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란...(왜 아무리 지어도 집이 모자라고 값이 내리지않는지?)

by 이용분 posted Apr 04, 201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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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살이란...(왜 아무리 지어도 집이 모자라고 값이 내리지 않는지?) 청초 이용분

 

  • 아직 이 곳에는 본격적인 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저 남녘 섬진강변에는 매화꽃이 봉오리를 열기 시작 하였다는 소식이 아직은 싸늘한 봄바람에 실려 간간히 전해 온다. 올해는 유난히 춥고 겨울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추위에 몸을 움추린 채 이제는 다시는 몸을 추스르지 못할 것 만 같이 두렵던 기분이 슬슬 풀리는 날씨와 더불어 기지개를 펴듯 어깨가 저절로 가벼워진다.지하에 있는 슈퍼에 무어라도 새로운 반찬거리라도 있으면 사기 위해 들렸다.

    ​겨우 내 농부들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상추 부추 시금치 아욱 등 오이에 보라색 가지까지 여름철에나 맛을 볼 수 있었던 가지각색 야채들이 선을 보인다. 그러나 기대하고 산 부추가 제 맛이 안 나고 냉이도 냉이 향기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내 옆에 머리카락이 반백이 넘게 희고 얼굴에는 여기저기 검버섯이 핀 할머니 한분도 반찬거리를 사러 오신 모양이다. 그런데 연세로 보아서 이제는 느긋이 며느리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될 것 같은 분인데 이것저것 고르는 품새가 어설프지가 않다. 나는 이 나이에도 살림하기가 버거울 때가 많은데 어찌 그 연세에 손수 장을 보실까...

    ​​“할머니 지금 연세가 몇이세요.? ^^” (나는 불현듯 호기심이 동해서 물었다,)
    그러나 빙긋이 웃을 뿐 답이 없으시다. 이것저것 반찬거리를 산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니 마침 그 할머니가 서서 눈빛으로 나를 반기는 듯이 처다 본다. 결국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금 연세가 몇이신데 아직 손수 시장을 보세요? 할머니, 비밀이세요? ^^”
    나는 좀 장난 끼 어린 웃음을 머금고 처다 보며 애교 있게 다시 물었다.
    "말하기가 창피해서요.”
    "한 팔십쯤 되셨어요?"
  • "그렇게 보여요? 나는 구십이 훨씬 넘었어요.^^"
    "이렇게 건강하게 사시는데 무엇이 챙피하세요? ^^”
    (어쩌면 저리 건강하고 용모와 행동이 말짱하실까 내심 놀래면서 나는 말을했다.)

    ​마침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쪽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묵은 김치가 맛이 없어서 치아가 안 좋아 햇무로 얄팍하게 썰어 풋마늘을 넣고 깍뚜기를 담그려 한단다.그 할머니는 며느리가 69세인데 S대 약대를 나와서 약국을 하다가 요즈음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래도 며느리가 자랑스러우신 모양이다. “훌륭한 며느리를 두셨군요.”
  • 딸 둘에 아들 하나 그런데 구십이 넘은 이 노인이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고 그의 며느리 네도 아들네를 따로 내어 놓고 독립을 해서 각각 살고 있단다.(이래서 지어도지어도 집이 모자라고 값이 내리지 않는 이유를 알 것 만 같다.)

    ​​보통 우리네가 일컫는 말 그대로 생전 안 늙을 것 같던 샛파란 며느리도 세월 가서 나이가 드니 시어머니가 되었겠구나 싶다. 살 동안에 며느리 시집살이나 몹씨 안 시켰을까. 결국 모든 게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데... 항상 젊을 것만 같았던 며느리도 늙어서 다시 시어머니가 되는 게 눈 깜짝할 사이구나 싶게 인생이 잠깐이다. 이처럼 언제부터인가 가족들이 철저히 해체 되어 겨울 날 내리는 눈 싸래기처럼 제 각각이 되어 버린 요즈음 세태에 대해서 나는 마음속으로 약간은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늙은 며느리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따로 산다고 말은 하지만 정말 인생의 말년이 이 보다는 좀 더 따뜻할 수는 없는 것일까.저 정도 나이에 이르면 좀 못 살더라도 자손들과 한 지붕 아래 오손 도손 모여 살았던 옛날의 가족제도가 아련한 향수처럼 그리워짐을 어쩔 수가 없다. 누구든지 자식을 힘들게 낳아서 애면글면 키우고 어렵게 가르칠 적에는 막연하게나마 힘이 없어질 노후에는 한 시름 잊고 그들에게 보호를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전혀 꿈을 꾸지 않았노라고 말한다면 조금은 가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좋아지고 복지 국가로 간다는 희망과 핑크빛 행복을 꿈꾸고들 있다. 하지만 가족이란 진정 고락을 함께 하는게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는 참 의미가 뭉개져 버린 청사진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래도 그 노인은 저만큼이라도 건강하기 망정이지 행여 병이라도 나면 결국은 누구의 신세를 지더라도 져야만 되는 게 또한 인생살이다. 그나마 힘이 있을 때 우리 자신은 미리 복을 많이 지어 놓아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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