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말하다

by 김진혁 posted Sep 28, 2018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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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말하다

나의 인생삼락은 건강, 친구, 삶의 의미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에서

“세상은 거대한 무대요, 인간은 잠시 등장했다 퇴장하는 배우일 뿐”이라는 삶의 깊이를 생각하게 하며 세상 보는 안목을 넓혀준다.

 

어느 누구도 세상에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로부터 보호할 수도 없다.

모두 건강한 몸으로 즐겁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의 묘미다.

 

인생에 문제가 없기를 바라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사건들을 어떻게 대처할지를 배우는 것이 지혜라고 본다.

세기의 철학자가 주는 행복의 조언,

“행복은 의미 있는 삶의 부산물이고 극히 주관적”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잊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추구를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하면서 행복을 두 종류로 구분했다.

 

헤도니아와 에우다이모니아다.

헤도니아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쾌락의 긍정적 감정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복권에 당첨될 때, 삼바 춤을 출 때 느끼는 감정으로 잠시 끓어오르다가 금방 식는다.

반면에 에우다이모나이는 오랫동안 빛을 내는 삶의 만족감이다.

감정과 이성 모두가 포함된 행복의 결과로 얻어진다.

헤도니아를 계속 느끼기 위해서는 짜릿한 흥분의 강도를 높여야 하는 ‘쾌락의 쳇바퀴’이지만

에우다이모나이는 삶을 꾸려가면서 어려움과 문제들을 잘 해결할 때 느끼는 보상의 행복감이다.

 

열린사회를 꿈꾸는 비판적 합리주의자 칼 포퍼는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은 문제해결이다” 문제가 없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해결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행복의 순간을 무조건 추구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배울 수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다.

삶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그대로 인정하라. 그것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면 행복은 이웃과 비교할 때 사라진다.

덴마크 실존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 로서 나 외에 다른 것에 책임을 돌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질투나 비교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 행복을 단념하는 행위다. 비교는 불만을 낳고 불만은 불행을 낳는다.”

 

중국 고대의 대철학자이자 사상가로 2천 년 동안 동아시아 인문주의의 원형을 이룬 공자는

'학이(學易)'편에서 군자의 삼락을 이야기한다.

 

첫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둘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셋째, 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공자가 죽고 나서 100년 정도 뒤에 태어난 유가의 대표적 사상가인 맹자도 인간의 즐거움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 군자에게 왕이 되어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즐거움에 해당되지 않고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부모구존 형제무고)

둘째,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셋째,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득천하영재 이교육지)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신흠의 인생삼락(人生三樂)은

첫 번째로, 문 닫으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두 번째로 문 열면 마음에 맞은 손님을 맞이하며,

세 번째로 문을 나서면 마음에 드는 산천경계를 찾아가는 것이라 했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인생삼락은

첫째, 어렸을 적 노닐던 곳에 어른이 되어 다시 오는 것,

둘째, 곤궁했을 때 지나온 곳을 성공하여 크게 된 후에 찾는 것,

세 번째는 홀로 외롭게 지나던 곳을 맘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찾는 것을 꼽았다.

 

선조들이 행복하기에 그리 많은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행복은 운명이 아니다.

비록 많은 유전적 요소들과 환경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행과 불행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타인의 결정을 버리고 자신을 제대로 대우하라’는 것에 달려 있다.

 

보통사람으로서 필자가 느끼는 인생삼락은 무엇일까?

 

첫째는 건강이다.

“가난한 거지가 부유한 왕자보다 낫다.”는 말처럼 건강을 빼놓고는 행복을 이야기할 수 없다. 여기서 건강이란 정신적 육체적 건강 모두를 포함한다.

 

둘째, 친구와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다.

철학자 키케르는 "우정을 나누면 행복이 더욱 빛나고 불행은 완화된다.”고 말했다. 때로는 친구간의 경쟁 성공을 위한 필수요소이지만 인간은 초사회적 존재로서 친구를 떠나서는 존재하기 힘들다.

진정한 친구는 숫자만능주의, 물질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삶의 의미이다.

삶의 의미란 실존의 목적과 의의(意義)를 다루는 철학적 의제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삶의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란 없다. 나의 불행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종의 노래>에서 ”운명의 힘으로는 영원한 끈을 짤 수 없다.” 인간은 더 높은 힘(전능자)의 아래에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변하고 그대로 머물지 못하는 인생의 수레바퀴인 것이다.

이런 원초적인 운명에서 운명의 장난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하다.

 

종교는 의미를 만들고 신앙인이 무신론자보다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안에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 Tony(12) 2018.09.28 02:49

    종교를 선택하지 않았어도 참 신앙인들 많아요. 우리나라에 그렇게도 절들 , 예배당들, 성당들 많은데 거기 나가는 신자들 중에 정말 신앙인들이 몇이나 될까요? 난 내가 사는곳에서 좀 떨어진 한안성당에 나가다가 그만 두고 내 집 가까운 성당엘 나갑니다. 한인성당에 나가면 특히 근래에 이민온 동료 신자들이 하도 골치아픈 언행들을 해대서 말예요. 심지어는 신부님에게 '내가 너보다 교릴 더 잘안다'고 대들지를 않나 사목회 회의중에 신부님에게 자동차 열쇠 꾸러미를 집어던져 얼굴에 상처가 나게 하질않나. 여기 와서 50년도 넘게 살았는데 이런 꼴 처음 보고는 기권했습니다.

    책을 읽는것에 대해서 이젠 나이 탓인가 책을 좀 읽고 있노라면 눈물이 질질 나려고 해서 한번에 몇페지씩 못 보지만 그래도 한달에 두, 세권씩은 계속 알고 싶은 책 읽고 있는데 어떤이는 인터넷이 있는데 왜 책같은것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요. 한말기에 들어온 불란서 신부가 한말 '조선에는 집집마다 책들이 많은걸 보니 많이 발달한 나라' 라고.

    건강? 옛희랍의 철학자, 현대 의학의 원조 히포크라테스는 'You are what you eat, all your medicine is in your food'이란 말을 했는데 참으로 그렇습니다. 거의 모두의 유전적인 요소가 건강을 지키는데 문제를 주기는 하지만 전의 생각과 같이 한사람의 건강은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이론은 이제는 그렇 지 않다고들 합니다. 약한 유전자를 가졌어도 그것을 미리 알고 식성이나, 생활습관을 바꾸어 살며 조심하면 건강을 유지할수 있다고 합니다. 건강은 의사가 지켜주는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키는 것입니다.

    행복? 그것은 자기한테 달렸다고 봅나다. 행복하려면 얼마든지 행복하고 비참하고 miserable하려면 그것도 스스로 그렇게 되는것 아니겠어요?
    미국같은 선진 국가가 세계에서 처방약 소비를 제일 많이 한답니다. 그중에 한가지 약이 anti depressant같은것, 또한기지는 너무 먹거나 마시면
    좋지않으것들을 과대소비 해서 그 결과로 오는 증상들에 대한 약, 스트레스로 오는 고혈압, 심장 질환에 대한 약, 암... 이런것 말입니다. 난 이곳에 정착하기전에 하던일때문에 세계여러 나라를 돌아 다녀 보았고 생전에 알지도 못하던 그런 곳에도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더 friendly하고 행복해 보이는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가 내가 사는 처지가 어떻든 'could be worse'란 말이 입버릇 처럼 되고 말은지가 오래 됐지요. 아이들한테도 무슨 일이 있을때면 'could be worse' 'there is another day tomorrow'. 라고 늘 말합니다.

    난 늘 고향이 많이 그립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고향은 옛날, 못살던때,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던때를 그리워히지 지금의 고향은 그립지 않아요
    왜 사람들이 이리 변했을까요? 우리나라야 말로 정말로 작기는 해도 금수 강산인데 그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왜요? humanity, civility는 자꾸 말라 들어가고 돈많은 부자들은 법 위에서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 인권도 누리기 힘든 사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역사에만 남아있는 말. 선진국? 무슨 선진국? Global 시대? 우물안 개구리식 Global 시대? 'blew off my mind, now my flame suit is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