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오후에 산을 올랐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아차산이다.
열 명 남짓 친구들과 함께 했다.
밤에 내려오게 될 테니 내려오는 길목이 완만한 코스를 잡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시각이 오후 4시를 넘어선 시간이었으나 그 시간에도
태양은 한낮의 뜨거움을 방불케 하니 우리의 걸음걸음은 결승점을 목전에 둔
마라토너의 발길처럼 기운이 쇠하였다.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어느새 사위가 어두워지고 준비해 간 간식을 먹고 나니
산 아래는 등불들이 하나 둘 다투어 피어난다.
우리는 순식간에 어두워 진 주위를 보며 잠깐 두려움을 느꼈다.
프랑스에서는 이때를 가리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는데
사위가 어두워져 개인지 늑대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해서 그리 말한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언젠가 책을 읽으며 공감한 것은 그 시간에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나의 이웃이라는 작가의 의견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두워져 사물의 식별이 어려웠지만 실루엣만을 보고도
나는 그 검은 그림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내려오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는 눈앞의 한두 걸음이었으니
어찌 두렵지 않았으랴..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넘어 선 용기를 주었다.
노래를 부르며 숲길을 걸었다. 손전등을 들었다고는 하나 서로 의지하는
친구들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어찌 수월하게 우리가 원하는 시간 안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내려오는 길에 한가로이 세워 진 정자에서 통성기도를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큰 소리로 자기 안의 만족스럽지 않은 무엇들을 뱉어 내는 모습을
보며 학창 시절 외우기를 하며 한껏 목청을 높이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그때 우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당시의 우리는 나이가 어려 가슴에 담긴 것이 적으니 쌓아 놓기 위해 소리를
높이며 집어넣었고 이제 저들은 살아 온 세월이 짧지 않으니 가슴에 쌓인 것을
덜어 내느라 저리 큰소리로 울부짖는 것 같았다.
이제 우리의 나이도 가슴에 쌓는 일보다는 덜어 내는 일에 비중을 두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무들아, 노래하라! 크게 노래하라. 내 안의 삶의 찌꺼기 있다면 다 내어 놓고 비워내자!
한낮 태양 빛으로 짐작하면 환하게 우리를 비추었을 음력 열엿새의 달도 별도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 그 하늘에 별도 달도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던 우리들이었다.
귀한 것들이 그리 눈에 잘 들어오겠는가.
그 달빛을 별빛을 기억하자.
오늘 반나절을 함께 했지만 오랫동안 친구인 그들이 소중하다.
살아가며 쌓인 삶의 찌꺼기들을 비워 낸 그 곳에 이러한 것들을 채워 넣는다면 나머지 삶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개와 늑대를 알아보는 우리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