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서 그런지 피곤하여 초저녁잠을 잔 날은 꼭 한밤중에 일어나 나 홀로 마음의 방황을 한다. 봄비마저 추적추적 오는 밤, 모두들 깊이 잠든 속 나 혼자만 깨어 있어서 느끼는 고적감이란... 스텐드 불을 켜고 엎드려서 머리맡에 놓인 여러 종류의 책 중에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서 보고 싶은 책을 뽑아 펴 놓고 마음을 다스려도 본다,
물을 마시러 가서 내다보이는 부엌 뒤 창문을 통해 밤새도록 빨간 불이 켜졌다 파란 불이 켜졌다 명멸(明滅)을 거듭하는 큰 행길가 신호등을 바라보면서 잠 못 이루는 내 마음의 영혼도 저러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날에는 보이지 않지만 낙엽이 우수수 진 가을부터 엄동설한 추운 겨울에도 홀로이 떠는 듯 살아 있는 신호등, 잎이 무성 하기 전 초여름까지는 밤중에 일어나 보면 언제나 이 불을 볼 수 있어 외로운 내 마음에 한 가닥 위안을 준다.
그 신호에 맞추어 출발하고 정지하는 차들의 빨간 후미등을 보면 이 밤중에 저 사람들은 잠도 안 자고 어디를 저렇게들 가는 것일까? 나처럼 잠이 안 와서 차를 타고 어디론가 방황하는 사람들은 아닐까?
예전에는 그 저녁잠을 자 버리면 그만 그날 하루가 끝나 버리는 게 아까워서 눈을 버티고 하품을 연거푸 하면서도 나는 잠자기를 거부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잠을 푹 자야 두뇌의 세포가 새롭게 생성도 되고 활동도 활발하게 된다는 게 과학적으로 규명됐다고 한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려 불을 끈 채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가 할 수 없이 일어나 나만의 세계 컴퓨터 앞에 앉아 본다.
젊은 날 한때는 남편이 낚시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낚시인 동호회 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첫 시내버스를 타고 영등포역에 나간다. 새벽 첫 기차를 타고 평택 쪽으로 낚시를 가려면 새벽 세시쯤부터 일어나서 한참 깊은 잠에 들었 다가 미처 잠도 덜 깬 막내 아들을 흔들어 깨워서 셋이서 콤비가 되어서 매주
일요일이면 낚시를 떠나곤 했었다. 이 붕어란 놈이 새벽녘에 제일 먹이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새벽 첫 기차를 타고 가야만 했었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낚시에 대한 흥미도 반감되고 기력도 쇠하여 자가용을 안 타고는 가볼 염도 못 가지게 되었다. 지방 대학에 근무하는 막내아들이 어느 저수지가 고기가 잘 잡히는지 어떤지를 그 지방 저수지에 매번 사전 답사를 해 두곤 한다.
혹여 그러다 낚시 삼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을 하면 "어머니 염려 마세요. 제가 어린아이입니까? 그까짓 것에 빠지게...^^" 하면서 내 걱정을 덜어 준다. 봄여름이면 때때로 우리를 제 차에 태우고 낚시를 가게 되면 다시 옛 시절로 돌아 간 듯 한껏 즐거운 마음이 된다.
아들아이가 자기 차에 태우고 끌고 가는 대로 붕어가 안 잡히면 기동성 있게 다른 저수지로 이리저리 팔도강산 유람하듯 끌려다닌다. 이도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일이라 그렇지 큰 아들아이는 낚시를 싫어한다. 가족 나들이를 핑계 삼아 억지로 끌고 데려가면 낚시터에 가서 기껏 라면을 끓이면 끓였지 고기 잡는 취미는 영 없다.
집의 어항에 키우는 금붕어를 쳐다보고 있자면 새벽에 먹이를 줄 때 제일 잘 먹는다. 겨울이 되면 꼼짝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움직이기를 덜한다. 그런 때 금붕어는 사람이 건드려야만 마지못해 도망가듯 몸을 움직인다. 그걸 보고 낚시터 붕어가 새벽에 잘 잡히는 이유 내지는 겨울에 낚시가 잘 안 되는 연유를 터득하게 됐다.
봄이 왔다지만 수온이 차면 아직 붕어 낚시는 물 건너 간 일이 된다. 어서 따뜻한 봄날이 와서 저수지의 수온이 높아진 어느 하루 주변 경관도 감상하고 상쾌한 공기도 마시며 맛있는 도시락도 가족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운 낚시를 가볼 날이 와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