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생각 나는 일

by 이용분 posted May 04, 2019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봄이 되면 생각 나는 일       청초  이용분(7회)

    겨우내 얼었던 시냇물의 어름이 다 녹아내리고 우여곡절 끝에 어느새 봄은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뜨락의 산수유나무가 수집은 듯 노란 꽃 봉우리를 열었다. 한옆의 모란도 간난 아기의 손가락 같이 생긴 어린잎이 두 마디는 넘게 자라났다. 그래도 옷깃을 스치는 봄바람은 녹녹하지를 않고 사이사이 칼바람이 숨어 있다.

       탄천 변에는 누렇게 시든 지난해의 묵은 잡풀 속에 겨우 돋아나는 어린 쑥을 뜯느라 벌써 여인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그러나 자세히 들려다 보니 아직 미미한 새싹이라 손만 바쁘지 소쿠리에 들어가는 게 별로 없다. 어서 봄비라도 두어번 골고루 내려야만 그런대로 쑥다운 쑥이 뜯어질 것 같다.

    쑥은 여러 가지 약효를 지니고 있다는데 소화 기능에도 좋고 부인병에도 특효가 있어서 어디를 가나 잘 자라는 이 흔한 쑥 때문에 환자들이 찾아 오지 않아서 한약방들이 잘 안 된다고 울상을 하게 한다고 한다. 의약이 별로 없던 시절 옛 어른들은 야생초에서 약 효능이 있는 나물들을 찾아서 그를 먹고 간단한 병을 치료했던 듯하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는 봄이 되면 씀바귀가 입맛도 돋우고 위장병에 특효라고 하면서 실뿌리 노란 나물을 고추장에 무쳐서 자시는걸 종종 본 기억이 난다. 우연히 동리 채소가게에서 이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조금 사다가 잘 씼어서 막장에 무쳐서 먹어 보니 정말 옛날 긴계랍(키니네)맛이 나면서 아주 쓰디쓰다.

    긴계랍은 아기들의 젖을 뗄때 엄마의 젖꼭지 주변에 발라 놓으면 그만 아기가 그 쓴맛에 질겁을 하고 젖을 안 먹게 되는 효과를 노린 약이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게 되니 예전에 할머니가 하셨듯이 씀바귀를 먹어 보게 되었다.

    과연 입맛이 도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위장에 좋다니까 몇 차례에 걸쳐서 사서 먹어 보았다. 봄도 되기 전 일찌감치 냉이국도 끓여 먹고 돗나물도 사먹어 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야생이 아니니 향이 없다. 나물들이 자생하는 곳을 안다면 소쿠리를 들고 캐러 가보고도 싶다. 요즈음은 이들 나물들은 거의 비닐하우스 속에서 키워서 출하되기 때문에 이것들 중에서 옛날의 자연산은 찾아보기 힘 든다.

    원래 예전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셨던 나의 할머니께서는 산모퉁이 아래에 있던 사택인 우리 집에 붙어 있는 텃밭 이외에 주변에 놀고 있는 야산의 돌멩이 들을 호미와 괭이로 골라내고 조금씩 개간을 하여 텃밭을 넓혀 갔다. 이를테면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이신 셈이다.

    그곳에 야채를 심기도 하고 콩팥도 심고 동부 콩도 심었다. 이른 봄날 요만 때면 감자의 씨눈이 붙은 쪽을 잘라서 시커먼 재를 묻혀서 고랑을 파서 조금 깊게 심고 집에서 키우던 몇 마리 닭의 거름으로 감자를 키웠다. 남은 감자를 된장국에 넣어 끓이면 이도 참으로 맛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요즈음처럼 비닐하우스가 없던 시절이라 제철이 아닌 감자도 아주 귀했었다.

    여름이면 매일 그 농작물을 가꾸느라 집안에 머물 틈이 없었는데 집에 들어 올 때 마다 흙을 묻혀 오신다고 이를 성가셔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 덕에 파나 배추 시금치 아욱 같은 야채는 사먹지 않고 자급자족을 하였고가을이면 콩이니 동부니 시골 농삿집 모양 풍성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체구도 자그마하셨던 할머니는 그 당시는 드물게 여든 일곱 해를 건강하게 사셨다. 손녀인 나와 한방에 기거하면서 동네에 다니는 어떤 아이보다 할머니의 손녀인 내가 인물이 제일 잘 났다고 기뻐하시며 무척 사랑을 하셨다. 말씀이 별로 없으시고 무덤덤하셨던 어머니와는 달리 할머니는 냉철하고 자상해서 나와는 이야기를 잘 나누셨다.

    할머니가 살아 오셨던 어린 시절 전봉준의 난 개화기에 일어난 일등 그리고 살면서 고생스럽던 일화 등 이야기들을 나를 상대해서 친구한테 말하듯이 세세히 이야기 해 주셨다. 내가 멀리 통학을 했던 학교생활이며 직장생활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말씀드리면 "젊어서 고생은 돈을 주고도 사느니라 "고 하며 항상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곤 하셨다.

    요 근래 위장이 안 좋아져서 갑자기 할머니가 자셨던 씀바귀 생각이 나서 먹어보며 그 옛날 생각에 젖어 보았다. 요새 세상이야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사먹을 수 있어서 편리하게는 되었지만 땅 한 뼘 없이 높은 아파트에서 흙을 안 묻히고 편하게 살게 된 요즈음은 아무리 옛날의 풍취를 경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               

                

                 
     
     
  •  
     

Articles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