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한우에서 한라산 백년초까지..
'한국 정상의 맛' 대령이오
- 한국일보 -
접시 위에 살포시 놓인 풍선 같다. 타조알처럼도 생겼다.
발사믹식초를 붓에 찍어 거칠게 그어낸 선이 순백의 접시에 여백의 미를 선사한다.
선과 접시와 풍선이 담긴 화폭에 정적을 깨듯 낯선 오렌지 빛이 스며든다.
흘러내리는 빛의 온도와 무게에 못 이겨 풍선이 사방으로 갈라진다.
마치 연꽃처럼. 발간 속살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순간,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에 맑은 미소가 번진다.풍선은 화이트 초콜릿이다.
빛은 애플망고소스, 속살은 애플망고무스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이 올해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 선보이고자 새롭게 내놓은
특별 코스요리의 피날레다. 인상적이다.


↑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이 정상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새롭게 개발한 코스요리 중 일부.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애플망고무스 디저트, 안심 스테이크, 꿩 토르텔리니다.
배우한기자bwh3140@hk.co.kr
정상 사로잡기 위한 호텔들 신경전
외국 정상들이 한국을 찾으면 보통 호텔에 묵는다. 식사도 대부분 호텔의 몫이다.
정상의 눈길을 끌고 입맛을 사로잡을 요리를 개발하기 위한 호텔들 간 신경전이 당연히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의 특별 코스요리도 그래서 개발됐다.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재료만을 이용한 양식이다.
개발을 총괄한 배한철 조리부장은
"수입 재료 없이 국산 재료로만 정상들의 코스요리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실제로 최근엔 양식 만찬에도 한식 풍을 가미해 해달라는 외국 정상들의 요청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개발에는 4개월이 걸렸다. 배 부장을 비롯한 약 20명의 요리사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최고급 코스요리에 어울릴 지역 특산물을 찾아 다녔다.
첫 번째 코스로 충북 충주에 있는 국내 유일의 캐비아 농장에서 생산된 철갑상어 알을 이용한 메뉴가 등장한다.
게와 바다가재 살을 곁들인 오시에트라 캐비아, 차완무시(일본식 계란찜) 위에 철갑상어 알을 올린
화이트 알비노 캐비아, 훈제연어와 함께 나오는 블랙 세브루가 캐비아 등 총 3가지가 한 접시에 담긴다.
두 번째 코스인 이탈리아식 만두 토르텔리니와 프랑스식 맑은 수프 콘소메는
각각 강화에서 자란 꿩과 강원 홍천에서 재배한 장뇌삼을 썼다.
특히 콘소메를 장식한 장뇌삼은 해발 600m 이상에서 5년 이상 자란 걸 써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단다.
제주산 방어와 랑구스틴(작은 바다가재의 일종)을 잘게 갈아 조미해 쪄낸
세 번째 코스 테린은 생선 특유의 냄새를 없애주는 생강소스와 잘 어울린다.
이쯤 해서 시원하게 입맛을 정리해줄 셔벗이 생각날 터.
셔벗의 재료는 100가지 병을 고치고 100살까지 살게 한다는 제주산 백련초다.
미식가의 눈과 입을 자극하다
코스의 메인 메뉴인 안심스테이크에 쓸 쇠고기를 구하기 위해 배 부장팀은 비무장지대를 찾았다.
청정 환경에서 자란 한우를 요리할 땐 먹는 정상에게 익힘 정도를 따로 물어보지 않는단다.
고유한 육질 맛을 그대로 살리려면 레어 상태로 내는 게 최상이기 때문이다.
백련초 셔벗과 스테이크에 이은 여섯 번째 코스는 전북 고창에서 생산하는 브리치즈로 만든 아이스크림.
치즈를 스프링 롤처럼 튀겨 만든 아랍식 라카캇과 감 처트니(걸쭉한 과일 소스)도 함께 나온다.
마지막 디저트 코스가 바로 초콜릿 풍선 안에 놓인 애플망고무스와 전남 보성의 녹차다.
디저트에 쓰이는 애플망고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배하고 있는 제주산이다.
7가지 코스 전체를 통틀어 음료는 녹차를 제외하면 와인 3가지다.
우리 술이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배 부장은
"계절에 따른 제철 식재료나 우리 술을 활용해 이 코스요리를 앞으로 조금씩 변형시켜나갈 계획"이라며
"우리에겐 평범해 보이는 국산 식재료가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맛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코스요리는 지난 5월 한국미식가협회의 '샤인 데 로티세르 디너'에서 처음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1년에 5∼6번 열리는 샤인 데 로티세르 디너는 선택된 전문가들이 모여 그날 선보이는 요리를 평가하는 행사다.
소금이나 후추 반입은 금물이다. 그만큼 음식 고유의 맛과 향을 중요시한다는 의미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