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인생은 산울림

by 이용분 posted Oct 10, 202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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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산울림'          청초 이용분  (7회)

 

우리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한껏 기분이 상승하면 종종 두 손바닥을 펴서 입에 대고건너편 산 골자기를

향해 목청 것 큰 소리로 '야호'하고 포효를 한다.그러면 그 쪽에서도 누가 대답을 하듯 '야호' 하는 소리가

산울림으로 되돌아온다.또 다시 이번에는 "사랑 해" 하면 그 쪽에서도 '사랑 해' 하고 되돌아 온다.사람의

일상사는 산울림의 연속이다. 

 

내가 상대방을 기분 좋게 대하면 상대방도 나를 기분 좋게 대 한다. 내가 심사가 삐딱하면 우선 상대방도

올바로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서 기분은 항상 좋게 가지려 노력을 해야 한다. ‘옛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다. 내가 나를 위해서도 기분을 항상 좋게 가져야만 건강에도 좋고 기분 좋은

말이 제절로 나온다. 

 

말하기 전에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잠시 생각을 하고 말을 하게 되면 절대 이상한 소리를

할 수가 없다. 경솔하게 아무 생각 없이 내 뱉은 한마디 말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인생행로도 크게 망치는 수가 가끔 있다. 자기가 나가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대접을 받느냐는 자기가 할

나름이다.

 

말속에 그 사람의 됨됨이가 담겨있다. 말을 한 본인은 새까맣게 잊어 버렸는데 서운한 말을 들은 상대는

그 한마디 말이 평생 잊혀 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 수가있다.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간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사람은 신과 짐승과의 중간 관계라고 한다. 잘 살면 신의 경지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잘못

살면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을 듣는다. 무릇 사람들은 비록 신의 경지에는 못이르더라도 사람으로서 할수

있는 도리를 다 하려고 노력을 하게 마련이다.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슈바이처라 일커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와 콜레라,심하면 한센병으로 죽어

가는 그곳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함께 머물며 헌신 봉사하기를 택 했다. 48세라는 젊은 나이에 뜻하던 

'사랑과 봉사'라는 한창 타 오르는큰 불꽃을 미처 다 태우지 못한 채 암으로 선종(善終)한다. 이런 분을

향해 신의 경지에 간 분이라 일컬어야 되지 않을까. 

 

반대로 오다가다 사람으로서 하면 안되는 짓을 저질러서 짐승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아주 큰 재산가가 말년에 거액의 사재를 유명 대학에 발전 기금을 투척하는 걸보면서 그 깊은 뜻에

감동을 받게도 된다. 그러나 가난한 노인들이 평생 좋은 걸 먹도 입어 보지도 못하고 근근히 푼돈으로 모아

놓은 수월찮은 돈을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쾌척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 돈을 모으려고 평생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손톱 끝이 달토록 일을 하며 한 겨울에도 따뜻하게 방에

불 한번 지펴보지도 못하고 산 노인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의 목적은 노후 자금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모두 이를 위해 보내 버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다 산 별것 아닌 내

인생 말년을 위해쓰느니 좀 더 보람찬 일을 해 보고자 하는 마지막 염원이 이렇게 고매한 희생정신으로

승화한 것이리라.

 

이번 겨울 유례가 드문 강추위를 지내는 동안 동사를 한 노인들이 있음을 T.V.를 통해서 본다. 빨래를

널려고 마당에 나갔다가 쓸어 졌는데 방에 병이 든 남편도 이를 어쩌지 못하여 미쳐 손길이 안 닿아

그대로 얼어 죽었다 한다. 이런 일을 당한 그 노인의 아들딸들은 마음이 어떠했을까...

 

요즈음은 노소간 서로의 사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이렇게 건강이 안좋아도 따로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부부가 서로 다 늙은 처지에 거둘 젊은이가 곁에 없으니 어찌할까. 막막하고 가엽기

까지 하다. 문제는 젊은이들도 이를 피하지만 늙은 부모도 이를 끝내 사양한다. 서로 살을 비비대며

당연히 죽는 날까지 부모를 보살피던 옛 인심은 어디로 가고 이리 세상이 변해 버렸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래 전 우리가 마당이 있는 집에 살적에는 그 당시 세탁기도 없던 시절이라 탈수를 못하여 풀을 먹인

이불 호청의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빨래 줄에 널면 이불 호청에서 떨어지던 물이 그냥 얼어 고드

름이 되곤 하였다. 미쳐 마르지 않은 빨래를 밤에 걷어 들이면 잘못하여 빨래가 반 토막으로 뚝하고 불어

지기도 하던 추억이 새롭다. 그 시절에는 어찌 내가 그리 힘이 좋았을까. 나도 이 나이에는 마당의 빨랫

줄에 더이상 세탁물을 널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강아지를 사람 이상으로 보살피고 좋은 사료에 간식까지 먹여 키우고 있다.사람과 함께 똑 같은

공간에 살면서 아프면 즉시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도 시키고 수술도 하며 치료를 해 준다. 어찌 보면 사람

팔자가 개만도 못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한번은 T.V에서 안내 견을 하던 개가 이제는 늙어서 죽어 가는

데 그 주인이 보살피는 정성이란 보는 이가 입안에 침이 바짝 마르게 한다. 고름이 나오는 상처를 소독해

주고 닦고 약을 발라 주고 닭죽을 폭 고아서 수저로 입에 넣어 주고 흘리는 걸 닦아주고 어느 효부가 그 보다

더 잘 하랴싶게 그 지극하게 보살피는 정경이란...

 

그냥 예사롭게 흥미꺼리로 보면 좋으련만 요새 같은 삼한 인심에 과연 늙어서 죽어가는 자기 부모라도

저리 보살필까... 하는 의구심이 이는 것은 내가 좀 삐뚤어진 시각을 가져서일까. 허기야 2차 대전 당시에

전쟁터에서 사람이 못하는 일을 대신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고 산화한 세퍼트를 전사한 군인의 예에 준해

정중한 장례를 지내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념동상까지 세워주며 기리는 걸 보는 수가 있다. 또는 충견을

그리 하는 수도 종종 있긴 했다.

 

먼저의 안내견도 어리고 건강하던 한창 때에 온갖 개의 본능을 억제 받은 채 고된 훈련을 거듭 받은 후

개의 천성인 충직성 그대로의 충성을 다하여 사람에게 봉사한그 정리로 사람들이 그렇게 정성을 다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짐승이거나 모두 제 할 탓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기도 한다.

 

이 세상에 그냥 공짜라는 건 없다. 이 세상의 흐름은 자기가 사랑을 뿌린 만큼의 사랑을 되돌려 받는 그런

순리가 은연중 이어지는 것 같다. '악한 끝은 없어도 착한 끝은 반드시 있다' 라고 말한다. 一日一善 하루

하루 착하고 선한 씨를 먼저 가까운 이웃에 뿌리며 사랑을 끼치고 가꾸면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