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이야기

by 캘빈쿠 posted Sep 09, 201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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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 이야기

                                                                                                                                                          구 자 문

‘기청산농원’에서 구해온 무궁화묘목을 좀 더 큰 화분에 옮겨 심고 햇빛 잘 드는 발코니 창가 여러 화분들 사이에 놓아두었다.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이른 아침, 흰꽃 한송이 무궁화가 활짝 피어났는데, 연분홍 및 도는 흰색 꽃잎이 초록색 줄기와 잎사귀 사이에서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었다. 아직 밝은 아침도 아닌데 몇 장 사진을 찍어 서울이며 미국의 식구들에게 보내며 약간 호들갑을 떨었다. 다음날 그꽃은 지고 그 옆에 또 하나 꽃이 피어났다. 오므라든 꽃을 손으로 만지니 뚝 아래로 떨어진다. 다음날이 되니 또 다른 새꽃 한송이가 피어더니, 그 후부터 한두개가 매일 피고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조그만 화분에 심겨진 무궁화나무에 언제쯤 꽃이 필지 예측을 못했었는데, 우리 집 발코니에 자리 잡은지 2-3주째부터 무궁화가 피고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무궁화의 특징을 겨울 빼고 온계절 내내 피고지기를 반복하는 끈질김에 두고 있다. 한번에 확 피어 화려함을 뽐내다가 곧 바람에 날리는 벚꽃과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많은 이들이 벚꽃을 즐긴다. 봄이면 1-2주일 이상 경주 보문단지 만이 아니라 우리 학교 캠퍼스에도 벚꽃이 흰눈 같은 장관을 이룬다.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으며 벛꽃을 즐긴다. 이를 시비할 생각은 없다. 자연을 즐김이 무슨 흠이 되랴.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뼈아프게 겪으셨던 필자의 선친께서는 벚꽃을 그리 좋아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왜 가로수로 느티나무를 심지 벚나무를 심느냐?’고 말씀하시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무궁화는 아욱목 아욱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다. 어릴 때부터 교정에서나 집 담장에서 자주 대하는 꽃인데, 한동안은 무궁화를 못보고 지낸 것 같다. 포항에 이사 오고 필자의 직장인 캠퍼스 입구에 자그마한 무궁화동산이 생겨 아침저녁으로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며 출퇴근하고 있다. 학교에서 차로 10분거리인 신도시에 사는 필자는 가끔 인근의 나지막한 뒷산에 산보를 가는데, 산기슭 낡은 집 마당에 무궁화 모양의 진분홍 꽃을 피우는 일년생 접시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다른 이들도 이 접시꽃이 무궁화와 너무 닮았다 생각할 것 같다.

 

무궁화는 한자어로는 근화(槿花) 혹은 목근화(木槿花)라고 한다. 학명은 Hibiscus Syriacus(하이비스커스 시리아커스). 무궁화의 꽃말은 그 이름처럼 무궁함, 즉 다함이 없음. 그런데 꽃말과는 달리 꽃 자체는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는 꽃(朝開暮落花)으로 단명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했다는데, 은은한 색깔의 꽃이 일년에 100일 이상 끝없이 피고 져서 다함이 없으니 '우리 민족의 기상을 닮았다.'고 일컬어진다. 이는 전통적으로 백성들과 가까운 꽃이었으며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데에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고 한다. 보통 국화(國花)는 기존 지배세력의 상징에서 채택되는 일이 보통인데, 무궁화는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꽃이 국화로 지정된 사례라서 외국에서는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여름내 이어 피기를 계속하는 무궁화의 특성이 끊임없는 외침으로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역사를 이어온 우리 한국민족과 비슷하다 하여 이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 된 것이다. 그러나 ‘무궁화를 국화로 한다’라는 법률이나 조례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나라꽃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00년경 애국가 가사가 만들어질 때 후렴으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 들어가면서부터라고 한다. 그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질곡의 세기를 살아온 우리 한국인들에게 무궁화는 ‘애국의 상징’이자 ‘독립된 나라·부강한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가슴 벅찬 소망’이기도 했었다.

 

기원전 4세기경 중국에서 쓰여진 ‘산해경(山海經)’에 무궁화로 짐작되는 ‘훈화초(薰華草)’가 군자의 나라에 자란다고 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도 ‘근화지향(槿花之鄕)’이란 말이 들어 있다. ‘산해경’의 기록 당시는 삼한시대이고, 최치원이 국서를 보낸 시기도 1천년이 넘었으므로,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에 무궁화가 자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 국가를 상징하는 꽃으로 무궁화가 선택되었다. 국기봉이 무궁화 봉오리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정부·국회포장이 무궁화도안으로 채택되었고, 1963년부터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한 쌍의 봉황새무늬를 대통령휘장으로 쓰고 있다.

 

무궁화는 배달계, 백단심계, 적단심계, 청단심계, 자단심계, 아사달계 총 6가지 색과 모양 다른 종류가 있는데, 필자 발코니의 무궁화는 ‘아사달계 백근잎’이다. 생명력이 강해서 어지간히 척박한 환경에도 적응하며 번식도 다양하게 시킬 수 있어서 마당 한구석에서도, 담장 울타리나무로서도, 화분에 심어놓아도 잘 자라 꽃을 피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도 우리 무궁화 비슷한 ‘하이비스커스’로 불리는 꽃들이 있는데, 하와이의 주화(洲花)이기도 하다. 대개 진노랑, 진홍, 혹은 흰색 꽃들이 많아서 은은한 빛깔의 무궁화와 좀 달라 보이기는 하나 같은 종류일 것이다. 빨간 꽃잎을 말려 차로 만들어 파는데, 물에 타면 진한 핑크빛이 우러나며 약간 신맛이 난다. 우리 무궁화도 무궁화차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무궁화의 꽃잎, 잎, 씨 모두가 먹거리로서 우리 조상들은 무궁화잎을 나물로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었고, 꽃잎차는 혈액순환계 관련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좋고, 꽃잎으로 만든 술은 피로회복과 간강증진에 좋아 많이들 애용했다고 한다. 나무껍질은 질겨서 어릴 때 팽이채를 만들기도 했는데 지금은 고급제지를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