느 순간에 놓여도 그들다움이 있다.
<p165>
사진가의 경계도, 장소의 경계도 허물어내다
김민호는 사진가다. 지난 3년동안 우음도에서 작업한 결과물들을 <변이의 땅>이란
전시를 통해 이미 사진가로 그의 이름을 올렸다. 아니다. 그는 사진가가 아니다. 그의
직업은 의사다. 주 6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꼬박 병원에서 환자를 본다.
장소는 아프리카다. 양떼를 모는 마사이족의 모습이 보이고, 옅은 푸른 빛의 바다와
백사장엔 우아한 걸음으로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검은 사람들이 있다. 그가 썼듯이
어느 곳에 놓여도 그들다움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여긴 아프리카가
아니다. 늘 사무치게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이 아프리카 여인의 모습위로 오버랩되고,
거칠고 투박한 땅에서 어머니의 지난한 삶이 한 그루의 나무로 자라는가 하면, 어느 새,
그 곳의 집도 사람도 땅도 하늘도, 김민호를 형성한 고향 풍경이 된다.
사진예술가가 아닌 사진가
사진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진 발명이 처음으로 공표된 1837년, 사진은 그야말로
예술계의 이단아였다. 저 위대한 시인, 보들레르는 대놓고 사진에게 현실의 복제수단인
주제에 예술로서 인정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재밌게도 그렇게 예술계로부터 배척당했기에 사진은 흔히 전통예술이 겪어야했던
아카데미의 전통에 얽매이거나 견제당하는 제약없이 자유롭게 스스로의 언어를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역은 다름아닌 다양한 직업인들로서 여가시간을 온통
바쳐서 열정적으로 사진과 사랑에 빠진 수많은 아마츄어들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 사진발명 초창기와 비슷하다. 이미 현대예술의 총아로 등장한
사진예술은 바라보기와 순간을 포착하는 가장 근본적인 사진의 본질을 저버리고 오직
아이디어의 구현과 개념의 우위를 앞세우며 현대 예술안에서 유행만 좇는데 급급해 보인다.
그래야 잘 팔리니까, 그래야 갤러리에 걸리니까. 사진가로서 예술가로 인정받으려면
어쩌겠는가. 그러니 오로지 응시라는 행위로만 사진의 본질을 구현하는 사람들은 이젠
사진예술가가 아니라 200년전과 다름없이 퇴근 후, 주말, 황금같은 휴가를 카메라를
메고 고독한 방랑자처럼 이리저리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아마츄어 양반들인 것이다.
김민호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일년에 한번 있는 열흘간의 휴가를 아프리카 여행으로
정했다. 디지털 카메라 한대에 50미리 렌즈 하나를 챙겼다. 열흘 동안 그는 셔터소리를
호흡소리삼아 숨을 쉬었다.
한 여행자의 겸손의 기록
그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하든, 길을 걷든,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다가가지 않았다. 땟물이 꾀죄죄한 아이들의 모습을 낚아채듯 담지도 않았고, 피페한
삶의 현장을 구경거리처럼 담지도 않았다. 오직, 여행자로서 그가 선 그 자리에서 그
앞에 놓여진 장면들을 작은 카메라 안에 담았을 뿐이다. 한 이방인의 겸손한 시선이
온전히 아프리카의 그들다움을 드러낼 때, 서서히 이국의 경치를 넘어 카메라 뒤에 있던
한 사람의 삶이 사진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한다.
사진에 달린 글이 아닌 사진과 글 - 설명이나 보완이 아닌 사진과 동등한 글의 역활
그리하여 그의 어머니가 살아낸 힘겨운 삶을 노래한 비가였다가, 그의 삶을 성찰하는
사유였다가, 불현듯 현실 밖에서 솟아오른 상상의 세계가 동화로 펼쳐진 그의 글들은
사진을 설명하는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사진 속에서 풍기던 어떤 인상, 감정과 경험들을
구체로 만들며 찍혀진 사진 뒤에 밑그림처럼 묻혀있던 또 한 장의 사진을 눈 앞에
꺼내 놓는 것처럼 그가 살아오면서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 어떤
사랑이 있었는지, 아프리카를 넘어선, 삶의 이야기를 사진과는 다른 언어로 펼쳐놓은
것이다. 사진만 기대하던 우리는 마치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그의 글과 사진 앞에서
한 인간의 경험이 다른 인간의 삶을 어떻게 깊숙히 관통할 수 있는지, 눈 앞의 장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 전부를 담아낼 수 있는지, 겸허히 묵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 하면 흔히 떠오르는 원색의 컬러도 없고, 아이들의 초롱한 눈빛
클로즈업도 없고, 밋밋한 산과 나무와 인간과 동물들 그 무엇도 도드라지지 않은 그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면 마지막 본문 사진 옆에 쓰인 모두가 주인공인 아프리카란
구절이 명백한
사실보다는 김민호의 애절한 염원으로 읽힌다. 페이지를 넘겨 에필로그의 마지막 단락까지
읽고나면, 왜 이 제목이 촌스럽기 그지없는 동백꽃 아프리카가 되었는지, 알게 된다.
동백의 반대 계절에
바다 건너 검은 땅위에 서서
툭 떨어진 서늘한 기운을 줍다가
삶이란 결국 다르지 않더라는 처연함이었는지
그 처연함이란 붉은색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쩌자고 동백은 붉은 것인지
붉은 색과 검은 색은 원래 닮았던 건지
인간의 조상은 동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내게
아프리카는 동백꽃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다시 첫 페이지를 열면 이제 그의 헌사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
차례다.
“시간의 바느질을 견디어내신 아름다운 어머니께 드립니다.”
<저자소개>
김민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2011년, 인사아트스페이스에서 사진전 Marginal land(변이의 땅)을 전시했다.
소리소문없이 언제 이런걸?
암튼 축하하네.
청일집 함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