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유래 100가지..(81~100)
81. 재미 어떤 이야기나 일이 감칠맛이 나고 즐거운 기분이 날 때 그것을 표현하는 말로 바뀌었다. 하는 일이 재미 있으면 사는 맛이 한결 더한 법이지요. ‘저생’의 소리가 변해서 ‘저승’이 되었다. ‘이 세상’을 가리키는 ‘이승’ 역시도 같은 이치로 이루어진 말이다. 오늘날 이승이나 저승은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오히려 아주 일반적으로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치자 물을 들인 마포로 짓는다 하나….≪최명희, 혼불≫ 조를 추수하면 그것을 비벼서 좁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조는 좀처럼 비벼지지는 않고 힘만 든다. 그래서 조를 추수하다 보면 생각대로 마음먹은 만큼 추수가 되지 않으므로 조급해지고 초조해지기 쉽다. 기다릴 줄 믿었던 최치수는 의외로 냉담했다.≪박경리, 토지≫ ‘종(從)’은 거역하지 않고 말을 들어 따른다는 뜻이요, ‘용(容)은 떠들지 않고 가만히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고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행동이나 성격이 수선스럽지 않고 얌전하다는 본래의 뜻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잠잠하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행실이나 행동이 깔끔하고 얌전하다. 외모가 맑고 맵시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말이 ‘변변치 못하다’는 겸양의 뜻으로 쓰이고 있어 그 의미가 걸맞는 말은 아니다. 흔히 회갑연(回甲宴)이나 축하연(祝賀宴) 같은 자리를 마련하면서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였사오니 부디 오셔서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인사말을 하는데 자리를 마련하는 당사자가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예시문 : 조촐하게 차려 입고 나온 그녀의 모습이 멋있다. 개자추(介子推)는 진나라 문공이 숨어 지낼 때 그에게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면서까지 그를 받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후에 왕위에 오르게 된 문공이 개자추를 잊고 그를 부르지 않자 이에 비관한 개자추는 산 속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나무 한 그루를 끌어안고 타 죽었다. 그때서야 후회한 문공이 개자추를 끌어안고 죽은 나무를 베어 그것으로 나막신을 만들어 신고는 ‘족하(足下)! 족하!’ 하고 애달프게 불렀다. 문공 자신의 사람됨이 개자추의 발 아래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생겨난 족하(足下)라는 호칭은 그 후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천자 족하’, ‘대왕 족하’ 등으로 임금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다가 그 이후에는 임금의 발 아래에서 일을 보는 사관(史官)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더 후대로 내려오면서 같은 나이 또래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형제자매가 낳은 아들, 딸들을 가리키는 친족 호칭으로 쓰인다. 예시문 : 조카딸의 남편을 조카사위라고 부르던가? 그 뜻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접미사이다. ‘주변머리’는 ‘주변’의 속된 표현으로서, 일을 이끌어 가거나 처리하는 데 융통성을 발휘하는 재간을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보통 변통하는 재주나 융통성이 없어 일을 답답하게 처리할 때 ‘주변머리가 없다’는 식의 부정적인 표현으로 널리 쓰인다. 비슷한 말로는 ‘수완(手腕)’이 있다. 가운데 뿔이 났다는 건 다들 고른 가운데 갑자기 하나가 툭 튀어나와 눈에 띄는 것을 말한다. 어떤 일에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주제넘게 나서는 것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원 둘레를 빙 돌아 맞은편에 닿는 것이 아니라 원의 한가운데 지름을 질러가는 길을 지름길이라 한다. 어떤 목적지까지 가장 가깝게 통하는 길을 말하며 한자로는 첩경(捷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진이 빠진다는 것은 곧 거의 죽을 정도로 기력이나 힘이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일에 지쳤거나 맥을 못 출 정도로 기운이 빠진 상태, 싫증이 나거나 실망해서 혹은 지쳐서 더 이상 일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리는 현상을 말한다. 겁나거나 징그러운 것을 봤을 때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움츠러들며 떨리는 현상이나 어떤 일에 싫증이 나서 지긋지긋해진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다른 일에 손을 댈 수 있는 겨를을 가리킨다. 원래는 물건 사이에 벌어진 틈을 이르던 말로 바쁜 일 사이에 낼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님을 뵈러 한 번 다녀와야 할텐데 도대체 짬이 나야 말이지.
사람이나 푸성귀가 깨끗하고 싱싱하게 잘 자란 것이나, 일을 깔끔하고 민첩하게 처리하는 것 등을 모두 ‘칠칠하다’고 한다. ‘칠칠맞다’고 하는데 그것은 ‘칠칠치 않다’, ‘칠칠치 못하다’라고 써야 한다. 그 사람은 무슨 일을 시켜도 칠칠하게 해내니 믿고 맡길 수가 있다구. 흔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흔적조차 없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 집이 있었는지 어떤 구조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터의 무늬(자리)가 없다는 말은 곧 근거가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터무니를 갖추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유진오, 구름 위의 만상≫ ‘통을 탈탈 털어서’의 준말이 ‘통털어’라고 생각한 데서 온 결과인 듯싶다. 그러나 표준말은 엄연하게 ‘통틀어’이다. ‘어떤 물건이나 사물을 있는 대로 모두 합해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워낙 이편에 실수가 없으니까 무슨 트집을 잡을 수 있습니까.≪홍명희, 임꺽정≫ 떡살이나 다식판에 박아서 일정한 모양을 만들었다. 이렇게 다식판에 박아서 만들면 그 모양이 똑같게 나오기 때문에 ‘판에 박은 듯하다’는 말이 나왔다. 여럿이 한 판에 박아낸 것처럼 그 모양이 똑같은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그 굿을 청한 사람에게 꾸지람을 해대는 말을 가리킨다. 그것을 풀어달라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무속에서 쓰는 특수 용어가 일상 생활에서 쓰이기 시작하면서 마음 속에 품은 불평이나 생각을 길게 늘어놓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예시문 : 허어 이 사람, 그렇게 비감해할 건 없네. 그건 그저 이 앓고 있는 늙은것의 푸념에 지나지 않는 거고…….≪안수길, 북간도≫ 예전에 거지들이 손을 내밀며 ‘한 푼만 줍쇼!’ 하곤 했다 . ‘무일푼’의 푼도 곧 한 냥이 채 못 되는 정도의 아주 작은 ‘돈’을 가리키는 말이다. 많지 않은 몇 푼의 돈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참은 한 역참과 다음 역참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이었다가 나중에는 한 역참에서 다음 역참까지 다다를 정도의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바뀌었다. 지금은 ‘상당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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