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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행길가 장사꾼 할머니               청초 이용분(7회)

    우리 집에서 지하철을 타러 나가는 길 양옆에는 하늘 높이로 큰 나무숲이 우거져있다. 이른 봄부터 한여름과 늦가을 눈 오는 겨울날에도 꼭 거쳐야 되는 길목이다. 계절 따라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고 갖가지 색 단풍 들고 낙엽이 진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 낭만적이긴 하지만 길이 미끄러워 곤욕도 치른다.

    반 공원화 된 이 길 끝머리 큰 길 가에 이곳 분당이 개발되기 전 원주민격인 노인 할머니들이 앞앞이 자기 집 텃밭에서 키운 야채들을 길바닥에 나란히 늘어놓고 팔고 있다.
    열무 파 구부러져 상품성이 없는 가지 오이 까지도 작은 소쿠리에 수북이 쌓아 놓았다. 자잘해서 골머리 아픈 쪽파를 열심히 까는 한편 이제는 늙어서 잘 나오지도 않는 자지러질듯한 음성으로 제가끔 자기 물건을 사가라고 쉰 목소리로 호객을 해 재낀다. 보통은 바쁜 길이니 곁 눈길로 쳐다보며 지나가곤 한다.

    그네들은 원래 여기 살던 원주민들인데 분당이 개발이 되면서 땅값이 천정부지 올라서 떼 부자가 되었지만 그 많은 돈다발들은 젊은 아들 손에 다 넘어 가고 텃밭에 밭농사를 지어서 이렇게 근근이 사는 노인들도 있다고 한다.

    시내에 볼일을 보고 오늘은 뒤늦은 시간에 귀가길이다. 다른 노인네들은 물건을 다 팔고 모두 가버린 모양이다. 두어 할머니가 아직도 판을 벌리고 지나가려는 나에게 호소라도 하듯이
    "이 상추 요게 마지막인데 이것만 팔면 집으로 가려고 하는 데 이것 좀 팔아 줘요"  
    우연히 눈이 마주친 나를 향해 호소하듯 외쳐 댄다.
    ‘내가 팔아 주면 저 노인이 하루 종일 길바닥에서 괴로웠을 시간을 끝내고 편히 집으로 가겠구나 ’  
    하는 생각에 아직은 조금 남은 묵은 상추가 냉장고 안에 있을 텐데...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할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거 담아 주세요." 그러자 욕심이 생긴 할머니    
    "이것도 좀 안 살라우?"  
    하얗고 깨끗하게 손질해 놓은 쪽파 더미들을 가리키며 더 사주기를 권한다.

    "우리 집에도 안 깐 쪽파가 한웅큼은 있어서 안 살래요"    
    나는 원래 파를 싫어해서 김치 담구는 일 말고는 파를 기피한다.

    내가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할머니 손에 넘겨주는 순간 어떤 중년 주부가 삶아 놓은 나물을 가르키며
    "이건 무슨 나물이에요?" 한다.
    "취나물이유 좀 사 가슈 내가 싸게 줄 터이니^^"

    내가 보기에는 그 나물이라는 게 너무 푹 삶겨져서 어째 좀 곤죽이 된 느낌이라 한 조각을
    집어 들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상하지는 않았고 취나물 냄새가 나기에
    "취나물이네요" 했다.

    떨이로 그 나물을 싸게 주겠다던 할머니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한웅큼 쥐어서
    까만 비닐 주머니에 넣으면서
    "삼천 원 만 내슈" 하고 말을 하자 그 중년 아주머니
    "안 살래요" 하고는 발길을 옮겨 가는 순간
    "왜 그러슈 그럼 이거 다 사천 원에 줄께 사슈."
    "그래도 안 살래요."
    "할머니가 이랬다저랬다 하니 안사고 싶어 진거에요"

    당황한 할머니
    " 이거 몽땅 다 삼천 원에 가져 가슈"
    그제서야 그 중년 아줌마 다시 쪼그리고 앉으면서 돈을 꺼내 놓은 게 오만 원짜리다.
    당황한 할머니
    " 내게 그 거스름돈이 있으려나..."
    순간 내게 있는 흰 봉투 속 만 원짜리들이 생각나서
    ‘그거라도 바꿔 주어서 사고팔게 해 줄까...’

    할머니가 꺼낸 조그맣고 꾀재재한 돈 주머니에서 다행히 구겨진 만 원짜리들이 몇 장
    우수수 나와서 바닥에 쌓이는 걸 본 순간  
    "할머니 부자시구나 돈이 많네...^^" 
     
    나는 안심이 되어서 그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 내 상추 값 이천 원 내고 가슈 " 하는 게 아닌가...  
    너무나 당혹스러운 순간이다. 이를 어떻게 증명하지...?
    "에그! 어쩌나. 잘 생각해 보세요. 아까 전에 내가 이천 원을 돈 봉투에서 꺼내 드렸잖아요.
    "내 참 기가 막혀서... 정신을 똑바로 잘 차리고 장사를 하셔야 해요."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사이 자기가 내어 놓은 천 원짜리 두 장이
    겹쳐 있는 걸 만지면서
      "이 돈인가...?" 한다. 나도 그 순간 그 자리를 떠났다.

    한 바퀴 돌고 되돌아오는 길, 이제 사방은 어둑어둑 인적도 드물어 가는데...
    그 할머니는 어느 춤에 선가 또 다시 상추를 그만큼 꺼내 그릇에 담으면서
    “좀 팔아주세요"
     이렇게 애처로운 목소리로 또 다시 외치고 있었다.
      "떨이예요. 이것만 팔면 내가 집으로 갈 텐데..."
      '에그!저를 또 어쩌나...'

                                                        2017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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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ny(12) 2019.12.20 09:14

    이선배님,
    또한해가 쏜살같이 지나 갔네요. 그 동안도 여전하신지? 저는 6월에 새로 나온 약을 시험하는데 자원을 했다
    심힌 부작용이 생겨서 다시 원상복구하는데 의사들 셋이서 애를 써 이제야 제대로 거의 된듯 합니다. 이런일을
    경험하는게 두째번이 되네요. 그래도 새약으로 도움을 받을 이들을 위해 봉사한다는게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저희가족들은 모두들 잘들 있고요. 금년에는 카나다 서부지방 은행가/회계사들의 선정으로 사위가 모범이 되는
    중,소기업 운영자로 연말 갈라에서 표창을 받았습니다. 딸은 자기 클리닉을 내는데 성공, 잘해 나가고 있구요.
    오는 24일에 가족들 모임이 있는데 어른이 17명, 어린이가 3명이네요. 사돈영감님이 미리 세상을 떠나 어른 숫자가
    홀수가 되었습니다. 그댁 가족들도 다들 모이시겠지요?

    이선배님, 새해에도 가내 두루 복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도 건강들 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재밋는 글들도 올려 주시고.

  • 이용분 2019.12.21 15:15

    반갑습니다. 황 후배님 ...
    그간도 안녕하셨는지요?

    60세에는 60km 70세는 70Km 80세에는 80Km 속도로 세월이 흐른다더니 정말 세월이 화살같이 흐르는것 같습니다.
    후배님께서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그래도 그후 잘 회복되셨다니 다행이고 축하 드립니다.

    저도 작년 5월경무렵 큰 수술을 받고 살어름 밟듯이 정말 일년 반을 조심스럽게 지냈습니다.
    요즘은 건강하게 백살이 아니라 병을 친하게 다스리며 백년을 살아야 된다고
    어떤 의사가 T.V.서 말하는걸 듣고 맞는 말이라 생각하고 위안을 받았습니다.

    가족분들이 모두 이 힘든 세상살이에 잘 적응하고 훌륭하게 잘 성공하고 살아가시니 정말 다복하삽니다.
    저의 두 아들아이들도 모두 건강 하고 무난하게 대학교수직을 수행하고 있어서 마음이 놓입니다.

    애들과도 수시로 모여서 맛있는거 사먹고 웃으면서 담소하고 서로 서서히 나이들어 가는 모습들을
    마주 보며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곤 합니다.

    모쪼록 후배님께서도 온 가족 건강 하시고 즐겁고 다복한 새해를 맞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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