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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도덕성이 가장 주요한 자질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란 수백만 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행위이므로 최고 정치 지도자의 자질은 도덕성에 앞서 유능함이다. 물론 지도자에게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도덕성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그 필요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격 미달의 정치인들이 많다. 정치에 관한 한 우리는 아직 ‘출발선’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셈이다.

중국 청나라의 번영기였던 18세기에 옹정제는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양렴은(養廉銀)이라는 카드를 빼 들었다. ‘청렴을 배양하는 돈’이라는 뜻인데,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관리들의 조세 횡령을 양성화하는 제도였다. 지방관들이 중앙으로 보내는 조세에서 임의로 ‘삥땅’하던 관행을 아예 제도화해 직급에 따라 어느 정도만 착복하게 한 조치다. 부패의 관행을 근절하지 못해 제도권 내로 수용한 결과였으니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19세기에 액턴이 말했듯이 권력이 있는 곳에는 늘 부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서양의 역사에서는 권력형 부패의 균형추로서 권력자의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관념이 존재했고 실천돼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서양 역사에서 보는 지도자들은 동양 역사의 동업자들과 사뭇 다르다. 고대 세계 최강이었던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맞아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300인대를 거느리고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도 직접 군사 원정을 지휘했고, 중세 유럽의 프리드리히·필리프·리처드 등은 왕의 신분임에도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비잔티움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등 적과 싸우다 전사한 군주들도 많다.

대조적으로 동양의 지배자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군주로서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운 사례가 흔하다. 중국 역대 한족 황제들 중 군대를 거느리고 고비 사막을 넘어 중원 북쪽을 원정한 황제는 명나라 초의 영락제가 유일하다. 우리의 경우는 더 비참하다. 고려의 현종은 거란이 남침하자 남쪽의 나주로 도망쳤고, 조선의 선조는 일본이 북침하자 북쪽 끝의 의주로 피신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사흘 만에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버리고 한강 다리를 끊고 피신했다. 이런 역사의 굴절에도 지배자를 타도하는 혁명이 없었던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다.

동양의 역사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부재한 이유는 동양의 지배자들이 특별히 부도덕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신분’의 개념이 서양 사회와 달랐기 때문이다. 동양의 신분은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서열의 의미가 강한 반면, 서양의 신분은 곧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규정했다. 한 예로, 서양의 역사에서는 농민이 경제적 생산을 담당하고 병사가 방어나 정복을 위한 전쟁을 담당하는 식으로 양자가 확연히 구분된 데 비해, 동양의 역사에서는 예로부터 병농일치가 골간이었다. 당나라 때 생겨나 중국과 한반도 왕조의 기본적 군사제도였던 부병제의 핵심이 바로 병농일치다.

이런 역사적 차이 때문에 동양 사회에도 귀족은 있었으되 귀족의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었다. 사실 귀족이라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을 리 없다. 서양의 귀족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에 나섰던 이유는 단지 개인적 용기가 아니라 전쟁이 바로 귀족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현대 서양 사회의 상류층에서 기부 문화가 활성화된 이유도 그들이 유달리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기부를 상류층의 의무로 여겨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의 권력형 비리는 단기간에 척결될 문제가 아니다. 도덕성을 최대의 장점으로 내세웠던 대통령이 아무 생각 없이 남의 돈을 받았을 정도라면 그 뿌리가 오랜 역사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역사의 틀을 새로 세우는 장기적이고 원대한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남경태 역사 및 철학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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