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게시판

선농게시판

조회 수 8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c01d3057ec0c1712e0fded44a8a859a3.JPG

 

"봄이 되면 생각나는 일."                           청초 이용분(7회)

 

겨우내 얼었던 시냇물의 어름이 다 녹아내리고 우여곡절 끝에 어느새 봄은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정원의 산수유나무가 수집은 듯 노란 꽃 봉우리를 열었다한옆의 모란도 간난 아기의 손가락 같이 생긴 어린잎이 두 마디는 넘게 자라났다그래도 옷깃을 스치는 봄바람은 녹녹하지를 않고 사이사이 칼바람이 숨어 있다

 

탄천 변에는 누렇게 시든 지난해의 묵은 잡풀 속에 겨우 돋아나는 어린 쑥을 뜯느라 벌써 여인들의 손길이 바빠졌다그러나 자세히 들려다 보니 아직 미미한 새싹이라 손만 바쁘지 소쿠리에 들어가는 게 별로 없다어서 봄비라도 두어 번 골고루 내려야만 그런대로 나물다운 쑥이 뜯어질 것 같다

 

쑥은 여러 가지 약효를 지니고 있다는데 소화 기능에도 좋고 부인병에도 특효가 있어서 어디를 가나 잘 자라는 이 흔한 쑥 때문에 환자들이 찾아오지 않아서 한약방들이 잘 안 된다고 울상을 하게 한다고 한다의약이 별로 없던 시절 옛 어른들은 야생초에서 약 효능이 있는 나물들을 찾아서 그를 먹고 간단한 병을 치료했던 듯하다세계 제2차 대전시 일본 대도시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을 투하 한 후 모든 산촌 초목이 다 타버리고 초토화 됐을 당시 제일 먼저 파릇하게 새싹이 돋아 난 게 바로 쑥이어서 그 끈질긴 생명력이 이미 인정된 약초이기도 하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는 봄이 되면 씀바귀가 입맛도 돋우고 위장병에 특효라고 하면서 실뿌리 노란 나물을 고추장에 무쳐서 자시는 걸 종종 본 기억이 난다우연히 동네 채소가게에서 이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한 웅큼 사다가 잘 씼어서 막장에 무쳐서 먹어 보니 정말 옛날 긴계랍(키니네)맛이 나면서 아주 쓰디쓰다긴계랍은 아기들의 젖을 뗄 때 엄마의 젖꼭지 주변에 발라 놓으면 그만 아기가 그 쓴맛에 질색을 하고 젖을 안 먹게 되는 효과를 노린 약이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게 되니 예전에 할머니가 하셨듯이 씀바귀를 먹어보게 되었다과연 입맛이 도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위장에 좋다니까 몇 차례에 걸쳐서 사서 먹어 보았다봄도 되기 전 일찌감치 냉이국도 끓여 먹고 돗나물도 사먹어 보았다그러나 이들은 야생이 아니니 향이 없다나물들이 자생하는 곳을 안다면 소쿠리를 들고 캐러 가보고도 싶다.

 

요즈음은 이들 나물들은 거의 비닐하우스 속에서 키워서 출하되기 때문에 이것들 중에서 옛날의 자연산은 찾아보기 힘 든다원래 예전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셨던 나의 할머니께서는 산모퉁이 아래에 있던 사택인 우리 집에 붙어 있는 텃밭 이외에 주변에 놀고 있는 야산의 돌멩이를 호미와 괭이로 골라 내고 조금씩 개간을 하여 텃밭을 넓혀 갔다이를테면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이신 셈이다

 

그곳에 야채를 심기도 하고 콩팥도 심고 동부 콩도 심었다이른 봄날 요만 때면 감자의 씨눈이 붙은 쪽을 잘라서 시커먼 재를 묻혀서 고랑을 파고 조금 깊게 심고 집에서 키우던 몇 마리 닭의 거름으로 감자를 키웠다남은 감자를 된장국에 넣어 끓이면 이도 참으로 맛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요즈음처럼 비닐하우스가 없던 시절이라 제철이 아닌 감자도 아주 귀했었다여름이면 매일 그 농작물을 가꾸느라 집안에 머물 틈이 없었는데 집에 들어올 때 마다 흙을 묻혀 오신다고 이를 성가셔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그 덕에 파나 배추 시금치 아욱 같은 야채는 사먹지 않고 자급자족을 하였고 가을이면 콩이니 동부니 시골 농삿집 모양 풍성 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체구도 자그마하셨던 할머니는 그 당시는 드물게 여든 일곱 해를 건강하게 사셨다손녀인 나와 한방에 기거하면서 동네에 다니는 어떤 아이보다 할머니의 손녀인 내가 인물이 제일 잘 났다고 기뻐하시며 무척 사랑을 하셨다말씀이 별로 없으시고 무덤덤하셨던 어머니와는 달리 할머니는 냉철하고 자상해서 나와는 이야기를 잘 나누셨다

 

할머니가 살아 오셨던 어린 시절 전봉준의 난 개화기에 일어난 일등 그리고 살면서 고생스럽던 일화 등 이야기들을 나를 상대해서 친구한테 말하듯이 세세히 이야기 해 주셨다내가 멀리 통학을 했던 학교생활이며 그 후 직장생활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말씀드리면 "젊어서 고생은 돈을 주고도 사느니라"고 하며 항상 위로와 격려를 해 주시곤 하셨다

 

요 근래 위장이 안 좋아져서 갑자기 할머니가 자셨던 씀바귀 생각이 나서 먹어보며 그 옛날 생각에 젖어 보았다요새 세상이야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사먹을 수 있어서 편리하게는 되었지만 땅 한 뼘 없이 높은 아파트에서 흙을 안 묻히고 편하게 살게 된 요즈음은 아무리 옛날의 풍취를 경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

 

 

229a5a4766ad9bdbb05ec05c7955c73a.jpg

 

  1. 찔레꽃의 슬픔

    Date2023.05.21 By이용분 Views93
    Read More
  2. 내손에 풀각시 인형 만들어 쥐어 주던 손길...

    Date2023.05.18 By이용분 Views103
    Read More
  3. 아름다운 양보

    Date2023.05.09 By이용분 Views88
    Read More
  4. 찬란한 오월의 찬가 !

    Date2023.05.03 By이용분 Views108
    Read More
  5. 어느 모란 장날

    Date2023.05.01 By이용분 Views125
    Read More
  6. 싹눈의 밑거름이 되는 자연의 이치

    Date2023.04.25 By이용분 Views88
    Read More
  7. 이봄에 꽃씨를 심어 보자.

    Date2023.04.13 By이용분 Views95
    Read More
  8. "봄이 되면 생각나는 일."

    Date2023.04.09 By이용분 Views88
    Read More
  9. 막내 아들 찾아 일본 방문기

    Date2023.04.03 By이용분 Views155
    Read More
  10. 마지막 자존심

    Date2023.03.24 By이용분 Views103
    Read More
  11. 산 넘어 어디엔가 행복의 파랑새가 산다기에...

    Date2023.03.22 By이용분 Views125
    Read More
  12. 상수리나무 꼭대기 썩은 나무둥치에 딱따구리 새가...

    Date2023.03.18 By이용분 Views166
    Read More
  13. 날씨는 쾌청이나 차기만한 봄 바람...

    Date2023.03.13 By이용분 Views135
    Read More
  14. 대게 이야기

    Date2023.03.12 By캘빈쿠 Views185
    Read More
  15. 비둘기 배설물이 문제다

    Date2023.03.12 By캘빈쿠 Views211
    Read More
  16. 내 마음도 봄 바람을 타고

    Date2023.03.06 By이용분 Views110
    Read More
  17. 손녀의 돌사진

    Date2023.03.04 By이용분 Views136
    Read More
  18. 하늘을 향해 끝없는 호기심으로...

    Date2023.02.13 By이용분 Views129
    Read More
  19. 정월 대 보름 달을 보며 기원하시던 어머니...

    Date2023.02.04 By이용분 Views149
    Read More
  20. 지하철 안 인심

    Date2023.02.01 By이용분 Views13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96 Next
/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