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9회) 여든둘 화가의 목표 "여성독립운동가 100명의 초상화"

by 사무처 posted Mar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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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스카프가 잘 어울리는 단발머리의 앳된 소녀 같은 모습으로 윤석남(82) 화백은 미리 전시장에 나와 있었다. "조금 일찍 만나서 이야기하고 점심 식사도 함께하고 싶어요." 윤석남 화백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오전 11시, 우리는 경복궁 옆 학고재 갤러리에서 만났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전(展)을 막 열었을 때는 2월 17일이었지만 곧 3.1절이 다가오고 있어 언론의 주목 등으로 분주할 것 같아 일부러 약속을 한가한 3월 중순으로 잡았다. '여성독립운동가의 초상'이니 만치 3.1절의 관심은 대단했다. 하지만 기자가 윤 화백을 만난 16일엔 갤러리를 찾는 이들이 많이 줄어든 듯했다. 
 

윤석남 화백 박차정 지사 그림 앞에 선 윤석남 화백
▲ 윤석남 화백 박차정 지사 그림 앞에 선 윤석남 화백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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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취재하여 헌시(獻詩)를 쓰는 기자는 10년 전, 3.1절 무렵 인사동에서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시화전을 연 바 있다. 그때 3.1절 전후에 밀려들던 언론과 관객들이 3.1절이 지나자 밀물처럼 빠져나가던 기억이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온화한 성품의 윤석남 화백은 초면이었지만 무척 오래전부터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조명되지 않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추적하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가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여성독립우동가의 이미지를 그려내야 한다면 작가는 몇줄 밖에 없는 공적(功績)의 편린을 퍼즐처럼 꿰어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전시장 모습 1. 전시장 모습 1. 흰치마저고리는 남자현 지사이고, 그 뒤가 박차정 지사다.
▲ 전시장 모습 1. 전시장 모습 1. 흰치마저고리는 남자현 지사이고, 그 뒤가 박차정 지사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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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모습 2 전시장 모습 2. 붉은 색 옷은 박진홍 지사다
▲ 전시장 모습 2 전시장 모습 2. 붉은 색 옷은 박진홍 지사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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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화백의 그림들은 하나 같이 대작(大作)이다. 거기에 파랑옷(정정화 지사), 초록옷(권기옥 지사), 흰옷(이화림 지사), 붉은 옷(박진홍 지사) 등 강렬한 원색의 이미지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같은 여성으로 윤석남 화백이 그린 여성독립운동가들의 그림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앞으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작품을 감상한 이영애(서울시립미술관 전문안내원)씨는 감동한 듯 말했다.
 

큰사진보기이영애와 윤석남  관람객 이영애 씨와 박자혜 지사 그림 앞에선 윤석남 화백
▲ 이영애와 윤석남  관람객 이영애 씨와 박자혜 지사 그림 앞에선 윤석남 화백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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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림에서 주인공들의 눈빛에 주목했습니다. 초롱초롱하다 못해 강렬한 눈빛은 애국정신에 불타는 듯했습니다. 틀림없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눈빛은 빛났을 겁니다."

정수진 (45살, 서울 성북구)씨는 코로나19로 나들이를 못 하다가 윤석남 화백의 그림들을 보고 오랫만에 후련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올해 화업(畫業) 43년째인 윤석남 화백은 마흔 살까지 가정주부로 살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성을 주로 그려온 윤 화백은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알려질 만큼 화단에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원로 작가다. 그런 그가 한국화 가운데서도 초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때문이었다.

윤 화백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만났을 때 충격이었다. 그 뒤 조선시대 초상화를 공부하다가 남자들 모습만 그려지고 있음에 놀랐다. 그때부터 여성 초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서서히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그리게 되었다. 현재 22점을 그렸는데 앞으로 100점을 그리는 게 목표다"라고 했다.

"처음 그린 그림이 정정화 지사 초상입니다. 임시정부를 돕기 위해 압록강을 드나들며 자금을 마련하는 등 목숨을 건 독립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첫 번째로 마주하는 그림이 박자혜 지사십니다."

그림 한 점 한 점에 대해 설명해주는 노 화백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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