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기다리던 방학입니다.
아이들도 교사인 저도 웬지 방학이 기다려짐은 쉬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네요.
학기초부터 저를 힘들게 하던 트리오 셋이 끝까지 방학맞이에 들뜬 담임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제가 있는 학교는 실업계 학교로 남녀 합반입니다. 남녀의 구성비는 반반정도 되구요. 올해는 1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신림동에 위치한 탓인지 아이들의 천성은 참 순진하고 밝습니다.
좀 가정형편들이 힘든것만 빼고는요.
학교 바로 뒷편이 난곡인데 난곡 재개발로 많은 아이들의 집이 이사를 해야했습니다.
트리오 셋(여자아이들이죠) 역시 가정형편이 그리 좋진 않습니다.
그런데 그 중 두명이 긴 머리를 파마하고 나타났습니다.
그 긴머리를요.
저희 학교 다닐때 하던 핑컬파마와는 차원이 다른....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론 제 여력이 다해 그냥 넘어가려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부에 걸리고는 일이 커져버렸습니다.
어제 파마를 풀고 오라는 엄명들을 받고 오늘 아침 나타났는데 아무렇지도 않은듯 어제의 약속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더군요.
아침 조회하러 들어가니 교탁밑에 드라이기를 꽂고 머리를 서로 펴 주고 있었습니다.
참 많이 화가 나더군요.
좋은 말로 할때 지키면 될껄 왜 그리 일을 힘들게 벌이는지...
아이들의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참 철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트리오는 머리뿐만이 아닙니다. 흡연이며 매점 출입건이며 땡땡이... 등등 참 한학기 동안 저를 너무 힘들게 한 친구들이죠.
하지만 사실 그 아이들이 밉지는 않습니다.
화끈하기도 하고 쉽게 맘을 풀기도 하거든요.
어느땐 어른인 저보다 더 속이 넓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웬지 뜸들이며 야단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너희들때문에 내가 속상하다고 표시하고 싶구요.
약속을 그냥 아무렇지않게 넘어가 버리는 그런 얄팍한 아이들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저를 따라다니게 하는 벌을 줄까 생각중입니다.
제 수업도(교생처럼 참관하게 하고), 제 근무도 모두 지켜보게 하려구요.
아이들 때문에 맘이 무너질때가 참 많습니다. 때론 보람도 느끼고 격려도 받지만 (그래도 이것이 천직이라 느끼고 있지만) 제 맘을 알아주지 못할때 속이 상하네요.
저도 위로받고 싶은 아침입니다.
가벼운 맘으로 방학을 맞고 싶었는데 내일 방학이 웬지 멀게만 느껴지네요. 저 역시 오늘 하루가 길게 느껴질것 같습니다.
우리반 트리오와 삐진 절 위해 힘내라고 응원해 주실꺼죠? ^^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라는걸 깨달을 날을 기다리며....
2004. 7.21 아침에 은짱....
이글을 보다보니 학창시절이 생각나는군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꽤나 선생님 속썩이며 지냈지요?
모두다 한때의 추억이죠
그 미운 오리들 백조가 되도록 많이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