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가 새끼 오리들을 우루루 이끌고...
엘리베이타를 타고 내려가는데 어떤 어린이가 중간 층에서 올라 타는데 인사가
없다. 못 보던 아이다. "얘 인사를 해야지?^^" "안녕하세요? 꾸뻑 인사를 한다.
"새로 이사 왔구나?^^" "얘 야구하러 가니?" " 아뇨, 어름 깨러가요.^^ "
손에는 야구방망인가 했더니 그냥 한쪽이 부서진 야구방망이 굵기의 몽둥이다.
미리 어디선가 구하지 않았으면 아파트에서는 눈에 선 물건이다.
뒷결 개울에 어름이 언채 녹지를 않고 있으니 아이들이 장난끼가 동했나 보다.
아버지의 직장이 황해도 해주에 있어서 나는 해주에서 태어났고 해방 전부터
이듬해 삼팔선을 넘어 고향 충청도에 오기전까지 우리는 그곳에 살았었다.
할머니가 재령장에서 검은 색으로 알록달록 하기도 하고 불그레 노란색을 띄운
토종닭을 사오시면 그 꼬리를 조금 자르고 닭장에 넣으면 기왕에 있던 닭들이
새로 들어온 이 닭을 쫓아 다니면서 콕콕 쪼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생각하면 텃세를 하거나 왕따를 하려고 그랬던것 같다.
요새보면 토종닭이라고 시골에서 놓아먹이는 닭들을 보면 그 닭들의 후예인 것 같다.
닭장 안에 가마니를 높고 오목하게 매달아 주면 그곳에서 알을 낳으려고 멀뚱멀뚱
저를 해꼬지 할까봐 초조해 하면서 앉아 있던 암탉의 눈동자. 그 알의 따뜻한
감촉이란...
오리도 키웠었다. 그중 한 마리가 종종 어디론가 사라져 안 보이더니 옆집
솔가지 땔감을 높게 쌓아 놓은 속에 알을 낳아 품고 까서 어느 날 노랗고 귀여운
새끼 오리들을 열댓마리 우루루 이끌고 나타 나는게 아닌가. 얼마나 놀라웠던지 !!
그곳 추위는 여기 보다 훨씬 추웠던 듯 겨울이면 꽁꽁 어름이 박힌 언 사과를 종종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중 에서도 황주 사과는 아주 크고 맛이 좋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시험 문제에 사과가 많이 나는곳은 황주 하고 외웠던 기억도 난다.
지금도 사과가 많이 나는지. 한국에서는 해마다 품종이 개량 되어서 맛있는 새로운
사과들이 나와서 이제는 황주 사과의 명성은 가물가물 잊혀저 간다.
우리가 삼팔선을 넘어오기 전해 겨울이던가 나와 밑에 남동생은 동네 어름이 꽁꽁
언 좁은 도랑에서 썰매를 타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점심 팥죽을 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에 나는 썰매를 들고 남동생은 썰매 꼬챙이를 두 손에 들고 골목을
급하게 막 뛰어 오다가 동생이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는 바람에 뾰족한 꼬챙이에
가슴이 찔려서 당장 온 집안이 발칵 난리가 나고 해주 도립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보통 걱정꺼리가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젊은 날 낚시를 무척 즐기셨던 아버지는 예성강에서 밤낚시를 하면 커다란
잉어나 붕어가 많이 잡혔는데 어느 날 낚시를 가셔서 밤새 얼마나 많은 잉어를
잡았는지 대나무로 된 살림망에 지고 오셨는데 어깨에 멍이 퍼렇게 들고
이를 다 먹을 수가 없어서 일부를 할머니가 길에서 팔려고 나갔는데 해방이
되는 통에 사람들의 물결에 휩 쌓여 팔지를 못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생전에 풍광 좋고 인심이 후하다면서 통일이 되면은 다시 가서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이미 돌아 가신지 오래고 통일이 될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데 세계에 유례가 없이 기아선상에서 헤메는 고통의 땅
그곳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도 그 전처럼 여전히 유할지 그것이 의문스럽다.
맑은 물이 흐르고 경치가 좋은 곳이면 淸風明月이란 휘호가 새겨진 비석들을
새워 놓은걸 보았었는데 옛 선조들의 자취는 그대로 있는지도 궁금하다.
물론 그 동생은 건강하게 지금도 잘 살고 있지만 그때 부모님이 얼마나 가슴을
태우며 조리셨을까 !! 하는 생각을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겨울이면 언제나
했고 지금 아파트 뒷 개울에서 신이 나서 어름을 깨는 그 개구쟁이 어린이를 보니
문득 잠시나마 어린 그 시절 회상에 잠겨 보았다.
07년 1월 20일 청초 (7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