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건축가들과 정오 한때

by 캘빈쿠 posted May 22, 202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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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건축가들과 정오 한때

 

구 자 문

며칠전에 제자들의 점심식사 초대를 받아 자명리에 다녀왔다. 이때가 스승의 날 즈음이기도 하고 같이 만난 3명의 제자들 중 두명이 건축사사무실을 공동으로 열게 되어 축하 겸 다녀온 것이었다. 새로운 사무실이 지곡로에 위치하여 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고, 가고자 하는 식당과 커피숍 위치가 연일읍 자명리로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한지 10여년이 되는데, 아직도 잊지 않고 매년 필자를 찾아주는 것도 고맙지만,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졸업 후 서울 등지로 떠나는데 반하여 이들은 포항에 자리 잡았다.

 

이곳 효자동과 자명리는 인접해 있으면서 필자가 가끔이나마 드나들던 포항시청 및 포스텍 건물들과 가까이 있어 당연히 지나쳐가던 곳이었다. 과거 순환도로가 생기기 전 필자의 직장이 있는 흥해읍 남송리에서 시청 가는 길은 환호동을 거치고 복잡한 도심을 지나는 7번 국도를 이용하거나, 흥해 쪽으로 빠져나가 당시 개설된 28번 외곽도로를 타고 자명리에서 내려 좁은 길을 운전해가서 다시 7번 국도를 거꾸로 타고 포항시청에도 가고 포스텍에도 갈 수 있었다. 요즈음은 반 은퇴상태인 필자로서는 이러한 기관들에 자주 들릴 일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동네 지인들을 따라 이곳저곳 가다 보면 자명리에도 꽤 가게 되는데, 대부분 산 기슭에 신축 중인 집들을 구경하거나, 그 주변에 많이 생긴 커피숍에 들르거나, 칼국수를 먹기 위해 들를 기회가 생기곤 했다.

 

제자들 둘은 포항이 고향이기는 하지만, 우수한 학업성적을 지녔음에도 서울로 가 취직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포항의 건축설계사무소에 직장을 얻어 경력을 쌓고, 건축사 면허시험을 비교적 짧은 기간에 패스하고 다른 유명 사무소에서 다년간 파트너로 일하다가 이번에 독립하게 된 것이다. 좋은 주거지역이자 학교 인근에 자리 잡고 교통도 편리한데, 사무실은 그리 크지 않은 빌라 스타일의 아파트 상가 1층에 자리 잡았다. 내부 페인트칠도 직접 해서인지 벽면의 붓자국이 선명한데, 그러함이 오히려 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아담한 사무실이었다. 남녀 직원들이 의외로 여럿이라 물어보니, 인테리어를 하시는 분들과 함께 쓰는 공간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잠시 일 보러 나간 2살 언니인 파트너 M이 돌아올 때까지 H와 얼음물을 마시며 환담을 했다. 이날 함께 만난 HJH와 동기로서 졸업한지 10여년만에 포항에 직장을 잡아 서울에서 내려온 터라 이날 함께 자리를 하게 된 것이다. 잠시 후 우리는 자명리에 위치한 식당으로 갔다. 그곳은 과거에 유명한 한식집이었는데, 주인이 바뀌고 이름도 바뀌고 좀 더 대중적인 집으로 변모된 것 같았으나 전반적인 건물의 형태며 음식 맛이 예전과 비슷한 것 같았다. 미리 시킨 탓인지 곧바로 음식을 들 수 있었는데, 갈비찜, 떡갈비, 육회, 잡채, 튀김, 샐러드 등으로 푸짐했고 마지막으로 작은 그릇의 맛좋은 칼국수로 식사로 대신했다.

 

그후 인근 산기슭에 지어진 한 커피숍에 갔는데, 밖에서 볼 때는 높은 콘크리트 성벽구조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2층 건물이고 전면 유리창 너머로 공중 정원이 있고 그 너머 골짜기 아래로 전망이 좋았다. 다른 편으로는 좁다란 마당 정원이 있고 건물 자체가 담장을 이루고 있었다. 참 멋진 커피숍인데, 이게 집이라면 좋을 것 같다 했더니 제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동의한다. 꿈 같은 집이 될 거라고... 창밖으로 보이는 너비가 4~5미터는 되어 보이는 테라스 정원이 사막 모래 위에 풀과 꽃나무들이 피어난 형태라서 색다름을 준다. 2층으로 올라가니 그곳 양측 창밖으로도 폭 1미터 남짓의 작은 테라스 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곳에 남녀 화장실도 있었다.

 

좀 외진 것 같아도 이 카페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지곡동 주택단지와 연결되는 길이 인근에 있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도 알음알음 찾는다고 한다. 커피와 주스 등을 마시며 과거 10여년 전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아직도 이들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난다. 이들도 내가 강의하던 주제들이며 제스처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주제가 청도 소싸움이야기도 하고, 중명리 M네 집 인근 카페의 미술전시회 이야기도 하고, 과거 고구려-백제-신라이야기에 백제계냐 흉노계냐인종학적인 이야기로 하고, 작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중러관계등으로 이야기가 흐르기도 했다.

 

다시 차를 몰아 지곡동으로 연결되는 터널 길로 방향을 트는데, 몇 번왔던 칼국수집을 지나치게 되어, ‘몇 번 왔었다언급을 하니 저것이 H가 설계감리한 거예요한다. 우리는 터널을 지나 포스텍 교수아파트, 생명공학동 건물 등을 지나 사무실 앞으로 왔고, 거기서 작별하고 주차해 두었던 내 차를 몰아 흥해읍 남송리 내 직장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전만 해도 아침저녁 싸늘한 기운과 낮이라도 이제 여름이 오려나느낄 정도더니 요사이 며칠은 기온이 30도에 도달할 정도로 더웠다. 하지만 주변의 풍경들은 푸르름으로 산뜻하다. 지금 국내외 불황으로 건축경기 및 주택경기가 좋지 않은데, 이런 때 제자들이 과감하게 사무실 독립을 하게 되어, 걱정이 되면서도 둘이 씩씩한 모습을 보면서 잘 해나가겠지 믿고도 있으며 그러길 기원하고 있다.

 

2023년 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