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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얼음을 입에 물고 다녔던 거 같은데,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이 왔다.
겨울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집에만 있을 아웃도어인이 아니다.
아름다운 서해의 캘리포니아, 태안을 다녀왔다.



태안은 힘차게 뛰는 맥박처럼 기운 넘치는 도시다.
마치 청춘이고, 피끓는 20대의 느낌.
청춘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게 백패킹과 레저 활동이다.
앉은키보다 높은 배낭에 짐을 가득 싣고 홀연히 떠난다.
아무데나 짐을 부려놓고 누우면 그곳이 곧 침대가 되는 게 젊음의 특권이다.
인생에서 모험이 허락되는 시간도 이때다.
스릴 넘치는 경비행기, ATV 위에 올라 살아있음을 마음껏 누려보자.
일몰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서핑보드에 누워 지나간 시간 필름을 되돌려 보았다.


여섬이 덩그러니 남아 바다를 장식한다.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은 성장통이다. 태안도 뼈아픈 성장통을 겪었다.
2007년 태안 바다는 기름 유출 사고로 아픔과 감동의 눈물 바다였다.
그 바다를 구하기 위한 사람들의 손길이 모여 길이 생겼다.
바다와 삼림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솔향기길을 걸었다.

7년 전 이맘때였다.
서해 한가운데서 유조선이 충돌하면서 새까만 원유가 새어나왔다.
검은 기름이 순식간에 재앙이 돼 온 바다를 덮었다.
바닷속 생물은 갑자기 어두컴컴하고 숨도 쉴 수 없는 관 속에 갇혔다.
죽어가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추운 바닷바람과 매스꺼운 기름 냄새도 마다치 않고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그 발걸음이 하나 둘 모아져 길이 생겼다.
기름 냄새가 사라진 이곳, 솔 향기와 싱그러운 바다내음 가득해진 솔향기길이다.

자원봉사자들의 고운 마음이 모여 길이 됐다


바다를 품고 있는 태안은 걷기에 좋은 해안 길이 잘 마련돼 있다.
솔 내음을 맡으며 걷는 66.9km 솔향기길과
낙조가 아름다운 서해를 한없이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103.4km 해변길,
태을암부터 가영현 생가를 잇는 6km 솔바람길이 그것이다.
취향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
기자는 무엇보다 조망이 좋고, 걷고 나면
다리가 뻐근하고 땀도 조금 흘릴 수 있는 난도가 있는 길을 걷고 싶었다.
여기에 다양한 볼거리와 스토리가 있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바람은 아니었는데 태안에 마침 꼭 맞는 길이 있었다.
솔향기길 1코스다.


소나무 오솔길을 걸으며 해변을 볼 수 있는 솔향기길.

솔향기길은 총 다섯 코스다. 일행이 선택한 경로는 1코스.
1코스는 2007년 12월 7일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조선과 삼성중공업 크레인 바지선이
태안 앞바다에서 충돌한 사고와 관련이 깊다.
당시 거대한 선적이 충돌하면서 총 1만2547㎘의 원유가 바다로 쏟아졌다.
거센 파도로 초기에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해 피해가 막심했다.

만대항도 원유 유출 사고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웃의 아픔을 나누는 걸 당연으로 여기는 우리네 민심.
전국에서 123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손길이 태안 해변으로 이어졌다.
좋은 일에 동참하기 위해 모였지만 역한 기름 냄새와 차가운 바닷바람은 고역이었다.

만대항 주변의 가파르고 위험한 산길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었다.
태안군 이원면이 고향인 차윤천 씨는 자원봉사자와 노인들이
힘들게 언덕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그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밧줄로 연결했고, 삽으로 땅을 고르게 만들기 시작했다.


안내판이 자세히 나와 있어 가야할 길을 가늠하기 좋다.

길을 만들던 중 차윤천 씨는 문득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보았는데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는 이 길을 해안을 바라보는 산책길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길이 솔향기길 1코스다.
지금은 해안을 따라 걷는 길과 산등성이 소나무 숲을 걷는 길이
조화를 이뤄 주말이면 많은 이가 찾는 명소가 됐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향긋한 솔향기 맡으며 걷는 길


1코스의 시작은 황톳길이다.
가파른 산길을 예고라도 하듯 시작부터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한다.
거칠다. 작은 언덕을 오르자 그 뒤로 제법 평평한 길이 이어졌다.
초행이 아닌 일행 한 명이 산길과 해안길이 번갈아가며 계속 이어진다고 이야기했다.

발밑으로 밟히는 자갈을 밟으며 해안 길을 걷다 보니 전설을 간직한 삼형제 바위가 보인다.
삼형제 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 하나로도 보이고 둘로도 보이며 셋으로도 보인다고 한다.
바위를 중심으로 남쪽방향인 만대부두에서 보면 첫째가 아우 둘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고,
동쪽의 황금산 앞바다에서 보면 삼형제 모두가 드러나 셋으로 보인다.


다양한 풍경과 만나는 솔향기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잘못된 것은 숨겨주고 잘된 것은 드러내는
형제 모습과 같다고 해 삼형제 바위라 이름 붙였다.
언덕을 넘어가 뒤쪽에서 삼형제 바위를 바라보니
아까 그 자리에 있던 바위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새로운 모습이다.

이제 고작 2km 남짓 온 것 같은데 등줄기에는 땀이 범벅이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을 생각에 준비를 너무 단단히 한 탓인가 보다.
여기에 길이 사실 트레킹 코스라기보다는 여느 산 못지않은 오르막길이다.
속도도 잘 나지 않고 힘도 꽤 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정표가 잘 돼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손 그림이 그려진 예쁜 벤치도 곳곳에 있어 쉬었다 갈 수 있다.
걸으면서 마음껏 바다를 감상하다보면 청량감이 가슴 속 깊이 밀려든다.
소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까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알알이 박히니
도시에서 오염됐던 몸과 마음이 목욕하는 기분이다.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그리 차지 않다.

하염없이 걷다 문득 바다 반대편을 보니 누렇게 익은 벼 사이로
파랑, 주황 지붕을 가진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니 감나무 아래 노부부가 앉아 계신다.
억새가 피어 있는 길을 헤치고 마을로 내려가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관광객이 다니는 코스 옆 마을이다 보니 귀찮아하지는 않을지 걱정됐다.
최대한 밝은 미소와 목소리로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는 삶은 밤을 드시다가 기자를 보곤 밤이 든 바구니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신다.
'역시 귀찮으신 건가'라고 무안해 하고 있는데 곧 바구니 가득 밤을 담아오셨다.


싱그런 소나무 향과 바다 내음이 어우러진 청량한 공기가 불어온다.

올해 처음 먹는 밤이었다.
그 맛이 어찌나 꿀맛이던지 염치불구하고 몇 개를 더 손에 쥐었다.
공주에 사는 따님이 보내온 밤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먹어도 되는 건지 죄송한 마음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말없이 할머니가 건네는 밤을 드시고
할머니는 밤을 먹기 좋게 깨물어 쪼갠 뒤 이 사람도 주고 저 사람도 주었다.

먹는 사람만 보아도 배부르다는 어머니 마음이란 게 이런 건가 보다.
집을 둘러보니 여느 시골 마을 집처럼 작고 포근했다.
11살 된 할머니 강아지와 노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같이 늙어가는 강아지를 마치 자식 돌보듯 하면서 친구처럼 여기는 듯도 했다.




인심 좋은 노부부 댁에 들러 밤과 토마토를 얻어먹었다.

따뜻한 햇볕 아래 인심 좋은 노부부와 맛있는 밤이 있는
이곳이 그져 스쳐 지나는 곳이라 더없이 아쉽다.
여기가 외가면 좋겠다. 이렇게 오곡백과 익어가는 늦가을에
불쑥 찾아와도 한 광주리 가득 음식을 내어주시는 곳.
가야 하는 목적마저 잊은 채 한동안 앉아서 땀을 식히고 들뜬 마음의 열도 가라앉혔다.

아직 갈 길이 멀어서 이제 가보겠다고 인사드렸다.
꾸지나무 해수욕장까지 가야 하는데 얼마나 걸리나 여쭤보니
"거기는 뭐하러 가. 여기랑 똑같은데. 거기까지 가다가는 다리 부러져"라며 만류하신다.
스물 나이에 시집 오셔서 60여 년을 이곳에 사신 할머니께는 똑같은 풍경이겠지만
그 풍경을 보고 싶어서 서울에서 달려온 기자에게는 설레는 길이다.
신발 끈을 조여 메고 다시 흙길 위에 올랐다.

솔향기길 1코스 10.2km(소요시간 3시간 30분)
만대항~ 당봉전망대~여섬~용난굴~꾸지골 해수욕장

1코스는 전 구간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삼림욕 하기 좋다.
시작점인 만대항은 태안반도 북쪽 가로림만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모여 살 곳이라는 뜻에서 만대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1코스를 걷다 보면 모자 모양의 섬이 나오는데 이름이 여섬이다.
조상들이 아름다운 섬에 이름을 모두 붙여주고 나니
이 섬이 남아서 남을 여자를 써 붙여진 이름이다.
재밌는 건 근처에 이원방조제가 생기고 간척지로 조성되면서
주변의 섬은 모두 육지가 됐는데 현재는 이 섬만 남게 됐다는 것. 이름 덕을 보았다.

마지막 포인트인 용난굴은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두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굴 입구에 하얀 비늘 자국을 남기고 승천에 성공하였지만
다른 한 마리는 승천하지 못하고 굴 앞에서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용이 승천할 때 밀고 나왔다는 굴문바위가 입구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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