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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01.01 09:33

해미와 솔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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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미

해미 성지는 옛날 흥선대원군 때 수백, 수천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생매장을
당한 곳, 세계 유일의 생매장 성지이다.

해미 성지는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도 당시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백 년의 박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서슬이
무뎌지지 않았던 해미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웅덩이와 구덩이로
내몰린 채 생매장당한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다.





1790년에서 1890년에 이르는 100여 년의 기간 동안 해미 진영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처형했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조정이 천주교 탄압을 공식화할 때뿐만
아니라 해미 진영은 끊임없이 내포 지방의 교우들을 잡아들여 죽였다.





이 박해 기간 동안 해미 진영에 있었던 두 채의 큰 감옥은 잡혀 온
교우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매일 서문 밖으로 끌려 나와 교수형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죽어 갔다. 또 더욱 잔인하게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고안
되기도 했고, 여러명을 눕혀 두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 꿈틀거리는 몸뚱이를 발견하면
횃불로 눈을 지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학쟁이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 한다.





한 명씩 처형하는 데 지친 관헌은, 특히 1866년 병인년에서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시에는 시체 처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생매장을 하기도 했다.
해미 진영의 서녘 들판에 수십 명씩 끌고 가 아무 데나 땅을 파고
구덩이에 산 채로 집어넣고 흙과 자갈로 덮어 버리는 참혹한 행위가
수없이 되풀이 됐다.





이렇게 스러져 간 순교자들은 그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순교자들 중 70여 명만이 이름과 출신지를 남기고 있으나 그나마도
불확실하고 나머지는 이름 석 자 하나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들이다.





이들이 숨져 간 유적지는 현재 깨끗하게 단장돼 있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는 교우들의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라 알아듣던
주민들의 입을 통해 '여숫골'이라는 이름으로 전해 오는 생매장 터인
진둠벙이, 14처 노천 성당으로 단장돼 있다.














1935년에는 서산 본당 범 베드로 신부에 의해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들이 발굴돼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돼 있었는데
최근 원래의 순교 터인 생매장 순교지 순교탑 앞으로 이장됐다.











서문 밖 순교지에는 1956년에 서산 성당으로 이전, 보존되었던
자리개 돌다리가 1986년에 원위치를 찾아 복원돼 있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해미 읍성에는 교우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가 있고 그 옆에는 고문대로 쓰던 호야나무가 남아 있다.
이 나무 위에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




















솔 뫼

솔뫼는 바로 한국 최초의 사제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이다.
이곳은 성인이 박해를 피해 조부 김택현을 따라 용인 땅 골배마실로
이사 갈 때인 일곱 살까지 살았던 곳이다. .
이곳 옹기 토굴에서 황사영이 백서를 집필했고, 1856년에는 최초의
서구식 학교인 신학당이 세워졌는데 깊은 산골 장주기의 집에 세워진
신학당에는 학생 열 명에 두 신부가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배론에서도 집주인이었던
장주기와 두 선교사 신부가 잡혀가 형장의 이슬이 됐다. 그리고 목자
잃은 양 떼처럼 신학당 역시 폐쇄되고 만다.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을 가진 『솔뫼』는 충남 당진군
우강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이 곳은 김해 김씨 안경공파인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한현(l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가 면천 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는 이존창 으로 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곧 벼슬을 버리고 신앙
생활에 전념한다. 그로부터 이곳 솔뫼는 교우촌이 된다.
하지만 1791년 전라도에서 제사 문제로 일어난 진산 사건으로
그 역시 박해의 회오리에 휩쓸려 홍주, 전주, 공주 등지의 옥에
갇히게 되고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귀양을 떠나야만 했다.





그 후 귀양에서 풀려 돌아온 후 1805년 또다시 붙잡혀 해미 감옥으로
끌려가고 이 곳에서 10년간 옥중 생활을 하던 중 1814년 마침내
76세를 일기로 순교했다.
그 후 7년이 지난 1821년 8월 21일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와 모친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재복이라는
아명으로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갈 때까지
소년 시절을 보낸다.





당시 김대건 일가가 살던 집은 아흔아홉 간이나 되는 큰 집이 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우물과 집터만 남아있고 대나무들이 주위에 있다.
솔뫼에서 대대로 명망이 높았던 김씨 가문이었지만 김진후의 15년간의
긴 옥중 생활로 가세가 기울어 신앙을 지키고 살기가 어려워져만 갔다.
셋째아들 한현은 부친이 옥중에 있을 때 경상도 안동 땅으로 피난을
갔다가 잡혀 1816년 대구 감영에서 순교했다. 둘째아들 태현은 1827년에
그의 아들 김재준과 김대건 등을 데리고 경기도 용인 땅 『골배마실』
이라는 산골로 삶의 터를 옮겼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집과 땅이 있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김씨일가의
피난길은 설움과 눈물이었지만 신앙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에서 나온
결단이었다.
선대의 신앙을 이어받은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은 모방 신부로 부터
성세와 견진성사를 받고 회장에 임명 되어 전교에 힘쓰면서 자신의
아들을 사제의 길로 인도한다. 그 역시 1839년 기해박해로 체포돼
그해 9월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다.





마카오로 유학을 간 신학생 김대건은 1845년 8월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 부터 사제로 서품돼 그해 10월 귀국한다.
귀국 후 첫 사목지를 은이 마을로 정한 뒤 공소를 차려 용인 일대의
사목을 시작한다. 하지만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모친 역시
귀국 후 잠시 얼굴을 대했을 뿐 김 신부 역시 사제품을 받은지 1년
만인 1846년 9월 새남터에서 장렬한 순교로 일생을 마감한다.
1814년 김진후로 부터 시작돼 김대건 신부까지 30여년 동안 김씨일가는
4대가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신앙의 명가가 된 것이다.





솔뫼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 100주년을 맞은 1946년에 성역화
사업이 시작돼 기념비를 세웠고 생가 터를 매입했으며 성인의 동상과
탑이 건립되었다.
탄생 장소와 생가 터에는 아직도 300여년의 연륜을 지닌 소나무들이
무성하고 오른편 숲속에는 김 신부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솔뫼의 역사를
굽어 보았던 소나무들이 30여 그루나 남아있다. 그리고 그밑으로 있는
우물터에는 아직도 지하수가 솟아나고 있다.







* 미사안내 *

일 시 : 9월 24일(주일) 오전9시40분
장 소 : 종암동 모교 음악실(체육관 1층)
주례사제 : 작은 예수회 이마리오신부

연락처 : 이순덕 019-9332-7334,
김명기 011-9736-7876

좋은학교 좋은동문들
참으로 아름다운 교우들

모교에서
기쁨에 시간 즐거움에 시간을 만들었으니

모두 참석 하셔서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요

미사후 홈컴잉 데이 행사에 참석하여
좋은 추억 만들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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