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만 30년 '제철(製鐵)의 마술사'
● 포스코 새 회장에 정준양씨
"엔지니어 출신이 적임자" 일찌감치 폭넓은 지지받아
前회장 잔여임기가 1년 그 후에 재신임 받는게 숙제
포스코 차기 회장으로 내부 인물인 정준양(61) 포스코건설 사장이 선임됨에 따라 포스코의 경영 기조는 큰 변화 없이 일관성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연간 조강 생산량 3310만t에 달하는 세계 2위권 철강업체이자 총자산(계열사 포함 연결 기준)이 56조원에 달하는 국내 재계 서열 6위 기업이다. 연간 순이익만 3조~4조원씩 올린다. 정 차기 회장 내정자는 이런 '거함' 포스코를 이끌게 됐다.
◆왜 정준양 사장이 선임됐나
정 사장은 포스코 회장 자리를 놓고 윤석만(61) 포스코 사장과 치열하게 막판 경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내에서는 일찌감치 정 사장이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고 한다. 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거대 철강업체인 포스코를 이끌기 위해선 제철 현장에 밝은 엔지니어 출신이 더 적임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CEO후보추천위원회도 비슷한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포스코가 직면한 세계 철강업계 불경기를 감안할 때 홍보·관리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윤 사장보다 정 사장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이다.
정 차기 회장 내정자는 공채 8기(1975년)로 입사했다. 1999~2003년까지 4년간 EU사무소에 근무한 기간을 제외하면 30여년간 생산 현장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만큼 현장에 대해 애정이 많고 현장 대리·과장급 실무자들과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최고경영자라는 평가다.
그는 상무 승진(2002년)은 늦었지만 이후 1~2년마다 전무·부사장·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그가 현장에서 펼친 다양한 혁신 활동 덕분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수입하던 고급 자동차용 강판의 국산화를 주도했다. 특히 생산기술 부문장을 맡은 뒤 값싼 저품위 원료(철분 함유량이 낮은 원료)를 사용하면서도 고품위 원료를 사용했을 때와 동일한 품질의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을 개발해 매년 1조원 안팎의 원가를 절감하는 실적을 올렸다.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이런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1년 회장' 넘어 '정준양 시대' 열려면
정 차기 회장 내정자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여럿이다. 우선 회장 경합이 과열 양상을 빚으면서 본인은 물론 포스코 조직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가 '자사주 매매를 통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처남 관련 회사에 특혜 납품을 주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런 의혹에 대한 포스코 감사팀의 조사결과가 CEO후보추천위원회에 보고됐다. 포스코 관계자는 "제기된 의혹은 모두 근거 없이 부풀려진 것들"이라며 "정 사장이 선정된 것은 추천위원들도 감사결과 보고를 수긍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확고한 리더십을 행사하려면 내부 조직원들에게도 이런 점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또 회장 경합 과정에서 불거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완되고 분열된 조직을 더 조이고 통합시키는 것도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더 시급한 과제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뚫고 포스코를 더 강한 철강업체로 키우는 일이다. 포스코는 극심한 경기 침체 속에서 올해 국내 6조원을 포함해 총7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 회장 내정자는 이런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시켜야 한다.
정 회장 내정자가 이런 '숙제'들을 제대로 풀지 못할 경우 포스코는 1년 뒤 다시 '차기 회장 선임' 홍역을 앓을 수 있다. 그의 회장 임기는 이구택 회장의 잔여 임기인 1년인 탓이다. 그는 1년 뒤 상임이사 임기가 끝나므로 다시 신임을 받아야 한다. 재신임 성공 여부는 향후 1년간의 '실적'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편 이구택 현 회장은 다음달 27일 주주총회 당일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이와 함께 현재 포스코 사외이사 8명 중 상당수가 교체될 전망이다. 우선 서윤석 이대 교수와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다음달에 임기가 끝난다. 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도 최근 사의를 표명했으며,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후임 사외이사도 선임해야 한다.
조중식 기자 jsch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