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란 장날 김장 고추를 사러갔는데...

by 이용분 posted Jan 21, 201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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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란 장날.                               청초 이용분   (7회)

    오늘은 모란 장날이다.

    ​남편과 함께 올 겨울 김장에 쓸 고추를 사기 위해 가벼운 손수레를 끌고전철 모란 역에
    내려서 시장 쪽으로 가는 에스카레이타를 타고 올라갔다.벌써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잔뜩
    사가지고. ​돌아가는 이, 우리처럼 시장을 향해서 가는 이, 무언가를 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
    길가에 앉아 좋은 자리를 더 차지하기 위해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좀 더 비키라 자리다툼을
    하는 장삿꾼.​ 보드불럭 바닥에 천 원짜리 지전을 쫙 붙여놓고 `수재의연금을 냅 시다`
    하고 일렬종대로 늘어서서 소리치는 사람들. 나는 왜 돈을 땅바닥에 붙여 놨는지.
    ​이유를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고...

    ​이런 걸 이렇게 내라는 뜻이겠지? 제가끔 자기의 물건을 팔려고, 또 사려고 분주한 게
    당장에 혼이 쏙 빠진다.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남편은 꽃구경도 아주 좋아하지만 같이 온
    나와는 아무상관 없는 사람처럼 무엇이든 구경하기를 무척 좋아한다. 호기심 충만 이시다.

    "​오늘만은 어서 원래의 목적을  잘 합시다" 하면서 반 강제로 팔을 잡아끌고는 김장용
    고추를 사기 위해 고추전으로 갔다.​​ 이곳에 오면 그는 어영부영 꽃구경 삼매에 빠져서
    자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 장터는 고추가 그리 싸지는 않지만
  • 달기도 하면서 맵기도 알맞은 좋은걸골라 살 수 있다.

    고추는 매운맛뿐만 아니라 김치를 아주 맛있게 하는 성분도 있다.분당으로 이사 온 후로는
    좋은 고추를 골라 사기위해 꼭 이곳에서 사곤 한다.고추를 파는 장터엔 수도 없이 세워놓은
    샛빨간 색의 파라솔 아래에서는 제가끔 흥정들이 한창이다. 빨간색 파라솔을 씌우는 이유는
    고추가 빨갛게 잘 익고 잘 말려 좋은 것처럼 보이라고 그렇게 한단다.
    ​(마치 육고간의 빨간 조명이 진열된 소고기가 신선해 보이라고 그러는 것처럼.)

    ​올해의 고추는 느닷없는 늦장마와 많은 비 피해로 잘 마르지도 않고 상품(上品)이 없어 보인다.
    ​일 년간 먹을 만큼 많은 양을 사야 되니까 아무래도 좀 나은걸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다가 잠시 발을 멈추고는 우연히 어떤 아주머니가 파는 근처에 서서 초점 없이 무심하게
    고추를 쳐다보면서 골라서 살일이 난감하여,"올 해에는 좋은 고추가 정말 없네..."

    ​나 혼자 낮은 소리로 혼잣말을 하였는데 어느새 알아듣고는 그 아주머니는 갑자기 자기가
    파는 고추를 대여섯 개 집어 들더니 길바닥에 윷가락 던지듯 내 던지면서

    ​"아니 이렇게 좋은 고추를 안 좋다하면 어떤 고추를 살려고 하슈?"하고 다분히 시비조로
    덤빈다.(고추가 영 안 팔리는 모양이지. 저리 난리니...)하고 순간 생각하면서도
    ​`에그 누가 손님한테 저리 하누? 사나워서 살려다가도 못 사겠다.`속마음으로 생각하고는
    나는 아연 실색을 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한참을 더 돌아다니다가 다른 한곳에 들러 좀 순해 보이고, ​말씨도 좀 어늘해 보이는 한
  • 아주머니의 물건이 좀 잘 마르기도 했고 가격도 그냥 적당하다,
    자기가 옥상에서 직접 말렸다 나 어쨌대나. 햇볕에 말린 고추라는 뜻이다.믿거나 말거나지만, ​믿기로 하고 ( 환경이 사나우니 나도 그만 유하던 마음이이리 되었다)

    ​물건이 그냥 괜찮기도 하지만 아주머니도 순해 보여서... 흥정이 잘 되어서 사기로 마음을 먹고
    ​"그럼 이 걸로 담아 주세요." 하고 말했더니 어디론가 향해 누구인가를 부른다.그 녀의 남편
    인듯한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바람개비처럼 기계적으로 잽싸게 고추를
    자루에 주워 담더니 담은 자루의 피(皮) 무게만큼도 더 안 주려고.
    (원래 자루 무게만큼은 더 주게 되어있고 고추는 가벼워서 제법 그 양이 많다)

    (순한 그 아주머니를 보고 샀더니만...) 불시에 안면을 바꾸고 어찌 사나움을 떨던지...
    ​갑자기 놀란 가슴. 유해보이는 자기 마누라를 앞세우고는 뒤엔 또 저런 사나운 복병이 숨어 있다니...​( 미인계로구나...) (허기사 저렇게 짝이 맞아야 험한 이 세상 살아 나갈 수 있겠지)
    생각을 하면서도 난 씁쓰름해진 입맛을 다시며 얼른 고추 값을 치르고 돌아왔다.
    ​돈을 잘 쓴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이 세상을 잘 살아 간다는 것 자체가 더욱 쉬운 일은
    아니고 참 힘든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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