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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카시아 꽃이 피는 5월                      청초  이용분(7회)

    오월이 되니 길가에 늘어선 프라타나스가 연녹색 야들야들한 잎을 달고 때 마침
    부는 봄 바람에 제각기 팔락이고 있다. 푸른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솟구칠 듯
    무서운 기세로 자라고 있다.

    근처 ‘바지락 칼국수 집’에서 칼국수 점심을 먹고 돌아 오는 참이다.
    지나는 길 바로 옆 산아래에 있는 조각보 처럼 나뉘어진 텃밭들 사잇길을 지나
    가 보기로 했다. 심심하면 여름 가을 겨울에라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 가 보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에는 사람들이 무엇을 또 심었을까? 궁금하다. 봄이 되니 벌써 그 텃밭
    주인들은 제가끔 여러가지 야채를 심어 놓았다. 한참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우선 초입에서 케일꽃인지 유채꽃인지, 키가 크고 노랗게 핀 꽃이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혹시 장다리 꽃인가 생각이 들었는데 이파리는 비슷하지만
    무꽃은 연분홍색이다.

    어디로 부터 날아 왔는지 종류도 가지각색 크고 작은 벌들이 제가끔 빠른 날개
    짓으로  '앵앵' 거리며 이 꽃에 접근하는 것을 경계한다.
    큰 적수라도 나타났나 싶은가 보다.

    이곳은 손바닥만한 땅마다 임자가 각각 다르다. 상추씨앗을 뿌린 사람, 땅콩을
    심은 사람, 강남콩도 떡잎 두쪽을 달고 딱딱한 땅을 뚫고 방금 돋아 났다.
    고구마 모종을 심었는데 시원찮은 뿌리가 처음 새 땅김을 쐬었는지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 고구마는 고구마에 돋아난 순을 길게 키워서 이를 잘라서 그늘
    진 땅에 삽목(揷木)을 했다가 잔뿌리가 내리면 이를 밭에 옮겨 심는 것이다.
    그래도 물을 주고 아기처럼 보살피면 살아 날것이다.
    워낙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니까....

    오이 모종이 심긴 경계선 울타리에 올리려는지 호박을 심어 놓은 것도 보인다.
    뿌리를 박을 조그만 땅만 있으면  되니까 길게 넝쿨을 뻗으며 올라가 호박이
    열겠지... 반들반들 윤기나는 호박이 열게 되면 얼마나 예쁠까. 안따 먹고
    두면 늙은 호박이 될것이고... 따먹는 재미도 제법 쏠쏠 할것 같다.

    온갖 채소들을 주인의 소망을 따라 심어 놓고 보살피며 아파트 생활의 무료
    함과 땅에 대한 한가닥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있는 것 같다.
    빈터에 앉았던 몇 마리 비둘기 떼가 나를 보자 우루루 날라서 도망을 간다.
    쟤네들은 예서 무슨 먹이를 먹고 있었을까. 보통 큰 길거리에서 만난 비둘
    기들은 눈치만 살필뿐 여간해서 도망을 가지는 않던데...
    여기만해도 산골이라 순진한건가...

    저만치 감자를 심었나 했더니 마침 연보라색 꽃이 대여섯 송이가 피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감자 꽃은 씨로 영글어 열매가 열기나 하는건지 그냥
    피는 헛꽃인지 잘 모르겠다. 씨감자는 그냥 감자로 하는 것만 보아 왔기
    때문이다.

    하얀 꽃을 매달은 완두콩이 힘없는 줄기를 어떻게든 세우기 위해서 어딘
    가에 의지하고 넝쿨을 매달아 보려는 듯 실날 처럼 가느다란 촉수(觸手)
    같은 더듬이 넝쿨을 허공으로 힘겹게 뻗고 있다. 하얀 꽃이 마치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간난 아기처럼 고개를 숙이고 수집게 피어 있다.

    가느다랗고 꽃잎이 꼬인 노란꽃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 이파리를 자세히 보니
    토마토이다. 미니 토마토일까 아니면 보통크기의 토마토일까...
    저 만치 파밭이 보인다. 마치 요즈음 T.V. 드라마 촬영 장소에 음향 효과맨들이
    들고 다니는 마이크처럼 소담스러운 털북숭이를 쓴 꽃들이 푸짐하게 피어 있다.
    자세히 드려다 보니 노란 꽃술도 달고 꽃이 갖추어야 될 것은 모두 갖춘 완벽한
    꽃이다.

    영글면 털처럼 보이는  그 작은 송이송이 마다 까만 참깨만한 씨앗이 꽉차서
    들게 된다. 그런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꽃이기도 하다. 파 대공이 시들어
    쳐지면 힘을 못 써서 그렇지 줄기만 단단했다면 좋은 꽃꽂이 소재로도 훌륭
    할것 같다.

    지나다니는 좁은 길목에 무언가 억센 잡풀이 크나 보다 했더니 옥수수 나무다.
    이렇게 무엇이든 시작은 미미하여 그것들의 존재의 의미를 모르겠으나 크고
    보면 모두 우리에게 소용이 닿는 곡식으로 큰다.

    느닷없이 옛날 나의 할머니 생각이  떠 올랐다. 젊은 시절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사셨던 할머니는 사택(舍宅)인 우리 집 근처의 조금만 빈터가 있으면 호미로
    일구어서 돌을 골라 내고 무엇이든 야채를 심곤 하셨다. 그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파나 마늘 시금치 아욱 근대등을 비롯하여 감자 옥수수등을 사먹은 적이 없었다.

    철이 없었던 나는 왜 꽃은 안심고 저렇게 못 생기고 꽃도 안피는 푸르기 만한
    채소를 심는지 이해가 안 갔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흙과 가까이 하고 자연과
    친했던 덕택인지 그 시절 87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 가셨다.

    나도 지금은 꽃도 좋아하지만 이런 먹거리를 심은게 더 호기심이 일고 귀중하게
    생각이 든다. 우리가 보통 사서 먹는 채소는 농약을 얼마나 쳤는지 어떤 토양
    에서 자란것인지를 도통 알수가 없다. 이곳에서 키운 채소는 그야말로 청정
    채소다.  아이들의 소꼽장난 같이 하찮기는 하지만 그맛에 이곳 텃밭 주인들이
    더 열심히 농사를 짓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 마음속에는 이 텃밭에 언제인가는 누군가가 아니면 시에서 또 무슨 명목으로
    큰 건물이나 아파트를 지어서 없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
    너무나 훤하고 그렇게 하기에 아주 마땅한 입지 조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나의 마음의 안식처처럼 느껴지는 이곳이 혹여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기우(紀憂)이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지금까지도 두어군데가 그런식으로 사라져 가 버린 예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멀지감치 어떤이가 내가 무얼하나 지켜 보는 듯 하다가 다시 허리를 구부려
    하던 일을 계속한다. 가까운 산 기슭 어디선가 이름모를 산새들이 제 짝을 찾는
    듯 처량하게 우지진다.

    인근 산에 피어 있는 유백색(乳白色) 아카시아 꽃향기가 바람에 날려 사람들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 한다.
    흐르는 계절은 풋풋한 5월의 절정기를 그렇게 구가하고 있었다.    
        
                                                     09년 5월에
            
                         (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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